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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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석 자만으로 덮어놓고 그 저자의 책을 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내게는 석영중 교수의 러시아 시리즈(?)들도 그러하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와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읽고 빠져들고 난 이후부터 그가 번역한 책들도 야금야금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지금도 러시아문학 탐험은 행복하게 진행 중이다. 10대 때 겁없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를 읽다가 절망한 이후, 러시아 문학과는 별로 가까이 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내가 지금 이렇게 마야꼬프스끼, 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분 덕이니... 이래저래 퍽 고마운 일이다.

 

이번 책에서는 흥미롭게도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이 음식을 어떤 의미와 상징으로 그들의 작품 속에 담아 냈는가를 세세하게 분석한다. 러시아 문학과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성찬같았던 시간이었다. 배부르게 잘 먹었는데, 뭐랄까 뒤죽박죽 정리가 안 되어서...^^;; 그냥 생각나는 메뉴들과 감상들을 읊어보련다.

 

1.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 : 곤차로프.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덜 알려진 인물이지만 러시아 문학사에서는 위대한 리얼리즘 작가로 존경받고 있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인 <오블로모프>는 러시아 요리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큼 온갖 요리들로 가득 차 있어 외국인 독자가 그것을 제대로 읽으려면 별도의 요리 사전이 필요할 정도다'(88~89쪽), '페이지마다 언급되는 온갖 맛있는 러시아와 서구의 요리들은 꾸준히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91쪽)라니 오옷! 도대체 어떤 작품일까(배고플 때 읽어서는 안 될 책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19세기 중엽 농노제도하의 러시아에 살았던 한 선량하고 무기력한 지식인'이라고만 정의 내리기에는 주인공 오블로모프는 무척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인물인 것 같다. 석영중 교수는 섬세하게 <오블로모프>의 이야기 구조와 등장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여러 문학평론가들이 나름대로 내린 해석들까지 덧붙여 읽고나니 두둑하다.

 

2. 이 책 덕분에 풀린 의문 하나 :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왜 그렇게 음식에 대해 부정적인 코드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어려서부터 먹는 것을 좋아했던 불가코프가 혁명 후의 가혹한 러시아 현실 때문에 거의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주린 배를 움쳐쥔 생활을 해야 했던 점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3.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 대한 이야기에는 '시인을 위한 가정식 백반'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데 무척 공감되는 분석이었다. 지바고가 벽난로에 장작을 때고 무거운 가구를 옮기고, 라라가 소박한 식사를 마련하는 대목을 풀이(?)해주는 이야기들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책을 읽다가, 지바고가 시 쓰기에 몰두하게 만들어 준 그 식탁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죽음의 사자와 늑대의 울음소리도 그의 지복을 방해하지 못한다... 그는 현실도 잊고 자아도 잊고 시간도 잊어버린다(306쪽)'를 가능하게 해 주었던 평범한 러시아 가정의 식탁을 상상하면서, 나도 덩달아 잠시 시간을 잊었다.

 

4. 이 책 덕분에 다시 읽어본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원래 좋아하던 작품이었는데 이 책의 해설 덕분에 더욱 좋아지게 되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위대한 식사를 통해 솔제니친은 그 어떤 제도도, 그 어떤 이념도, 그 어떤 상황도 인간을 완전한 짐승으로 전락시킬 수 없다는'(365쪽) 믿음을 전달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산다는 것, 인간이기에 끝내 지켜야 할 무언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본다.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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