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것만 생각해
카림 르수니 드미뉴 지음, 김혜영 옮김, 조승연 그림, 곽이경 해제 / 검둥소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여러분의 프랑스어 교사니까 ‘호모’라는 단어에 대해 공부해 볼까요? 누가 이 단어의 뜻을 얘기해 보겠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앙글레 선생님은 입술을 깨물고 서 있었고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남자끼리 자는 사람이요.”
“호모는 변태를 말합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것이요.”

 이런! 책을 읽다가 가느다란 한숨이 나왔다. 어느 나라나, 어른들로부터 별 생각 없이 학습된 동성애 혐오는 별다를 게 없는 건가.

 10년쯤 전 일이었을 것이다. 연예인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하고, 이어 트랜스젠더 하리수 씨가 데뷔를 하고... 말 그대로 성소수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단박에 떠올랐다. 사고에 콘크리트 처리한 어르신들은 세상 말세라며 혀를 찼지만, 동성애자 친구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우리사회의 동성애 혐오가 진심으로 끔찍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강산도 변한다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인식이 좀 변했을까. “난 내게 몸이 있다는 걸 몰랐다”로 소설은 시작한다. 열다섯 살 사춘기 소년 이스마엘은 말을 이어간다. “이제 나는 나에게 몸이 있는 것을 안다. 이 끔찍한 한 해가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쉽지 않은, 때론 끔찍한 경험이다.

 소년 이스마엘에게는 앙글레 선생님은 선생님이기 이전에 이웃사촌이고, 엄마의 제일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끝내주게 재미있는 책들을 빌려주고, 롤링 스톤즈를 처음 접하게 해 준 선생님을 좋아했지만, 친구들에게 으스대기 위해 선생님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폭로해버린 이스마엘. 자신이 아는 것에 지어낸 것까지 보탠 소문 덕분에 한 달 동안 쉬는 시간에 ‘왕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이후 자신이 친구들에게 ‘호모’라고 놀림을 받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한 번도 자신이 ‘호모’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던 이스마엘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게 되면서 한마디 대꾸도 못 하고 도망치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내가 정말 호모면 어쩌지?’ 열다섯 살 소년의 심장을 옥죄는 고민은 나름대로 절실하다.

 급기야 수업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혼자서 괴로워하던 이스마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다름아닌 이스마엘이 곤경에 빠뜨린 앙글레 선생님. 둘 사이의 신뢰와 우정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이스마엘은 혼란스러움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여러 가지로 고생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친구들의 상황은 (아직도) 훨씬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레즈비언 선생님의 당당한 커밍아웃이나 부모님과 아들이 성 정체성에 대해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 “정상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에겐 정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비정상일 수 있다고요”하며 엄마가 아빠에게 항변하는 장면을 읽으면서도 그렇게 느꼈다(우리나라 같으면, 엄마 아빠가 함께 아이를 ‘비정상’으로 몰아 갈 확률이 훨씬 더 높지 않을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느낌. 하지만 이런 책들이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부디 우리나라의 수많은 이스마엘들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두려움 없이 고민할 수 있기를, 터놓고 주변의 친구와 어른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혼자 고민하고 세상의 편견과 자기 부정을 혼자서 극복해야 하는 시린 상황에 놓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많이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청소년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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