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슈테판 하르보르트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성장하면서 가끔 의문을(그리고 반항을) 품게 했던 말들 중의 하나가 “여자가 어떻게...”하는 말로 시작하는 말들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예를 들어 늦게까지 술을 마신다거나, 품행이 단정치 않은 행동을 한다거나 해도 그 행동의 주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언제나 서슬 퍼런 기준이 되곤 한다.

 그런데 여성이 연쇄살인범이라니. 이 조합은 정말이지 익숙하지 않다. 그러고 보면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여자였던 경우는 ‘미드’말고 현실에서 접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를 충격과 불안에 빠뜨렸던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을 비롯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굵직굵직한 외국의 연쇄살인범들의 이름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살인, 특히 연쇄살인 하면 당연한 것처럼 사람들은 남성을 범인으로 상정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품고 낳고 키우는, 여성성과 모성애의 상징인 여성이 연쇄살인을 저질렀다는 데서 오는 충격과 배신감(?)의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여자가 어떻게...”의 최종 버전인 셈이랄까.

 제목이 주는 느낌이 강렬한 이 책은, 연쇄살인을 전담하고 있는 수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독일인 저자가 쓴 책이다. ‘미드’에서 자주 접해서 친숙한 느낌까지 드는, 국제적으로 응용되는 프로파일링 기법도 개발하기도 했고, TV나 라디오, 범죄 드라마나 영화에 범죄 전문가로서 자문 역할도 해준다고 한다. 여성이 ‘어쩌다가’ 연쇄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추적하고자 썼다고 한 이 책은 읽기 시작하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만큼 흡인력이 있었다. 꼭 추리소설처럼 술술 읽히기도 하고... 심리학적으로 깊은 내용까지 다루지는 않았지만, 연쇄살인을 저지른 여성들의 배경과 그 이유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보니 그녀들의 심리와 범죄 심리 전반에 대한 분석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이 책은 무엇보다 범죄 스토리와 범죄 심리를 다루는 책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선정성’에 빠지지 않고 시종일관 균형 있는 시각을 유지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이 책에는 여섯 장에서 여성 연쇄살인범들의 사례들을 다루는데, 사실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흥밋거리로 가기 딱 좋은 주제들이 아닌가. 새로운 애인과 공모해 남편을 살해한 여성, 세 자녀를 둔 엄마이면서 자기가 낳은 9명의 아기를 죽도록 방치한 여성, 독극물로 세 명의 남편과 가족을 죽음으로 여성, 자신이 돌보는 환자들에게 치사량의 약물을 복용시킨 간병인, 17명의 환자에게 죽음의 주사를 놓은 응급실 간호사, 남자에게 끌려 다니며 그를 위해 살인을 일삼았던 여성...

 하지만 저자는 이런 무시무시한 사건들에 대해 선정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를 여성 연쇄살인범들의 인생에, 그녀들의 속사정에 초점을 맞춰 기술한다. 물론 “그런 삶을 살았다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변론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여성 연쇄살인범들의 인생을 살펴봄으로써 사회 체제적인 차원에서 여성 범죄를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측면이 있음을 밝히고, 이를 개선하자고 힘주어 말한다. 
 

 특히 2장 ‘침묵 그리고 살인’에서 다룬 영아 살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살인 사건에서 여성이 범인인 경우는 단지 15퍼센트에 해당하는데(과실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살인의 경우는 12퍼센트) 경찰의 범죄 통계에서 여성이 범인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유일한 범행인 영아 살해. 가끔 우리 신문 사회면에서도 미혼모나 혼외 관계로 임신을 한 여성이 영아 살해를 했다는 기사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사람의 탈을 쓴 비정한 모정’ 하며 혀를 찬다.
 왜 이 분야(?)만 유독 여성이 압도적인 비중일까. 당연히 결과적으로 임신을 숨기고 부정하다가 아이를 낳아 죽이는 주체는 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인 모든 연관을 솎아버리고 비극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말한다. 원치 않은 임신의 씨를 뿌린 남성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게다가 아기를 가진 여자를 홀로 버려두고 외면한 남자야말로 비극을 낳은 주범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그의 이야기에 진한 공감이 간다. 아홉 명의 아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끝에 죽음을 맞도록 방치했던 수잔네 헤흐트, 언론이 연일 그녀를 악마로, 마녀로 대서특필했을 때 그녀의 남편은 어디에 있었을까?

 추리물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읽다보면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들기도 했다.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타인의 소중한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물론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고 그녀들이 저지른 범죄, 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대한 책임은 물론 그녀들에게 있다. 세상에는 그녀들과 비슷한 환경에서(혹은 더 힘든 환경에서)도 범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그래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사회적인 책임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 여성이 살인을 저지르는 현상을 그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게 강제한 것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저자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볼 주제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특히 뉴스에서 영아 살해 기사가 나올 때마다, 모성 이데올로기에만 사로잡힌 기사와 댓글들이 도배하는 우리 사회에선 더더욱.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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