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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걸의 닥터 콘서트 - 힘 없는 환자가 아닌 똑똑한 의료 소비자 되기
홍혜걸 지음 / 조선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머리말에서 저자는 버트런드 러셀의 유명한 '닭의 비유'를 들어 건강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이야기한다.
'닭에게 주인의 손은 고마운 존재입니다. 매일 자신에게 모이를 던져 주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손만 보이면 졸졸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수년 후 모이를 먹고 살이 포동포동 찌면 고마운 주인의 손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목을 비틉니다. 우리가 무심코 행동하는 건강에 나쁜 습관들은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10~11쪽)
무척 공감되는 이야기다. 건강을 위해 균형잡힌 식생활과 규칙적인 운동 습관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하기 쉽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간편하게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누워서 뒹굴거린다고 해서 지금 당장 무슨 탈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건강은 결코 단숨에 얻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 내가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아올린 건강한 하루하루의 축적물이 바로 건강이라는 것.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레 나의 일상생활이 어떠한지를 찬찬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오늘 하루 나의 건강을 위해 어떤 배려를 했는지"를 늘 되새겨보라는 저자의 당부를 꼭 기억해야겠다.
건강의 기초가 되는 생활습관에서부터 감기, 위장병, 두통 등의 흔한 증세를 다스리는 법, 당뇨나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과 한국인의 최대 사망원인인 암... 다채로운 영역들을 편안한 어조로 다루고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5장 '현대의학의 새로운 화두 부교감신경과 면역, 염증'인데 새롭게 알게 된 유익한 사실도 많았고 공감가는 내용도 많았다. 우리 몸을 가능하면 옛날 원시인들처럼(물론 당연히 가능하지 못하겠지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비록 맹수에게 물리거나 굶주림과 감염으로 수명을 제대로 못 채우고 죽는 일도 잦았겠지만 피로에 지쳐 흐느적거리는 원시인은 상상할 수 없다. 그들에게 활력의 상실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83쪽)
원시인의 자율신경은 온오프가 한없이 명료하다고 한다. 위기 시엔 활화산처럼 폭발하지만 상황이 종료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지는,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연상케하는 교감신경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마치 위궤양이 생기지 않는 얼룩말처럼, 위기상황엔 한껏 교감신경을 항진시키고 평온할 땐 최대한 코티솔의 분비를 억제하고 휴식하고...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설명에 빠져들어 마치 원시인들의 다이내믹한 삶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써 현대인들이 처한 상황이 가엾게 느껴지기도. 현대인들의 코티솔은, 늘상 크고 작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분비 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한다. 과도한 코티솔은 부교감신경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고, 인체는 활력을 충전할 기회를 잃게 된다. 이 상태를 저자는 '항상 찔끔찔금 전기가 새는 고장난 배터리'에 비유하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내 주변만 둘러봐도 늘 기운이 없고 피곤한 이들, 항상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며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스트레스로 날이 곤두선 교감신경을 달래줘야 한다는 것, 억눌린 부교감 신경을 강화해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면역을 올려야 내 몸의 배터리가 탄탄히 충전될 수 있을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하기, 혈당지수가 낮은 음식 먹기, 카페인과 알코올, 니코틴 줄이기, 심호흡 하기, 걷기... 사실 부교감신경을 강화하는 방법들이란 싱거울 정도로 단순한 것들 뿐이다(그렇다, 머리로는 아는것을 손발로 실천하는 것이 늘 문제지!). 그리고 부교감신경을 튼튼하게 만들며 궁극적으로 인체를 가득 충전시키는,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한다. 긴장형 쾌락, 기쁠 '희(喜)'가 아닌 이완형 쾌락, 즐거울 '락(樂)'을 즐기라는 얘기다. 언제 나는 편안해지고 나를 잊을 정도로 행복해지는지를 관찰하고 그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이 책을 만난 것도 나의 일상에 '이완형 쾌락'을 안겨 주었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