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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평전 : 시대공감
최열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 박수근의 작품들을 책에서 만났던 때를 기억한다. 어린 눈에도, 왠지 자꾸 마음이 끌리는 독특한 느낌의 유화들이었다. 마치 거칠거칠한 나뭇결이 그대로 묻어날 것 같은 질감의 화폭에 담긴 소박한 마을과 집, 고목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투박하면서도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강렬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니 박수근의 생애에 대해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간간이 그의 작품이 한국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거나, 그의 대표작이 위작 시비에 휘말렸다거나 하는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이렇게 박수근의 생애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과 그의 작품들, 그리고 박수근과 관련된 사진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는 아름다운 평전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참 많다.
특히 열 세 살의 소년 박수근이 밀레의 세계로 거침없이 빠져 들어가게 되면서, 꿈자리에서 ‘밀레와 같은 화가’로 자라날 수 있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늘 질문하는 장면을 읽으며 가슴이 저릿해졌다. 전문 미술교육은커녕, 사업의 실패와 전답마저 모두 잃어버린 집안형편에 보통학교만 겨우 졸업할 수 있었던 소년이 소중히 꿈을 품고 더듬거리면서도 끝끝내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눈에 잡힐 듯 했다.
하지만 주류 미술계의 냉혹한 대우는 박수근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고, 불안한 시대 속에서 경제적으로도 늘 궁핍함에 시달리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흐르는 물처럼, 허심한 사람이었다고 평전은 전한다. 일본에서 열린 국제자유미술전에서 주최측이 그림을 분실했을 때, 경찰에 신고하라는 부인을 만류하며 “그 그림 가져간 사람이 돈은 없고 작품은 탐이 나고 해서 가져갔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는 일화를 읽으며 그의 그림과 그의 성품이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의 자연 풍광과, 그 속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질박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냈던 화가 박수근. 잎사귀 한 장 남지 않은 벌거숭이 나목을 즐겨 화폭에 담았던 화가 박수근. 고난의 삶 속에서 끝끝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그가, 캔버스 앞에 앉아 가난한 사람들과 앙상한 나목의 스케치에 붓질을 하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별세 직후 유족의 노력으로 겨우 유족전람회를 열 수 있었을 만큼 소외된 존재였던 박수근,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작품들이 재발견되었다는 것, 드디어 이방인의 시선이 아닌 동족의 시선으로 위대한 거장으로 평가되었다는 것을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고 알고 있을까. 부디, ‘저런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어떻게 하면 남편에게 더 잘해 드릴까 하는 생각뿐’으로 평생을 함께 살았던 김복순 여사와 함께 빙긋이 웃고 계셨으면 좋겠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