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4
안나 지음, 김선희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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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이민 1.5세대인 작가의 첫 작품 <천국에서 한 걸음>을 작년 말엔가 만나고 진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쌍꺼풀>의 조이스도 <천국에서 한 걸음>의 영주와 마찬가지로, 이민 1.5세대로서의 작가의 정체성과 성장기의 경험이 담겨있는 인물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소설은, 낯선 환경에서 소수민족으로서 받는 조이스의 차별이나 소외감을 심각하게 파헤치기보다는, 씩씩하고 발랄하게 대응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게 묵직하게 인상 쓰지 않는, 경쾌한 분위기가 이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예를 들면, 학교 매점에서 학년앨범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조이스가 계산대에서 잠시 지체하자 뒤에 있던 근육질 남학생이 말한다.

 “젠장, 동양 계집애들은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꾸물거린다니까.”(p.21)

 물론 조이스는 상처받고 ‘못 들은 체하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p.22). 하지만 이 소녀는 혼자 우울해하기보다는 친한 친구 지나와 이런 식으로 울분을 풀 줄 안다.

  “뭐 하려고? 가서 때리게? 
  “아니, 그 멍청이에게 대안 명칭을 가르쳐 주려고. 동양 계집애가 아니라 아시아 계집애라고 말이야.”(동양[oriental]이란 말에는 인종차별적 의미가 있다)
...(중략)... “신경 꺼. 네안데르탈인을 어떻게 가르치니?”(p.23)

 조이스가 일부 한국 사람들의 지나친 유행이라 여겼던 성형수술, 쌍꺼풀 수술에 대해서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재미있다. 좋아하는 존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50달러짜리 학년 앨범을 새로 사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받게 된 사인. ‘안녕, 린’이라고 쓴 존의 글씨에 조이스는 눈을 떼지 못한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가는 눈을 한 전형적인 아시아 여자애, 패션 감각도 꽝인 린과 자신을 착각했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는 조이스.

 이 발랄한 소설은, ‘쭉 찢어진 눈’(slant-eyes. 동양인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속어)을 수치스러워하며 백인처럼 또렷한 눈을 갖고 싶어 하는, 좋아하는 존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한 소녀의 외모 콤플렉스에 대한 극복 외에도 여러 가지 성장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 성장을 엮어가는 결들이 예민하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명랑한 에너지를 놓지 않고 나름대로 절실하게 아파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천국과 지옥이 오가는 사춘기 소녀의 가슴 졸이는 첫사랑, 오렌지데일 고등학교의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학생회장이었던 데다가 외모도 공부도 자신보다 뛰어난 헬렌 언니에 대한 열등감, 때로는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공감과 신뢰로 우정을 쌓아가는 친구, 백인 주류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노력이 엇나가 성형중독자가 되어버린 이민 1세대인 고모를 보며 느끼는 감정, 복권에 당첨된 고모가 내미는 쌍꺼풀 수술에의 유혹 앞에 ‘내가 그걸 정말 원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뭐든 쉽게 얻는다고 생각했던 언니가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에게 했던 커밍아웃, 좁은 이민사회에서 언니의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소문이 나서 등을 돌리는 보수적인 한인 교회... 열여섯 살 조이스가 거쳐 가는 성장의 관문들은 만만치 않다. 특히 낯선 나라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고생하는 이민 1세대인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제나 모범적인 착한 딸이 되어야만 했던 헬렌이 스스로를 찾아내고 선언한 커밍아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항상 언니에 대한 경쟁의식과 열등감에 짓눌려 있던 조이스에게도 타인의 삶을 보는 눈이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겠지.

 조이스는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정체성, 민족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여러 가지 사건들을 거치며, 결국 ‘그냥 나인 것도 괜찮은 것 같다’며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다. 이 소설은 단순하게 성형수술을 통한 외모 가꾸기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종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몸에 전전긍긍하며 ‘보수와 개조’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에 청소년들에게만 ‘내면의 가치’를 좇으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으며 몰염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이상화해서 모두들 눈먼 채 좇아가는 것을 벗어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그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라면, 수많은 조이스들이 자신의 쌍꺼풀 없는 눈을 ‘그냥 나인 것도 괜찮은 것 같다’라고 사랑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 훨씬 쉬울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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