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고요를 만나다 - 차(茶) 명상과 치유
정광주 지음, 임재율 사진 / 학지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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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해남 대흥사 한 스님이 등기로 부쳐온 햇차 한 봉지
물을 달여 햇차를 끓이다 생각한다
누가 나에게 이런 간곡한 사연을 들으라는 것인가
마르고 뒤틀린 찻잎들이 차나무의 햇잎들로 막 피어나는 것이었다
소곤거리면서 젖고 푸른 눈썹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문태준, <햇차를 끓이다가-서시(序詩)> 전문

 ‘차’라고 하면 항상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알게 되었던, 첼로를 하시던 선생님인데 선생님 댁에 놀러 가면 언제나 제대로 된 다기세트를 꺼내어 정성스럽게 차를 우려내 주시곤 했다. 솔직히 차 맛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그건 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정중히 권해주시는 찻잔을 받아들며 홀짝일 때, 왠지 어른이 된 듯한(?) 우쭐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뭔가 기품어린 고요함이 느껴지던 그 시간을 기억한다. 그 후 그때의 경험을 잊지 못하고 고등학생의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2만 원짜리 다기세트를 사서, 종종 동생과 함께 차를 우려 마시는 흉내(?)를 내곤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을 되짚어보니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비록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차 마시기는 그 이후 꾸준히 내 일상의 소중한 일부가 되어 왔으니 말이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명상을 즐기던 저자는, 우연하게 접한 차에 매료되어 명상이 더욱 풍부하고 촉촉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차 명상을 사람들이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에세이 형식의 이 책을 썼다. 편안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마음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무엇보다 서정적이고 잔잔한 사진들이 글의 이미지와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글을 읽으며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자체가, 바쁘게 휘둘려가던 일상의 싱그러운 휴식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삶이 편리해지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욱 바빠지고 메말라 간다. 이렇게 바쁜 세상에 웬 명상인가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차 명상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차를 마시며 ‘지금 이 순간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편안하게 바라보는 것,’ 이것이 저자가 안내해주는 차 명상이다. 
 

 차에는 자연과 사람이 빚은 수많은 인연들이 담겨 있고, 마음을 다해 우려낸 차 한 잔은 몸과 마음을 맑은 기운으로 정화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깨어 있는 마음으로 차를 준비하고 음미하고 명상을 수련해 봄으로써, 왜 옛 선사들이 차와 명상을 하나라고 했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척박한 시대를 자유로운 마음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 차 명상은 내면의 충만함을 담는 즐거운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너무나 바쁘다. 갈수록 거침없이 속도전을 펼치는 세상, 누구나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지쳐서 끌려가는 삶을 잠시 멈추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차를 매개로 오직 '나'라는 존재에 집중하기 위한 방법을 글과 사진으로 따뜻하게 전해주는 에세이를 만난 시간이 참 행복했다. 이 책 덕분에 즐겁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차를 마시는 시간은,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지친 나를 위한 따뜻한 위로이고, 또한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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