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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
마이클 모퍼고 지음, 김민석 옮김 / 풀빛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몰입해서 읽었다.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며 책을 덮으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스크린에서 재현해낼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린다. 이미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으로 인정받아 영국 웨스트엔드뿐만 아니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연극으로 상연되기도 했다니... 연극으로는 어떻게 이 장면들을 표현했을까, 전쟁 장면은 무대에서 어떻게 연출할 수 있었을까. 작년 토니상 연극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는 연극 <워 호스>도 언젠가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둘도 없는 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소년 앨버트와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던 조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에 휘말리면서 가혹한 운명을 맞게 된다. 앨버트와 함께 들판을 마음껏 달리는 것을 좋아하던 농장 말은 가혹한 훈련 끝에 기병대의 말이 되고,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나 포로로 사로잡혀 힘겹게 부상병들을 실어 나르게 되고, 대포를 끄는 데 이용되기도 하고, 숱한 일들을 겪은 끝에 완충 지대에서 헤매다 유일하게 살아 돌아와 극적으로 앨버트와 만난다.
조이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가축 부대에 입대한 앨버트가 조이와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 파상풍에 걸려 죽어가는 조이를 살리기 위해 앨버트를 비롯한 수많은 병사들이 스물네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간호하는 장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들이 정말 많았다.
전쟁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끔찍하고 잔혹한 것이지만, 말 조이의 눈으로 본 인간들의 전쟁은 더욱 그러한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 목숨도 하찮게 취급받는 전시에서, 말들은 단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실어 나르는 도구일 뿐.
‘... 지금은 대포의 성능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대포보다 훨씬 못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단지 일만 하는 말일 뿐이었다.’(121쪽)
모두가 미쳐 돌아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이와 탑손은 묵묵히 인간들을 위해 대포를 끌고 부상병들을 실어 나른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끝내 아름다운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의 폭력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사람이 끝내 지켜야 할 것들을 소중히 품어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다.
주인공인 조이와 앨버트의 우정도 무척 아름답지만, 조이의 기억을 채운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도 모두 애틋하기만 하다. 앨버트와 헤어진 조이에게 매일 저녁 찾아와 말을 건네며 그림을 그렸던 니컬스 대위, 뛰어난 기수는 아니었지만 전쟁터에서 극진히 조이를 보살펴 주었던 워런 기병, 사랑과 정성으로 조이와 탑손을 치료하고 돌봐 주었던 에밀리와 할아버지, 쉴 새 없이 혼잣말을 하는 미치광이 노병이라고 불렸지만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반대하는 다정한 사람이었던 프리드리히, 전쟁이 끝나고 말들을 경매로 팔게 되자 조이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벼락 상사와 마틴 소령... 앨버트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조이는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진짜 영웅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216쪽)고 회상한다. 전쟁 속에서도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진짜 영웅이었던 그들... 틀림없이 조이의 가슴 속에는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빛나고 있겠지. 조이, 주인공답게(?) 고생은 꽤나 했지만 넌 참 운 좋은 녀석이야.^^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잔혹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다시 절실하게 깨닫게 해 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딛고 사람들이 끝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전쟁터에서 탄약을 끌던 조이와 탑손의 진정한 친구였던 노병 프리드리히가, 말들에게 나직하게 들려줬던 이야기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너희는 친구니까 말해 줄게. 나는 연대에서 유일하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야. 미친 건 다른 사람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모르고 있지. 전쟁에 참가해 싸우면서도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몰라. 그게 미친 거 아니니?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를 수 있지?... 너희 둘은 내가 이 어리석은 전쟁에서 만난 생명체 가운데 유일하게 이성적인 동물이야.'(130쪽)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