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 마라 - 답답한 현실을 바꿀 분명한 해답
미하엘 슈미트-살로몬 지음, 김현정 옮김 / 고즈윈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오전에 이집트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관 외곽에서 벌어진 반미 시위로 최소 224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씁쓸했다. 왜 인간의 역사는 이렇게 무의미한 폭력과 착취, 살인과 살육으로 점철되어야만 하나. 어제부터 손에서 뗄 수 없었던 이 책에서는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지진도, 쓰나미도, 양심 없는 정치인도, 탐욕스러운 경영자도 수상한 음모자도 아닌 역사상 유례없이 전개되고 있는 거대한 어리석음이라고. 현재의 고도 문화가 인류의 과학기술적 잠재력뿐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도 함께 고조시키고 있다는 저자의 목소리는 냉철하다.

 

별로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은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농담일 것이다. 현명한 인간, 이 말은 초식 사자나 탭댄스를 추는 지렁이, 관료주의적 쥐처럼 아주 우스꽝스럽게 들린다.(17~18쪽)

 

1장부터 직격타 시작. 교과서에서 자랑스럽게 배운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이 책은 사정없이 날려 버린다. 인간이 어느 정도 정신적 명민함을 갖췄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명함은 우리 인간에게 결핍된 요소이고, 이제껏 인간이 해 온 일들을 생각하면 인간에게 훨씬 적합한 명칭은 ‘광기의 인간’, 호모 데멘스라고 한다.

인간의 문화 역사는 우주 달력의 기준으로 볼 때 새로운 해의 1월 1일이 되기 전 마지막 몇 초에 불과한데, 그런 ‘우주의 하루살이’가 우주의 중심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그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칼 세이건이 생각난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칼 세이건도 우주의 ‘창백한 푸른 점’에 겨우 발을 붙인 생명체임을 우리가 자각할 때만이 우리 문명이 저지르는 파괴의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봤고, 우리만이 우주에서 특별하다는 환상에서 어서 깨어나라고 했으니.

 

이어지는 종교, 경제, 정치, 교육의 영역에서 ‘호모 데멘스’의 어리석음에 대한 가차없는 통찰. 특히 현재의 교육에 대한 그의 서슴없는 비판과 진단은 읽으면서 가슴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교육의 의미는 단편 지식을 되도록 많이 축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풍부한 지식의 토대에서 문제에 적합하고 올바른 정보를 선별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192쪽)는 통찰은 얼마나 예리한가.

 

그의 현실 인식은 날선 비판으로 가득하지만 그의 전망은 낙관을 잃지 않는다. ‘문화적 메트릭스’ 내에서 사고를 황폐화시키는 뇌벌레들에 맞서 ‘현명한 인간’을 만들어 주는 교육의 로열젤리를 섭취하자고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다. 그 교육의 로열젤리는 우리의 사고 능력을 강화시켜 논리적 모순을 명백히 인식하게 하고, 우리의 현실감각과 줏대를 확고하게 만들어 작은 모순도 지나치지 않고 올바른 길을 택하여 나아가게 만드는 존재이다. 나아가, 그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굉장한 영웅이나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도 ‘어른들의 어리석음’에 눈멀지 않은 단 한 명의 아이가 궁정 전체의 광기를 무너뜨렸듯이.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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