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인만 이야기 - 순수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꾼 과학자 ㅣ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15
해리 러바인 3세 지음, 채윤 옮김 / 명진출판사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리처드 파인만. 그는 사람들이 보통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속 시원하게 무너뜨린다. 자기 분야 외에는 관심 두지 않고 앉아서 연구만 할 것 같고, 고리타분하거나 어딘가 괴팍한 사람이 천재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훌훌 벗어던지고 전혀 다른 천재를 만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세상은 놀랍고 재밌는 것들로 가득하다고 눈을 반짝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기고 삶을 사랑했던 그런 천재를.
파인만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파인만의 아버지 멜빌의 진지한 교육 방식이었다. 멜빌은 ‘파인만이 사실만 살피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세상의 원리를, 인간의 삶을, 심지어 예술까지 끌어안는 창의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36쪽) 한 뿌리를 심어준 사람이었다. 매일 저녁이면 파인만을 무릎에 앉히고 브리태니커를 실감나게 묘사하며 읽어주고, 주말이면 숲속을 함께 걸으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함께 관찰하고 자연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여러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키워지는 것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많은 질문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파인만은 왕성한 호기심을 자유롭게 키우며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제복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었던 멜빌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들을 수없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체통과 권위에 대한 건전한 비판 의식을 가르치고자 노력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는가에 따라 다른 대접을 하곤 해. 어떤 옷을 입든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가치를 지닌 존재인데 말이야.’(44쪽)
또한 그는 지식을 익히는 것에도 똑같은 태도를 취할 것을 파인만에게 가르쳤다.
’논리 그 자체만 생각하면 돼. 그게 누구 입에서 나온 소리인지는 중요하지 않단다.’(45쪽)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파인만은 후에 학계의 권위자가 되었음에도 권위와 형식을 거부하고 독자적 사고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던 노벨상을 받게 되자 ‘자신이 하기 싫은 일과 각종 행사에 끌려다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투덜거리고 대놓고 불쾌해하기도 한다. 스웨덴 영사관에서 파인만에게 전화를 해서, 수상 기념 리셉션을 개최할 것이라며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의 명단을 준비하라고 했을 때 그가 초대한 사람은 길 건너 사는 이웃과 화가 친구를 포함 모두 8명이었다(스웨덴 영사가 며칠 후 건네준 초대장에는 300명의 인사들이 있었다. 뭐 결국 파인만이 자신도 그 리셉션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해서 취소되긴 했지만^^;).
항상 얽매임 없이 자유로이 생각하고 행동한 파인만. 그는 자기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어마어마한 급여를 제시한 대학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하고 자신이 있고 싶은 곳, 자신이 필요하고 행복한 곳을 망설임 없이 택할 수 있었다.
“더 나은 조건, 많은 돈, 어쩌면 이런 것들이 오히려 나를 얽맬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결국 자유와 행복에서 멀어지게 될 수도 있지요.”(254쪽)
모두가 더 가지기 위해서, 더 남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 것 같은 현실에서 파인만의 이 순수한 믿음은 울림이 깊게 들린다.
악성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물리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등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파인만. 그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았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동시에 과학자로서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늘 고민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2차 대전 중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후 인류와 미래에 더 큰 불안의 씨앗을 남겼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과학자로서의 사명과 책임의식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고뇌가 있었기에, 후에 ‘발렌스트롬 마크로글로블린혈증’이라는 희귀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해내는 등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또 다른 악성종양이 발견되었고,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물리학 강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결국 강의 중에 쓰러졌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들 때마다,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고민할 때마다 그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떠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