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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 -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의 교육론 ㅣ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교육 3부작 시리즈 2
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어디서였던가, '우리 사회에서 계층을 초월해 만나서 3분 안에 합의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문제'라는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학생들, 부모, 교사 모두 불행한 얼굴을 하고 '견디는' 시간들 앞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이 등장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는 없다. 아니, 더 심화된 경쟁속에 더 불행해진 모습들만 보일 뿐...
이 책은 41년간 거창고등학교를 비롯한 같은 재단 샛별초등학교, 샛별중학교를 이끌어오며 저자가 경험했던 것들,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의 삶, 그가 생각하는 참된 교육에 대한 생각과 교육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한 목소리로 담고 있다. 가슴으로 쓴 책이고, 뜨거운 책이다.
'거창고'가 워낙 유명한 이름이라, 사실 이렇게 절절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저자 전성은의 아버지 전영창은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조국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모든 것이 보장된 대학이 아닌 벽지로 가리라 결심한다. 2년 전 개교했다가 빚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 된 거창고를 맡기로 하고 교장 취임식을 할 때의 일화는 참 마음 아팠다. 폐교 직전의 학교에 새 교장이 취임한다니까 학생들이 모두 책상과 의자를 들고, 타 학교에 인수되기를 바라는 교사가 인솔해서 떠나버린 것이다. 2백여 명의 학생 중 겨우 8명이 남아 새 교장의 연설을 들었다 한다.
학교가 망하면 밥값을 못 받을까 봐 걱정한 하숙집들이 교사들의 하숙을 받아주지 않았고, 지붕이 뚫린 교실은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 들고 공부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월급을 자진해서 반으로 줄인 선생님들이 있었다. 하숙을 구할 수가 없어서 교실 한 칸을 비워 합숙을 하고 삶은 감자로 겨우 끼니를 때우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한 선생님들의 열정이 있었다. 그렇게 20년, 누구나 탐내는 대학의 부학장 자리 대신 빚더미에 앉은 시골학교를 택한 그의 외롭고 험난한 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내 교육은 실패했어'라는 말을 아들에게 남기고, 한 달 뒤 세상을 떠난다.
"그 한마디의 말이 오늘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 그 말은 나로 하여금 40년 동안 교육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했다."(10쪽)
그는 왜 맨주먹으로 거창고를 훌륭하게 키워낸 아버지가 당신의 교육을 '실패'였다고 불렀는지, 참교육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파고들었고 치열하게 현실과 싸웠다. '서울공화국'의 '시골'학교에서 교사 구하기가 힘들어 갖은 고생을 하면서, 교육의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탐구를 놓지 않았다. 그와 그를 있게 해 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속에 그 사유들이 겹쳐져 빛난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누군가 타인에게 고통 당해 느끼는 아픔을, 내가 책임질 이유가 없는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아픔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바로 나라고 인식하는 사람이다."(117쪽)
"교육은 제국주의의 힘의 논리, 힘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허위 논리임을 밝혀내는 일이다...(중략)...그리고 인류의 참 평화는 사랑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진리를 삶으로 보여주는 일이다."(245쪽)
무조건 다른 이보다 앞서 나갈 것을 종용하는, 옆에서 누가 넘어지든 다치든 외면하고 오직 자기 살 길만 찾으라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교육 풍토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이끌어갈 교육학은 사랑에서 나와 사랑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는 울림이 깊다. 부디, 너무 늦기 전에 그 울림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