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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인간 - Homo Philosophicus
김광수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6월
평점 :
‘이 책은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앓는 구도자적 정신의 소유자를 위한 것’(5쪽)이라고 서문에서 저자는 밝히고 있다. 구도자적 정신이 내 안에 어느 정도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삶을 앓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가기 시작한다.
현대인에 삶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날카롭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껏해야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무대에서 삶의 의미로 받들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실용성, 효용성, 성공, 행복을 좇아 동분서주한다(6쪽)’, 고개를 끄덕거린다. 너나없이 그 성공과 행복만을 삶의 목적과 의미로 삼고, 등불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비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고대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해 온 일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으나, 저자는 철학이 제 구실을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철학자들의 여러 견해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었다고, 뜬 구름 잡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은 한가하지 않다고 단언한다(자신도 철학자면서... 꽤 냉정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과 같은 어떤 형이상학적 기반을 전제하지 않고도 인간의 삶의 의미를 정립시키는 것.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답으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마치 신이 존재하는 것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8쪽)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방황하거나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적 선택을 하고 고귀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었다는 것이다(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신이 사라지면 틈새가 생길 것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메울 것이다’에 밑줄 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당연히 그런 경지는 공짜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철학하는 인간(호모 필로소피쿠스)’로서의 내공을 쌓아가야 할 것이다.
생명의 값. 운명론. 자아실현. 문제의식. 존재 각성의 삶. 자아의 나무. 정신의 진화. 진리. 이성과 낭만. 부조리 상황. 태생적 소외. 고통의 역설. 가능한 최선의 사회. 역사 발전의 동력...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생각하는 근육’을 키워주는 여러 생각의 꼭지들. 제목만으로도 뭔가 묵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청소년들이 읽어도 될 만큼 찬찬하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밀고 간다. 추상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리스인 조르바>, <인간의 대지>,<불멸> 같은 소설 속의 장면과 문장들, 천상병, 파블로 네루다와 이성선, 타고르와 정호승 시인들의 시 등 다채로운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어서 마음에 잘 와 닿았다. 이를테면 정호승 시인의 시 <밥그릇>을 인용하며 삶의 철학적 음미, ‘삶의 맛을 제대로 보는 삶’(326)쪽을 이야기하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비유라서 오래 기억하고 싶다.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327쪽)
내 삶의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밑바닥은 과연 어디쯤일까. 가장 맛있다는 그 깊은 밑바닥을 찾아가는 길, 나는 얼마나 열심히 그 길을 가고 있는지... 가끔은 산다는 것이 힘겹고 부조리하게 느껴지더라도, 내 존재와 삶의 밑바닥을 정성껏 핥으면서 살고 싶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선택한 만큼 의미있고 충만하고 경이로워지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