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인간
알렉산드르 벨랴예프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불행은 인간이 짐승의 자손이라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사람의 탈을 쓰고도 여전히 짐승 같은 행위... 거칠고 사악하고 어리석은 짓을 멈추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272쪽)

 

흡인력이 굉장했다. 어제는 나름대로 바쁜 일과였는데도 불구하고, 손에서 내내 책을 떼지 못하고 이리저리 짜투리 시간에도 책을 들춰보며 읽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몸이 달아오르는데, 그와 동시에 점점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줄어들어간다는 안타까움. 이 모순을 어이하리.

이런 놀라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인 작가는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벨라예프'. 러시아 공상과학소설 창시자의 한 사람. 이름이 낯설게 들리는데, 그도 그럴것이 아직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없는 것 같다. 그는 평생 70편이 넘는 공상과학소설을 썼다는데 지금 70분의 1을 읽은 것으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아아, 읽고 싶어라, '도우웰 교수의 머리','치올코프스키의 별'... 부디 하루빨리 번역되어 출판되기를!

 

이 소설에서 인상깊었던 장면 중의 하나가 살바토르 교수의 재판 장면이다. 가톨릭 대성당의 후안 데 가르실라쏘 주교(얘들은 이름이 왜 이렇게 기냐...)는 살바토르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기독교 모욕죄를 추궁할 것을 검사부에 지휘한다. 변호사 선임을 거절한 피고 살바토르는 '사람의 섣부른 손재주로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물인 인간을 망쳐놓은 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진술하는데, 여기에서 철저하게 무신론과 진화론의 입장을 펼치는 과학자 살바토르의 목소리에 작가 벨라예프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벨라예프(헉헉... 길다). 그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영화같다. 무척이나 주인공이 고생하고, 그 고난을 이겨내고 눈부신 성취를 이루어냈지만 비극적인 결말로 끝맺고 마는.

러시아 서부에서 러시아정교회 사제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업을 계승하길 바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스몰렌스크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부친의 뜩솨는 정반대로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어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부친으로서는 통탄할 일이었겠지만, 환상적인 SF작품을 읽을 수 있는 독자 입장에서는 만만세다. 아무튼 그 이후도 그의 인생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다. 부친의 뜻을 거슬러 하나님에 대한 복종 맹세를 거부하고 법과대학에 다시 입학했던 그는, 그 후 부친이 돌아가시자 가족을 부양하며 자기 학비도 벌어야 했기에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한다. 개인교습은 물론 서커스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도 하고 무대장치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일도 했다고 하니,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법대 졸업 후 법률사무소를 연 벨라예프는 유능한 변호사로도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도대체 못 하는 게 무엇이냐!). 살바토르의 인상적인 법정 진술 장면도 그때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겠지. 암튼 그렇게 사건 의뢰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음악 비평가, 연극 평론가로서 활동했다.

30살 때,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문학 작품과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했으나 돌연 결핵성늑막염이 발병했다. 치료는 실패로 돌아갔고, 결핵성척추염으로 발전되어 양다리에 마비가 일어난 그는 6년간 침대에 누워 투병생활을 하면서 병마와 싸웠다. 젊은 아내는 병간호를 하기 위해 결혼한 게 아니라며 그를 떠나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난치병을 고칠 전문의를 찾아 얄타로 거처를 옮겼다(난치병과 싸우는 과정에 살바토르같은, 천재 명의 캐릭터를 구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난치병과 싸우면서도 그는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외국어, 의학, 생물학, 역사학, 기술을 독학으로 폭넓게 공부하며(역시 사람이 아니었다) 쥘 베른과 허버트 웰스의 SF소설 등을 독파했다.

아... 리뷰가 아니라 벨라예프의 일생에 대한 글이 되어가는구나. 아무튼 시작했으니 끝을 보면, 오랜 투병 생활 끝에 건강을 되찾아 다시 법률자문 변호사로 일하여 생활에 안정이 되자 본격 문학 창작 활동 착수. 여러 작품을 발표하고 승승장구하다가 다시 병이 재발되었단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첫 딸은 뇌막염으로 죽었고, 둘째 딸은 구루병에 걸렸고, 본인도 척추염이 악화되었던 역경을 벨라예프 가족은 다시 이겨냈다. 하지만 푸슈킨 시에서 벨랴예프가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을 때 독일군은 그 도시를 진격해 들어왔다. 그렇게 나치에게 점령된 푸슈킨 시에서 벨라예프는 아사로 생을 마감했다.

 

흑흑. 다음에(과연 언제쯤에나?) 러시아 여행을 가면 갈 곳 하나 추가다. 푸슈킨 시의 카잔 공동묘지에 쓸쓸히 서 있을, 그가 묻혀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라는 추모비 앞에 꽃 한 송이 놓아주고 싶다. 연이어 닥치는 혹독한 고난에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찬란하게 꽃피워낸, 벨라예프라는 위대한 작가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의외로, 밝고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아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돌고래 리딩과 함께 드넓은 대양을 누비는 것을 마냥 즐거워하고, 물 밖에 있는 것을 힘들어 하면서도 구티에레를 보고싶은 마음으로 거침없이 육지로 향하고, 바다와 해양 동물들에 대해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무심하고 천진스럽던 이흐티안드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사람이니까. 부디, 앞으로는 절대 주리타같은 탐욕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붙잡히지 않기를. 아득히 먼 남태평양의 산호섬에서, 네가 사랑하는 바다 생물들과 함께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돌고래 리딩에게도 꼭 안부 전해 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