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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자의 주관적인 견해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인생1(人生)「명사」「1」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2」 어떤 사람과 그의 삶 모두를 낮잡아 이르는 말.「3」 사람이 살아 있는 기간.
만사2 여러 가지 온갖 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한 사람의 인생에는 다양한 상황과 사건이 숨어 있다. 이것이 말, 특히 밥이나 술을 먹으면서 떠도는 말로는 많이 오고 간다. 그래서 지인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많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와 가깝지 않은 대부분 일반인(그리고 일반 독자들)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을 자세히 알아보는 방법은 자서전이나 평전, 위인전을 통해, 그것도 날것이 아닌 정제된 것들이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작가가 표지 바로 뒤에 있는 ‘紙短情長(지단정장)’을 내세워 이번엔 자신의 인생을 다시 답사해 보는 인생 문화 답사기를 내놓았다. ‘지단정장’은 ‘종이는 짧고 정은 깊어’라는 뜻이다.

紙短情長(지단정장)의 의미
잡문론(雜文論)
작가는 이 책의 성격을 사실상 두 가지로 정의했는데, 하나는 잡문으로 이루어진 책이고, 하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책이다.

책을 펴내며 – 나의 잡문과 글쓰기 일부
잡문이란? 작가는 산문이 아니라 잡문을 썼다고 했다. 즉 산문과 잡문을 다르게 본 것이다. 조상들이 작성했던 개인 문집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잡문’과 루쉰의 ‘잡문’에서 따온 것이다. 살면서, 경험하면서 얻은 글감 또는 주제를 자신의 언어와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얻은 인생과 그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잡문에 대한 설명으로 서문을 시작했고, 내용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한 연속적인 글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전반부는 자신이 겪었던 일에 관해 서술한다. 학창 시절과 미술 평론가 시절, 문화재청장(지금의 국가유산청) 시절 뒷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후반부는 자신과 함께 일했던, 그리고 독재정권 시절 함께 싸울 때 같이 있었던, 그리고 자기 친구였던 이들에 대한 일종의 평전들이 나온다. 돌아가신 분들이 대다수여서 일종의 추도사 형식의 글도 볼 수 있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첫 번째 장에서는 자기 가족이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가 자주 하던 바둑 이야기, 부모가 살았던 일제 강점기 말기와 한국 전쟁 이야기, 그리고 저자 자신이 태어나던 이야기까지 주로 자신 가족과 그 주변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일제 강점기 말기부터 6·25 이후의 삶까지 자신을 키우는 과정에서 나온 일화가 바로 가장 인상깊었던 일화인 바로 어머니 이력서이다.
두 번째는 주로 자신이 대학교수, 평론가로서 일하던 시절과 문화재청장(지금의 국가유산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의 일화로 이야기를 꾸려 나가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자신의 일생을 다룬 잡문만의 역할을 뛰어넘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서 엿볼 수 있는 정신과 아름다움, 그리고 얽혀있는 역사에 대해서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 외국인이 이 책을 본다면 이 부분은 꼭 봐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달항아리 백자, 청풍 관아의 한벽루, 조선왕조실록, 초서, 백자 철화 끈무늬병과 허수아비까지. 각 청장들이 모여서 자신의 담당 관할구역이 얼마나 큰 구역을 다루는지 대결하는 대목은 덤으로 추가된 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 대목도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한 내용이었다.
세 번째는 중국과 일본을 주제로 잡고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과 ‘일본편’을 작성하면서 벌어진 일화에 관해 소개한다. 백두산의 절경을 본 것, 중국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에서 느낀 개인적 소회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홍대용의 연경(베이징) 방문에 관한 역사, 일본에서의 ‘앙꼬’의 의미 등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 중국편과 일본편에서 느꼈던 개인의 소회를 엿볼 수 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시인, 화가 등 예술과 관련된 분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섯 번째 이야기는 예술가도 있긴 하지만 주로 민중을 위해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한 분들의 이야기이다. 여기 나오는 일화 중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 구분 없이 자신이 겪었던 일과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 하나 때문에 그림을 그렸던 화가가 기소되고, 1심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 3심에서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받았던 사건의 재판 진행 상황을 읽을 때는, 재미있으면서도 너무 씁쓸했다.
부록인 여섯 번째 이야기는 어떤 방송에서 약속했었던, 글을 쓰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이 글을 쓰기 위한 15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했던 내용도 들어 있다. 더불어 자신이 썼던 글도 일부를 소개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주제를 설정하고 소재를 모으는 데 사용된 저자의 부채 메모도 볼 수 있고, 서울대에서 작성한 저자의 두 개 과목의 답안지를 직접 볼 수 있다.

저자의 부채 메모
단숨에 읽을 정도로 글맛이 나는 이유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일화에 글솜씨가 더해져서 단숨에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토대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사람들은 1950년대, 60년대 및 70년대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사회상이나 사회 분위기를 잘 모른다. 직접 몸으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들을 실감나게 풀어가는 것을 보면 글 읽을 맛이 나고 장관이 펼쳐지는 것 같다.
작가와 같은 스타일의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원칙을 지니는지를 아는 데도 도움이 된다. 부록에서 글쓰기의 원칙을 언급할 때 이 책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썼던 자신의 문장들을 발췌하면서 설명한다. 작가의 주 저서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이 책에서 썼던 글쓰기의 원칙과 비법도 함께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마치며
자신에게는 ‘잡문책’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한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책과 방송에서는 알 수 없었던 저자의 개인사를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책이다. 그래서 저자의 속살을 약간 본 듯한 느낌도 난다.
이 책의 마지막에 나와 있는 글쓰기 15원칙과 자신이 썼던 글쓰기 자료들을 보면서 내가 쓰는 서평과 글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에 대해서 다룬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원칙과 기법이 있는줄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많은 사색과 반성의 기회가 된 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한 사람의 인생 내용을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심각하게 그리고 더 많은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면서 많은 사색을 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