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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
미하엘라 비저 지음, 권세훈 옮김, 이르멜라 샤우츠 그림 / 지식채널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직업들... 책을 넘기니 그 생소하고 특이한 이름들만으로도 호기심이 마구 발동했다. 이동변소꾼, 고래수염처리공, 오줌세탁부, 커피냄새탐지원, 촛불관리인... 그 시대에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었던, 지금은 사라진 직업들의 이야기와 그때의 사회상을 살펴보는 일은 흥미진진했다.
또 소개된 스물 네 가지 직업과 함께 나와 있는 삽화들이 참 독특했는데, 그 직업에 대한 사실을 보여주는 삽화에서 그 시대와 상황에 대한 풍자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었다. 글쓴이의 머리말에서 보니까, 삽화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묘사하여 그 특정한 직업의 성격을 재현하기 위해서 옛 의상과 동판화들을 섭렵하는 등, 공을 상당히 많이 들였다고 한다. 각 삽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인용한 배경을 일일이 첨부해놓은, 충실하고 독특한 삽화 덕분에 책을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할 수 있었다.
현대를 사는 눈에는 신기하고 기발하게만 보이는 이 직업들, 역사와 함께 잊혀진 이 직업들은 그 당시에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고단한 밥벌이 수단이었으며, 특히 사회적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일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전체적으로 참 재미있게 읽었지만, 사회의 낮은 계층에서 그 직업을 영위하며 고통 받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해지는 부분들도 많았다.
깨끗한 외모를 특히 높이 평가했던 로마 사람들이 새하얀 토가를 입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오줌세탁부들이 맨발로 그 옷들을 밟아야 했을까. 하지만 암모니아를 지속적으로 맨 피부에 접촉한 탓에 피부염으로 고생했던 오줌세탁부들은 존경을 받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풍자시에서 희화화되었다고 한다(괘씸한 로마인들 같으니라고!-_-;;).
모래를 채굴하여 실내용 모래로 팔았던 모래장수들은 등잔불의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좁은 통로에서 몸을 구부린 자세로 내내 일하는 환경에서 굶주림과 고단함 때문에 대부분 일찍 죽었다고 한다. 성문 바깥에만 살아야 했던 사형집행인들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온갖 굳은 일들-짐승 가죽 벗기기, 동물 거세하기, 하수도와 감옥 청소 등-을 도맡아 해야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섬뜩하게 여겨 피했던 사형집행인들, 처지가 같은 사람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었고 자식들에게 그 직업을 물려주어야했던 사형집행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적지 않은 수의 사형집행인들이 우울증과 괴이한 버릇에 시달렸다는 기록들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시간이 흐른 후 18세기에, 많은 사형집행인들이 실전의 해부학 경험을 살려 의사가 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지만.
다양한 직업들, 그리고 그 시대 상황에 대한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원래 역사를 좋아하지만 이런 종류의 문화사는 더욱 매력적인 것 같다. 뭐랄까 정치나 전쟁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사람들이 먹고 숨쉬고 생활하는 현장을 들여다본다는 설렘이 있어서. 그 시대 유럽인들의 일상생활을 떠올려보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아서 무엇부터 꼽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장 낭만적으로 느껴졌던 직업은 실루엣이 비치는 종잇조각이나 천을 오려내는 실루엣화가와 지하관 우편배달부이다. 몇십 년 전까지도 편지들이 오가는 관을 깔아놓은 지하 시스템으로 세계의 도시들이 연결되어있었다니. 역시 세상은, 놀라운 일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