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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해지는 거절의 힘 - 웃으면서 거절하는 까칠한 심리학
마누엘 스미스 지음, 박미경 옮김 / 이다미디어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크건 작건 간에 상대방의 부탁이나 요구에 대해 거절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특히 더 그 정도가 심한 편이어서, 별로 마음 내키지 않는 부탁을 받으면 어떻게 거절해야 좋을까하고 혼자 끙끙대기도 하고 적절한 변명거리를 찾다가 혼자 지쳐버리기도 한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10대 시절에는 정도가 좀 심해서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저릿해지곤 한다.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친구의 숙제까지 떠맡아 쩔쩔맸던 기억 같은 것...(한마디로 바보였다.-_-;;)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공감을 했고 또 여러 가지 유용한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저자는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당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조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말한다. 즉 나의 감정이나 행동을 타인이 조종하지 못하게 하려면,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불안감, 무지, 죄책감 같은 학습된 감정을 통해서 아이를 끈에 매인 꼭두각시처럼 심리적으로 조종하여 자기주장을 못 하게 통제한다는 것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물론 부모는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 자녀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자녀에게 올바른 생활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그런 방법을 쓴 것이지만 이런 식의 감정 통제의 끈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나부터도, 동생들을 돌보면서 부모님께 받은 칭찬과 맏이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했던 경우에 받았던 협박(?)이 내 안에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자라게 했음을 안다(그리고 아직 다 벗어나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힘없이 조종당하는 아이가 아니고, 각자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다. ‘자기의 삶을 책임지지 않으면 남이 당신의 삶을 조종할 것이다’는 말이 와 닿았다. 저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거절할 수 있는 권리, 즉 자기주장 권리의 10계명을 이야기하는데 특히 8번 ‘당신은 비논리적으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와 9번 ‘당신은 남을 이해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가 공감이 갔고 도움이 되었다.
끈기 있게 논의의 요점을 고수하는 ‘고장 난 레코드 기법’, 조작적 행동 비난에 대처하는 ‘안개 작전’, 그리고 실수에 대한 적대적인 비판에 무너지지 않고서 그 실수에 대처하는 ‘부정적 단언’, ‘실행 가능한 타협점 찾기’ 등도 내가 겪어본 상황에 대입해보며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내게 큰 수확이다. 즉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면, 실수로 인한 죄책감과 불안감 때문에 다른 소극적인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조종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 비판적 또는 적대적 태도에 직면할 때 실수를 당당하게 인정하는 것, 타인이 우리 행동의 진정한 판단자라는 어리석은 믿음을 버리고 나 자신의 판단을 믿는 것. 물론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변명거리를 찾거나 만회하려고 애쓰면서 실수를 부인하는 것보다 훨씬 멋지고 당당한 태도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는 27가지의 실제 대화문을 수록하여, 여러 상황에서의 자기주장의 대화훈련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슈퍼마켓에서 산 물건을 돌려받는 상황에서부터, 차량의 브레이크 수리를 요구하는 법, 시간 외 근무를 요구하는 상사에 맞서는 상황, 사춘기 딸의 불만에 대처하는 엄마의 상황, 대학원 입학 면접이나 입사 면접관의 질문에 당당하게 대처히는 법, 매력적이지만 불쾌한 작업남에게 맞서는 훈련까지 다채롭다. 다만 문화적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의 일방적으로 진료를 받게 되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그렇고,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도 아무리 세련된 자기주강의 훈련을 통한 거절의 기술을 구사한다고 해도 우리 현실에서 과연 통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내 일을 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 어떤 태도와 기술을 가져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