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해방 - 개정완역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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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터 싱어라는 철학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제목부터가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말 그대로 탄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 후로 그의 이름을 단 책은 덮어놓고 ‘무조건’ 읽는다. 이번에 개정완역판으로 다시 나온 <동물해방>도, 피터 싱어의 다른 책들처럼 강한 흡인력이 있었다. 전문적인 특수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명쾌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종차별주의를 넘어 동물 해방에 대한 논리를 편다. 윤리학, 도덕 원리, 보편주의적 공리주의... 입시교육의 부작용인지 이런 말만 들어도 어쩐지 머리아파질 것 같은데 그런 편견은 이미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책의 시작은 2009년판 서문과 함께 1975년판 서문도 싣고 있는데, 그 시작은 이렇다. ‘이 책은 인간 아닌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폭정(暴政)에 관한 책이다’라고. ‘폭정’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포악한 정치를 의미한다는 것을 굳이 떠올려보지 않더라도, 인간 아닌 다른 종에게 이 말을 쓰는 것부터가 우리에겐 어쩐지 익숙하지가 않다. 폭정에 시달리고, 폭정 아래서 신음할 수 있는 ‘자격’조차 동물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피터 싱어의 표현에 따르면, 이런 사소한 사고방식조차 우리의 ‘종차별주의’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종차별주의란, 단순히 한 개체가 어떤 종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차별하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며, 이러한 태도는 어떤 인종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개인을 차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개념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을 위해 비참한 실험들을 감수하고, 공장식 농장에서 학대당하고 있는 동물들의 실태를 낱낱이 폭로한다. 그러나 그 동물들의 해방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달라져야하는지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결코 감정적이거나 선동적이지 않다. 실천윤리학의 거장답게, 시종일관 차분하고 성실하게 빈틈없는 논리를 전개해 간다. 성서가 들려주는 천지창조에서부터 기독교 시대, 르네상스 시대, 계몽시대와 그 이후까지 종차별주의의 역사를 짚어보는 5장 ‘인간의 지배’도 무척 흥미롭게 읽은 장이다. 6장 ‘오늘날의 종차별주의’에서는 오늘날 동물 노예제도를 옹호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논의와 변명을 특유의 빈틈없는 논리로 반박하는데 무척 경쾌했고,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피터 싱어를 알게 된 것은, 정말로 행운이다. 그의 윤리학은 뜬구름 잡는 현학적인 담론이 아니라 실생활에 밀착해 있으며, 건드리면 골치 아픈 민감한 주제들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진정으로, 용감한 철학자이다(책의 뒤쪽에 붙은 부록 ‘피터 싱어가 말하는 피터 싱어’에서는, 그의 이런 점으로 인해 미국의 우익 보수 기독교 웹 사이트에서 그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또한 그의 현실 인식은 비판적이지만 그의 전망은 다분히 낙관적이라는 점도 나를 가슴 뛰게 한다. 우리에게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사유하고 실천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것이 이어지는 한 이 세상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리라.

이 책을 읽고 다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다시’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채식주의자로 한동안 살았다가 다시 비채식의 세계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고기에 대한 욕구를 참는 것은 생각만큼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서 별난 사람, 까다로운 사람 취급 받는 것이 버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채식이 환경 손실을 줄이면서 고통을 적게 산출하고 더 많은 음식을 생산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당당하게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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