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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미술로 떠나는 불교여행 ㅣ 인문여행 시리즈 12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3년 9월
평점 :
'아잔타 석굴의 벽화는 화가들이 색채로 쓴 경전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눈으로 읽는 경전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만 하는 경전이다.'(5쪽)
이 책의 저자는 인도 미술의 아름다움에 홀리어 20년 동안 수없이 인도를 오가면서 2,000여 점에 이르는 인도의 다양한 미술품을 수집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뭔가 한 세계에 오롯이 홀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잔타 석굴과 인도 불교미술에 대한 저자의 뜨거운 애정이 가득 느껴져서 덩달아 들뜨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잔타 석굴 안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부처와 인간의 삶의 다양한 장면들,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저자는 찬찬히 펼쳐 보여준다. 아잔타 석굴에 그려진 불화의 주제는 주로 '자타카(부처가 싯다르타 왕자로 태어나기 이전 전생 이야기)'로, 석굴의 벽, 기둥, 천장 등 사원 전체에 25편의 자타카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부처, 보살, 나한 등 불보살을 중점적으로 그린 한국의 불화와는 다르게, 이야기를 시각화해야 하는 아잔타 불화는 주인공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설명적인 방식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이건 마치, 만화의 원형이 아닌가!). 벽화 장면 장면마다 한 편의 연속된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저자는 25편의 자타카 중 그림 보존 상태가 우수한 16개의 이야기를 벽화와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준다. 자타카 이야기를 읽으며 할머니 무릎에서 옛날 이야기를 듣던 때의 기분이 떠올랐다. "한 번은 부처가 아리타자나카 왕의 아들인 마하자나카 왕자로 태어난 적이 있었단다... 한 번은 부처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황금 사슴으로 태어난 적이 있었단다... 한 번은 부처가 히말라야에 사는 커다란 물소로 태어난 적이 있었단다... 한 번은 부처가..."
윤회는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고, 부처는 자비심을 지닌 인간이나 고귀한 보살로, 혹은 새나 사슴, 코끼리 같은 동물의 모습으로 태어나 자비와 희생을 베푸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깨달음을 던져준다. 원래 기원전 4세기 팔리어로 쓰여진 자타카는 모두 547편으로 구성된 이야기, 즉 부처의 보살로서의 547번의 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그 오랜 시간의 개념에서 보면 한 생은 덧없이 짧아 부지런히 갈고 닦아 수많은 덕을 쌓아야만 깨달음을 얻게 된다. 깨달음의 길은 아주 멀고 먼 길인 셈이다.'(77쪽)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게 된다고 했던가.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 한번 아잔타 석굴에 가보고 싶어졌다. 뭣도 모르고 갔을 때도 참 장엄하고 감동적이었던 곳이었지만, 이 책 같은 든든한 안내자를 만나 그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 눈에 담게 되면 그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아잔타 벽화의 내용을 알고 잘 들여다보면 부처가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법문이 그대로 잘 느껴져 온다...(중략)...말하지 않아도 느껴져 오는 가슴 가득한 감동의 순간들이 아잔타 벽화에 가득하다. 그래서 때로는 어떤 벽화 앞에서는 발걸음을 떼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77~78쪽)
900여 년 동안, 뜨거운 인도의 공기 속에서 묵묵히 정과 끌로 석산을 쪼아내고 있었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신을 만나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기도로 만들어진 곳, 아잔타 석굴. 그 앞에 서면 인간은 한없이 순해지고 겸허해진다. 다음에 인도에 갈 때는 이 책을 품고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