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특히 내가 좋아하던 것은, 따뜻한 밥에 ‘마아가린’을 듬뿍 넣고 간장을 넣어 비벼먹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우리 몸에 좋은 ‘식물성 지방’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었던, 먹음직스럽게 노오랗고 고소한 냄새 나는 이 마가린을 나는 사랑했다(입이 심심할 때 한 숟가락씩 떠서 입에 넣고 녹여 먹기도 했다, 사탕처럼. ^^;;). 시간이 흘러 마가린의 실체가 동맥경화의 주범인 콜레스테롤을 생성시키는 트랜스지방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당연히 경악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 머릿속에 든 첫 번째 의문이 바로 이거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어떻게 하루아침에, ‘몸에 좋은 것’이 ‘몸에 나쁜 것’으로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어지게 된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처음으로 마가린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확실히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풍요로운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그 음식들에 대한 각종 넘쳐나는 정보와 루머로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어제의 진실이 오늘의 거짓이 되는 상황들을 만연한 가운데 무엇이 과연 나와 내 가족을 위한 현명한 선택인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책은 식품의 건강 유익성에 대한 주장들이 수십년에 걸쳐 그렇게 끊임없이 뒤집혀 온 과정들을 이야기한다. 소비자들을 막연한 불안감에 떨게 해 온 ‘식품 공포’를 그동안 주도해 온 세력들, 거대자본과 그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들은 꽤 스릴있게(?) 읽혔다. 요지경이었다. 가벼운 증상도 치명적 질병으로 변신하는 것은 예사고, 과학적 연구라고 하는 것이 온갖 이해관계가 얽히고 때로는 빈약한 근거들이 화려한 결과로 변신되기도 했다.

 

제목에서 ‘두려움’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눈치 챌 수 있었듯, 저자는 왜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음식이 ‘괴담’의 주인공이 되었는지를 의학과 과학의 역사를 통해 낱낱이 추적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음식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다. 세균에 대한 공포, 화학 첨가물과 가공식품에 대한 공포, 우유에 대한 공포, 티아민 공포, 식이지방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키며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과대 포장한 이 공포의 배후에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거대자본인 대형 식품 가공업체들과 공중 보건 당국, 과학자와 의사 및 이해 관계자들, 연방 정부 등이 겹겹이 진을 치고 있었다.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책의 마지막 부분의 저자가 내린 결론과 맺음말에 특히 공감이 갔다. 마지막에 저자는 ‘빈곤’을, 심장 질환과 다른 많은 질병의 가장 치명적인 위험인자로 꼽는다. 슬프게도 일반적으로 부유층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많기에 건강에도 악역향을 끼친다는 것이 여러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장병 등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빈곤을 줄이는 것’이라는 해법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의 해법을 전체가 아니라 개인에게서 찾고, 질병과 불행의 원인을 사회적 환경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방식 또는 팔자소관에서만 찾는 지금의 시대를 역행하는 관점을 지녔기에 그 해법이 주목받지 못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게 느껴진다. 책을 덮으며 생각이 꼬리를 문다. 거대 자본이 주무르는 현대과학과 산업화, 세계화 뿐 아니라 이런 ‘개인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세상’이 이런 음식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부추긴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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