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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심리코드 - 인류 역사에 DNA처럼 박혀 있는 6가지 인간 심리
김태형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기억, 탐욕, 우월감, 통제욕, 개방성, 종교.
이렇게 여섯 가지 인간의 집단 심리가 어떻게 세계사를 떠밀어 왔는가를 탐구하는,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책이었다. 심리학자의 시각에서 세계사를 들여다보는 느낌. 역사와 심리학을 편애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매력적인 조합이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달달 암기해야 했던 역사 교과서는 아무래도 영웅사관 혹은 지배계급의 변화를 중심으로 쓰여진 것들이었다. 그와 반대되는 것이 민중사관일 터인데, 당대 사람들의 심리 구조로 역사를 읽는 이 책은 민중사관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역사란 뛰어난 몇몇 개인들이 좌우하기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써 나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 심리, 특히 대다수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단 심리는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논리이고 백배 공감이 간다.
이 책은 심리학의 렌즈로 들여다보는 역사서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점이 독특하고 좋았다. 지은이의 이력을 보니, 심리학을 공부한 후 주류 심리학에 대한 회의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열망으로 한동안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전념했다가 다시 심리학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 그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폭주하도록 설계된 인간본성-탐욕'을 이야기하는 장에서는, 자본주의사회가 열등감과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이용해 대중의 탐욕을 부추기는 방식을 비판한다. "나는 사람의 탐욕을 확대재생산하는 시스템이 과연 바람직한지 인류가 심사숙고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87쪽)하고 지은이는 자신이 현 시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끄덕끄덕.
뜬금없이 이런 책을 목말랐던 고등학생 시절 만났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역사를 좋아했지만 국사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씁쓸하게 남아있어서일까. 이런 책같은 선생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간의 심리와 역사의 흐름, 그리고 지나간 역사가 어떻게 오늘에 영향을 미쳐 왔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실에서 어떤 점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조근조근 가르쳐주시는 분이 계셨다면. 아, 그러고보니까 한 분 계셨다. 역사 선생님이 아니라 (생뚱맞게도) 교련 선생님이셨는데, 보통은 시험기간이나 실습 외에는 자동으로 자습시간이 되는 교련 시간을 내 고등학교 시절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간으로 만들어주셨다. 그분이 직접 써주셨던 '읽어보면 좋은 책 목록'을 아직 가지고 있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해 주셨던, 그리운 선생님 생각이 나게 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