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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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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강력 추천합니다.

샘솟는 질문을 만드는, 그 질문 속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소설,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을 읽고,,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에 대한 명성은 얼핏 들었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소설사랑북클럽"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의 작품은 영원히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단편집 <대성당>에 실린 12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도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느낌은 적확했다. 레이몬드 카버는 실로 무슨 말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걸, 두번째 다시 읽으면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란 무엇인가>에 수록된 그의 인뷰를 찾아보았다.

장편이 아닌 단편 소설을 쓴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아무도 저에게 작가가 되라고 요구한 적은 없어요. 그러나 살아남고, 공과금을 내고, 식구들을 먹이고, 동시에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그래서 2-3년씩 걸리는 장편소설을 쓸 수 없었다는 것)..................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몇 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남은 거라고는 낡은 차 한 대와 월셋집,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새로운 빚쟁이들뿐이었습니다. 참 우울한 상황이었죠. 제가 정신적으로 흔적 없이 말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술이 문제가 되었죠. 저는 대충 포기했고, 권투 경기에서 하듯이 수건을 내던지고 나서 하루 종일 심각하게 술을 마셔댔어요"(작가란 무엇인가, 323쪽)

인터뷰 질문, 당신의 등장인물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려고 애를 쓰나요?
"등장인물들이 애를 쓴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쓰는 것하고 성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요. 어떤 삶에서는 사람들이 성공을 합니다......그러나 다른 삶에서는 사람들이 하려고 애쓰는 일, 가장 하고자 원하는 일, 삶을 지탱하는 크고 작은 일에 성공하지 못하지요. 저의 직간접적인 경험은 대부분 후자에 가깝답니다. 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행동이 뭔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점에 도달해 있지요........삶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삶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태를 바로잡고 싶어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어요"(작가란 무엇인가, 331쪽)

인터뷰 질문, 당신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의 작품이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바뀌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곧 제 삶이 결국에는 전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예술이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어렵게 깨달았습니다..........아이작 디네센은 매일매일 희망도 절망도 없이 조금씩 쓴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마음에 듭니다..............특정한 삶을 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분야의 삶을 전보다 약간 더 이해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작가란 무엇인가, 347쪽)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그의 인터뷰가 실로 '그답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 그의 만들어낸 소설속의 인물들이 참으로 그답다,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소설에는 하나같이 실의와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답답하다. 깜깜하다. 처음 읽을 때는 '이건 뭐지?'라는 느낌만이 확연하다. 작가가 개입해서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에피소드가 일어났고, 인물들이 처한 공간과 상황만이 독자에게 말을 한다. 말을 한다는 것은 알려준다는 것이 아니라 보여준다는 뜻이다. 상황이 있지만 그 상황에 대한 기승전결의 논리적 절차, 이해를 위한 섬세한 배려 등은 전혀 없다. 그저 작가가 보여준 것들을 통해서 독자가 추측하고 알아차리고,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공감하게 된다. 이 과정 동안 독자는 무수한 질문을 하면서 그가 만들어놓은 인물들에게 몰입하게 된다.

"뭐지? 뭘 말하려는 거지? 왜 이런 기이한 상황이 제시되는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진짜로 이렇게 끝나버린다고? 희망이란 건 없다고? 이게 결론이야?"

레이몬드 카버의 글쓰기 방식은 참으로 특이하였다.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인터뷰에서 카버는 존경하는 작가 중 일착으로 '헤밍웨이'를 꼽았다. 그러고보니 헤밍웨이의 문체가 있는 것도 같다.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 주위를 보여줌으로써 추측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쓰기 방식, AI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답을 준다. 카버의 소설을 칭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설명이다.

"단순한 문장과 묘사, 플롯의 최소화-극적인 사건이나 복잡한 플롯 전개는 거의 없으며, 일상의 단편적이거나 사소한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고 해석하도록 유도, 인물의 행동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그 이면에 담긴 고독, 소외, 불안과 같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좀 알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수없는 질문들이 생겼던 것은 독자인 내게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칸막이의 객실>은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 열차의 칸막이 객실에서 일어난 일의 에피소드다. 아버지 마이어스는 팔 년 동안 한번도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 아들이 편지를 보낸다. 8년만에 보낸 아들의 편지는 '사랑해요'라는 말로 끝맺는다. 이걸 마이어스는 불가사의하게 느낀다. 얼마간 숙고한 뒤 그 또한 '사랑하는 아빠가'라는 끝맺음으로 아들에게 답장을 하고 스트라스부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사랑해요'와 '사랑하는 아빠가'의 워딩이 어찌나 어색스러운지, 설명이 없지만, 그 느낌이 전달된다. 8년 전, 아들과 아빠는 서로를 죽일 뻔했다. 그 때 엄마는 부엌 살림을 온통 깨부수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다만 마이어스가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은 추측할 수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부는 이혼을 했고, 아들과도 헤어졌다. 그 기억이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마이어스가 '사랑해요'라는 맺음말이 있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아들을 만나러 휴가를 내 밀라노를 거쳐 프랑스로 가는 길, 열차의 객실이 이 단편의 공간적 배경이다. 마이어스는 미국인일테고 그는 유럽에 와 있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단절, 불통, 불편의 공간이다. 작가가 구태여 이 공간 설정을 한 것은 아마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서 사용한 도구 같다. 마이어스는 열차의 객실에서 여행 안내서를 읽는다.

"그 책들이 설명하는 곳에 가기 전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 겉았다. 자신이 보지 못하거나 하지 못하고 지나친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처음이자,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마지막 방문이 될 게 틀림없는 이탈리아를 떠나는 그 시점에서 그 나라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발견하게 돼 그로서는 후회가 됐다"(<대성당, 칸막이 객실> 75쪽, 문학동네)

마치 먼저 인생 안내서라는 것을 좀 읽었더라면, 이 지경까지 파국은 겪지 않았을텐데,라는 마이어스의 후회가 담긴 듯한 문장이다. 이탈리아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단 한 번 뿐인 기회였는데 말이다. 같은 객실 안에 있는 승객은 잠을 잘도 자지만 자신을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긴장과 불안 탓이겠지.

외투를 두고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아들에게 줄 상당한 값의 시계가 사라졌다. 심증으로 같은 객실의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지만, 언어의 다름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들이 모두 아버지 마이어스와 아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장치처럼 읽어졌다. 언어가 달라서 불통의 상태. 다만 언어의 다름만이 불통의 이유가 되겠는가. 얼마전 <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드라마를 잠깐 시청했다. 세상에 언어가 몇 개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70억 세계 인구수만큼의 언어가 있을 것이라는 답변.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인류의 불통은 기정사실이다. 마이어스와 아들은 극심하게 불통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고독과 외로움이 소설 곳곳에 묻어난다. 단체관광을 신청하지 않고 혼자서 여행을 온 것, 아내와 늘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이혼전이겠지)는 베니스에 왔으면서도 즐겁기는커녕 실망스럽기만 한 것, 이렇게 작가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 마이어스가 느끼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나타내주고 있는 듯하다.

아이를 위한 선물로 고급시계를 준비했건만, 시계를 잃어버린다. 어색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그런 만남이었지만 시계는 아들을 만날 구실이 되어주기도 했는데,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나마 시계가 만남의 어색함을 완화시켜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마이어스는 아이와 만나기로 한 스트라스부르역에서 하차하지 않는다.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곧장 그 열차를 타고 파리로 가고자 했으나 마이어스가 잠깐 2등칸으로 가 있는 동안 중간에 마이어스가 탔던 1등칸 객차가 다른 열차와 교체가 된다. 결국 마이어스는 파리로 향하는 열차를 놓치고 2등칸에서 미아가 되어버리고 만다. 자신의 여행가방도 1등칸에 있었으니 지갑과 가방마저 잃어버렸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이 상황은 정확하게 마이어스의 인생 상황과 일치한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방향이라면, 조만간 그는 알게 되리라"(바뀐 2등칸의 목적지를 알 수 없으니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 또한 절망적인 상황이다. 문제가 발생했으나 해결할 수가 없다)(86쪽)

아이와 화해를 하든, 관계를 회복하든, 일단 먼저 만났어야 다음 단계가 있다. 그러나 마이어스는 시작이 될 만남부터 포기해버리고 만다. 만날 구실이 되어주었던 '시계'를 잃어버렸을 때, 이미 아이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었다. 결국 마이어스의 인생은 또 한번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객차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이 그 상징일 것이다.

"...결국 자신은 아이가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에게 들었다..................살아오면서 수많은 바보짓을 했지만, 이 여행은 그중에서도 가장 멍청한 일일지도 몰랐다..........너무나 분명하게 자신에게 달려들던 그 순간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쓰라림이 물결처럼 마이어스를 지나갔다.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 삼켜버렸고..........번갈아가며 병도 주고 약도 주었다........."(82쪽)

아이를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마이어스의 마음이다. 아직 그는 아이와 화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작가가 마이어스의 마음만 언급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의 마음은 독자의 상상의 영역이다. 과연 마이어스만 얻은 상처일까, 아이가 잘못했기 때문에 마이어스의 마음이 철벽처럼 닫힌 것일까. 아닐 것이다. 마이어스의 책임이 훨씬 크다.

<칸막이 객실>에서 느껴보았듯이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해피엔딩이란 것이 없다.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대부분의 독자는 아들을 만나기 싫어하는 마이어스의 심정을 일정 부분 이해하면서, 그가 아들을 만나 화해하기를 바라지만, 작가는 화해나 평화의 국면을 애써서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작가, 레이몬드 카버가 바라보는 세상일 것이다.
이미 언급했던 인터뷰의 내용처럼.

"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행동이 뭔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점에 도달해 있지요........삶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삶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태를 바로잡고 싶어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어요"

그의 글에는 판타지란 게 없다. 구차하고 어쩌지 못하는 삶의 현실에 직면하는 것, 그의 소설의 효능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예술의 효능같은 건 믿지 않았다. 다만 조금의 이해를 도와줄 뿐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만약 이런 인물을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만났더라면, 나는 그를 비난하는데 일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그를 만나고보니 깊은 연민의 물결이 일렁인다. 어쩌지 못하는 자기의 한계, 더이상 발을 대딛지 못하는 그 비열함(마이어스가 느꼈던),에 대한 깊은 연민과 슬픔.

인생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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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강력 추천합니다.

샘솟는 질문을 만드는, 그 질문 속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소설,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을 읽고,,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에 대한 명성은 얼핏 들었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소설사랑북클럽"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의 작품은 영원히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단편집 <대성당>에 실린 12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도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느낌은 적확했다. 레이몬드 카버는 실로 무슨 말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걸, 두번째 다시 읽으면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란 무엇인가>에 수록된 그의 인뷰를 찾아보았다.

장편이 아닌 단편 소설을 쓴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아무도 저에게 작가가 되라고 요구한 적은 없어요. 그러나 살아남고, 공과금을 내고, 식구들을 먹이고, 동시에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그래서 2-3년씩 걸리는 장편소설을 쓸 수 없었다는 것)..................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몇 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남은 거라고는 낡은 차 한 대와 월셋집,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새로운 빚쟁이들뿐이었습니다. 참 우울한 상황이었죠. 제가 정신적으로 흔적 없이 말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술이 문제가 되었죠. 저는 대충 포기했고, 권투 경기에서 하듯이 수건을 내던지고 나서 하루 종일 심각하게 술을 마셔댔어요"(작가란 무엇인가, 323쪽)

인터뷰 질문, 당신의 등장인물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려고 애를 쓰나요?
"등장인물들이 애를 쓴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쓰는 것하고 성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요. 어떤 삶에서는 사람들이 성공을 합니다......그러나 다른 삶에서는 사람들이 하려고 애쓰는 일, 가장 하고자 원하는 일, 삶을 지탱하는 크고 작은 일에 성공하지 못하지요. 저의 직간접적인 경험은 대부분 후자에 가깝답니다. 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행동이 뭔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점에 도달해 있지요........삶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삶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태를 바로잡고 싶어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어요"(작가란 무엇인가, 331쪽)

인터뷰 질문, 당신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의 작품이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바뀌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곧 제 삶이 결국에는 전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예술이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어렵게 깨달았습니다..........아이작 디네센은 매일매일 희망도 절망도 없이 조금씩 쓴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마음에 듭니다..............특정한 삶을 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분야의 삶을 전보다 약간 더 이해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작가란 무엇인가, 347쪽)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그의 인터뷰가 실로 '그답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 그의 만들어낸 소설속의 인물들이 참으로 그답다,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소설에는 하나같이 실의와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답답하다. 깜깜하다. 처음 읽을 때는 '이건 뭐지?'라는 느낌만이 확연하다. 작가가 개입해서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에피소드가 일어났고, 인물들이 처한 공간과 상황만이 독자에게 말을 한다. 말을 한다는 것은 알려준다는 것이 아니라 보여준다는 뜻이다. 상황이 있지만 그 상황에 대한 기승전결의 논리적 절차, 이해를 위한 섬세한 배려 등은 전혀 없다. 그저 작가가 보여준 것들을 통해서 독자가 추측하고 알아차리고,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공감하게 된다. 이 과정 동안 독자는 무수한 질문을 하면서 그가 만들어놓은 인물들에게 몰입하게 된다.

"뭐지? 뭘 말하려는 거지? 왜 이런 기이한 상황이 제시되는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진짜로 이렇게 끝나버린다고? 희망이란 건 없다고? 이게 결론이야?"

레이몬드 카버의 글쓰기 방식은 참으로 특이하였다.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인터뷰에서 카버는 존경하는 작가 중 일착으로 '헤밍웨이'를 꼽았다. 그러고보니 헤밍웨이의 문체가 있는 것도 같다.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 주위를 보여줌으로써 추측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쓰기 방식, AI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답을 준다. 카버의 소설을 칭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설명이다.

"단순한 문장과 묘사, 플롯의 최소화-극적인 사건이나 복잡한 플롯 전개는 거의 없으며, 일상의 단편적이거나 사소한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고 해석하도록 유도, 인물의 행동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그 이면에 담긴 고독, 소외, 불안과 같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좀 알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수없는 질문들이 생겼던 것은 독자인 내게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칸막이의 객실>은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 열차의 칸막이 객실에서 일어난 일의 에피소드다. 아버지 마이어스는 팔 년 동안 한번도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 아들이 편지를 보낸다. 8년만에 보낸 아들의 편지는 '사랑해요'라는 말로 끝맺는다. 이걸 마이어스는 불가사의하게 느낀다. 얼마간 숙고한 뒤 그 또한 '사랑하는 아빠가'라는 끝맺음으로 아들에게 답장을 하고 스트라스부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사랑해요'와 '사랑하는 아빠가'의 워딩이 어찌나 어색스러운지, 설명이 없지만, 그 느낌이 전달된다. 8년 전, 아들과 아빠는 서로를 죽일 뻔했다. 그 때 엄마는 부엌 살림을 온통 깨부수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다만 마이어스가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은 추측할 수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부는 이혼을 했고, 아들과도 헤어졌다. 그 기억이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마이어스가 '사랑해요'라는 맺음말이 있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아들을 만나러 휴가를 내 밀라노를 거쳐 프랑스로 가는 길, 열차의 객실이 이 단편의 공간적 배경이다. 마이어스는 미국인일테고 그는 유럽에 와 있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단절, 불통, 불편의 공간이다. 작가가 구태여 이 공간 설정을 한 것은 아마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서 사용한 도구 같다. 마이어스는 열차의 객실에서 여행 안내서를 읽는다.

"그 책들이 설명하는 곳에 가기 전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 겉았다. 자신이 보지 못하거나 하지 못하고 지나친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처음이자,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마지막 방문이 될 게 틀림없는 이탈리아를 떠나는 그 시점에서 그 나라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발견하게 돼 그로서는 후회가 됐다"(<대성당, 칸막이 객실> 75쪽, 문학동네)

마치 먼저 인생 안내서라는 것을 좀 읽었더라면, 이 지경까지 파국은 겪지 않았을텐데,라는 마이어스의 후회가 담긴 듯한 문장이다. 이탈리아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단 한 번 뿐인 기회였는데 말이다. 같은 객실 안에 있는 승객은 잠을 잘도 자지만 자신을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긴장과 불안 탓이겠지.

외투를 두고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아들에게 줄 상당한 값의 시계가 사라졌다. 심증으로 같은 객실의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지만, 언어의 다름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들이 모두 아버지 마이어스와 아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장치처럼 읽어졌다. 언어가 달라서 불통의 상태. 다만 언어의 다름만이 불통의 이유가 되겠는가. 얼마전 <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드라마를 잠깐 시청했다. 세상에 언어가 몇 개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70억 세계 인구수만큼의 언어가 있을 것이라는 답변.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인류의 불통은 기정사실이다. 마이어스와 아들은 극심하게 불통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고독과 외로움이 소설 곳곳에 묻어난다. 단체관광을 신청하지 않고 혼자서 여행을 온 것, 아내와 늘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이혼전이겠지)는 베니스에 왔으면서도 즐겁기는커녕 실망스럽기만 한 것, 이렇게 작가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 마이어스가 느끼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나타내주고 있는 듯하다.

아이를 위한 선물로 고급시계를 준비했건만, 시계를 잃어버린다. 어색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그런 만남이었지만 시계는 아들을 만날 구실이 되어주기도 했는데,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나마 시계가 만남의 어색함을 완화시켜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마이어스는 아이와 만나기로 한 스트라스부르역에서 하차하지 않는다.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곧장 그 열차를 타고 파리로 가고자 했으나 마이어스가 잠깐 2등칸으로 가 있는 동안 중간에 마이어스가 탔던 1등칸 객차가 다른 열차와 교체가 된다. 결국 마이어스는 파리로 향하는 열차를 놓치고 2등칸에서 미아가 되어버리고 만다. 자신의 여행가방도 1등칸에 있었으니 지갑과 가방마저 잃어버렸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이 상황은 정확하게 마이어스의 인생 상황과 일치한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방향이라면, 조만간 그는 알게 되리라"(바뀐 2등칸의 목적지를 알 수 없으니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 또한 절망적인 상황이다. 문제가 발생했으나 해결할 수가 없다)(86쪽)

아이와 화해를 하든, 관계를 회복하든, 일단 먼저 만났어야 다음 단계가 있다. 그러나 마이어스는 시작이 될 만남부터 포기해버리고 만다. 만날 구실이 되어주었던 '시계'를 잃어버렸을 때, 이미 아이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었다. 결국 마이어스의 인생은 또 한번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객차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이 그 상징일 것이다.

"...결국 자신은 아이가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에게 들었다..................살아오면서 수많은 바보짓을 했지만, 이 여행은 그중에서도 가장 멍청한 일일지도 몰랐다..........너무나 분명하게 자신에게 달려들던 그 순간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쓰라림이 물결처럼 마이어스를 지나갔다.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 삼켜버렸고..........번갈아가며 병도 주고 약도 주었다........."(82쪽)

아이를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마이어스의 마음이다. 아직 그는 아이와 화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작가가 마이어스의 마음만 언급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의 마음은 독자의 상상의 영역이다. 과연 마이어스만 얻은 상처일까, 아이가 잘못했기 때문에 마이어스의 마음이 철벽처럼 닫힌 것일까. 아닐 것이다. 마이어스의 책임이 훨씬 크다.

<칸막이 객실>에서 느껴보았듯이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해피엔딩이란 것이 없다.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대부분의 독자는 아들을 만나기 싫어하는 마이어스의 심정을 일정 부분 이해하면서, 그가 아들을 만나 화해하기를 바라지만, 작가는 화해나 평화의 국면을 애써서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작가, 레이몬드 카버가 바라보는 세상일 것이다.
이미 언급했던 인터뷰의 내용처럼.

"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행동이 뭔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점에 도달해 있지요........삶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삶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태를 바로잡고 싶어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어요"

그의 글에는 판타지란 게 없다. 구차하고 어쩌지 못하는 삶의 현실에 직면하는 것, 그의 소설의 효능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예술의 효능같은 건 믿지 않았다. 다만 조금의 이해를 도와줄 뿐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만약 이런 인물을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만났더라면, 나는 그를 비난하는데 일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그를 만나고보니 깊은 연민의 물결이 일렁인다. 어쩌지 못하는 자기의 한계, 더이상 발을 대딛지 못하는 그 비열함(마이어스가 느꼈던),에 대한 깊은 연민과 슬픔.

인생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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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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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올리브는 70대 초반의 할머니가 되었다. 남편 헨리가 뇌출혈로 쓰러져 요양원에서 유명을 달리하고, 혼자가 된다. 그리고 자신처럼 아내를 잃은 잭과 만나게 되고, 이 둘의 관계가 발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은 끝이 났다.

<다시, 올리브>는 올리브와 잭의 관계가 중심을 이루면서 이전 소설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후속 이야기가 나오거나 또 다른 인물들의 삶을 그려넣은 소설이다. 무엇보다 올리브와 잭,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이웃들의 노년을 상세하고 섬세하게 진술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노년의 삶이 매우 애잔하면서도, 진솔하다. 올리브와 잭은 노년을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그러나 분명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하여 약 9년을 함께 살다 잭마저 어느 날 밤, 올리브 곁에서 잠을 자다가 세상을 떠난다. 올리브는 80대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잭은 올리브와 결혼하기 전의 아내, 벳시를 생각한다.

"그는 욱하는 마음에 벳시와 결혼했는데,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도 그랬지만 아내 역시 대학 시절 열렬히 사랑했던 톰 그러거라는 남자 때문에 욱해서 결혼한 것이었다........지금은 누군가가, 바텐더가 곁에 있었다.....지금껏 저지른 모든 실수에 대해 벅찬 후회를 느끼는 일흔네 살의 남자, 그게 자신이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15-16쪽)

욱해서 결혼한 사이지만, 잭은 결혼 자체를 후회한다기보다 그 결혼생활 동안 벳시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곁에 없음을 인식하고 그녀를 그리워한다.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토록 그립다는 것. 이것이 노년의 마음이다.

후회, 잭은 아내 벳시가 살아있을 때 바람을 피웠다. 하버드대의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바람을 피웠던 일레인이라는 여인이 어느 날 잭이 살고 있는 마을에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을 사다리 삼아 위로 올라가려던 여자였다. 잭은 그녀 때문에 하버드대학의 교수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사회적 지위,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그녀가 했던 못된 행동들, 그 때는 그녀의 본심을 알지 못했고, 불륜이지만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년이 되어 잘나가는 그녀를 다시 보니, 비로소 그녀를 통해 자신이 보인다.

"잭은 너무 무서워서 의자에 앉아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무서운 것은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누군지, 혹은 뭘 하는지 모든 채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이 그의 내면에 전율을 일으켰고, 그는 그것을 자신이 느낀 대로 정확히 표현할 단어조차 잘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대해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고 느꼈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 큰 맹점이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정말로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267쪽)

잭의 정부, 일레인을 통해서 자신의 지난 날이 얼마나 허접했는지, 성공한 자의 오만과 졸렬함이 어떠했는지 비로소 인식하게 되면서, 잭은 지난 날의 과오와 직면한다. 올리브가 있음으로 해서 그나마 노년을 살아갈 수 있는 잭. 과거를 후회하지 않을 인생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노년을 맞이한다는 것은 비로소 자신의 과거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일 수 있겠다. 가면을 벗었을 때 나타나는 자신의 허접한 욕망과 허세와 오만, 마치 그것을 위대한 장식처럼 입고 다녔던 과거. 그걸 자신만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비참함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일까. 잭은 올리브와 살갖을 부딪힘으로 그나마 안도감을 느낀다.

"오, 그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올리브)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갖다댄 순간 몸속으로 안도감이 퍼졌다"(20쪽)

잭이 느끼는 것들이 올리브에게도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올리브는 잭의 맞은편에 앉아 자신이 눈먼 사람처럼 인생을 살아왔다고 느꼈다............................그녀도 앤(올리브의 아들 크리스토퍼의 두번째 아내, 올리브의 며느리)과 같은 행동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헨리(올리비의 죽은 전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누구 앞에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러고 싶어질 때마다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아들은 엄마같은 여자와 결혼했다........................엄마 없는 아이를 키운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한 번도 깨닫지 못한 채. 이제 그 아이는 집을 떠나 멀리멀리 가버렸다"(150쪽)

아들 크리스토퍼와 멀어지기만 할 뿐, 좀체 서먹함을 해결하지 못하는 올리브, 저 깨달음이 번개처럼 자신에게 오기 전까지는 아들 크리스를 원망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크리스, 더하여 며느리 앤이 아들과 자신의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도리어 올리브 자신이 크리스에게 엄마가 되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했지만 크리스에게 필요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 자신을 느즈막이 노년에야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의 허무함과 공허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역시나 그녀는 이 모든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독자가 올리브에게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들에게만 미안함을 느낀 것이 아니다. 올리브는 자신을 돌보러온 신디에게 고백한다. 헨리에게 대한 자신의 마음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별로 잘해주지 못했다는 거야. 그게 지금 마음 아픈 거고. 정말로 마음이 아파. 요즘 이따금-아주 드물긴 하지만- 내가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헨리가 내게서 그런 모습을 전혀 못 봤다고 생각하면 정말 괴로워"(205쪽)

그리고 소설의 거의 마지막에 와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올리브는 깨달았다.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459쪽)

어찌, 올리브만 그럴까. 완전하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삶은 존재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미지의 세계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큰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인생.. 어찌 후회가 없겠으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없을까. 잘 살았다 싶어도 오점이고, 실수투성이다. 인생이란 죽음에 가닿아야만 진실을 직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유행가 "사랑이 필요한 거야~~"라는 가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우리 모두가 잘나고 빈틈없는 완벽자들이라면 뭐 그리 사랑이 필요할까. 그래서 우리에겐 사랑이 필요한 거다. 각자에게 '사랑'이 어떻게 해석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알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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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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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세편의 단편 묶음

<올리브 키터리지>는 미국 잉글랜드 메인주의 바닷가 마을, 크로스비에서 살아가는 올리브 키터리지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총 13편의 단편소설을 구슬 삼아 올리브라는 실에 꿰어놓은 작품이다.

소설은 <약국>이라는 제목의 단편에서 시작한다. 중년의 올리브와 그녀의 남편 헨리 키터리지의 이야기이다. 그다지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부부의 이야기가 여상스럽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헨리와 친절을 경시(?)하는 올리브는 얼핏 보면 피차 상극이다. 매사 부딪힌다. 게다가 올리브와 헨리는 마음 속에 각각의 다른 사랑 하나씩을 비밀스럽게 품고 살아간다. 헨리는 약국의 일을 도와주었던 데니즈, 올리브는 나무에 차를 박아 교통사고로 죽은 짐 오케이시를 품고 살아갔다.

<밀물>은 케빈 코울슨과 올리브의 사연이다. 케빈은 올리브의 제자였다. 케빈의 어머니는 자살을 했다. 올리브의 아버지 또한 유서 쪽지 한 장 없이 불시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에, 둘은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다가 깊은 우울감이 사람을 죽게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러다 물어 빠져 죽으려하는 패티라는 여인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피아노 연주자>는 앤젤라의 이야기. 앤젤라는 마을의 한 음식점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살아가는 여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몸을 파는 여자였고 심지어는 앤젤라와 애인과 삼각관계를 이루기까지 한다. 깊은 슬픔과 우울로 살아가는 앤젤라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결혼하지 못한 채, 마을의 행정의원 맬컴 무디와 불륜 관계다.

<작은 기쁨>은 헨리와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토퍼의 결혼식 에피소드다. 도시 여자 수잔과 만난 지 6주만에 결혼하는 아들을 올리브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바라본다. 아무래도 올리브는 며느리가 될 수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연하게 수잔을 통해 아들 크리스토퍼가 엄마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게 된다.

"그이는 힘든 시간을 겪였어"

이 말을 들은 올리브는 기분이 몹시 상해, 몰래 며느리의 스웨터를 망가뜨리고 신발 한 짝을 훔쳐서 버려버린다. 아주 소심한 화풀이를 실행에 옮긴다.

<굶주림>은 하먼과 보니의 부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먼은 철물점을 운영하는, 가정이 제일인 남자이고, 보니는 다소 건조한 사람이다. 이 둘의 화두는 오직 도넛, 이 둘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개체가 도넛이다. 중년을 훌쩍 넘긴 부부에게 문제가 생긴다. 빈둥지 증후군. 보니는 더이상 남편과 부부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하먼은 준비되지 않았다. 자식들로 출가하고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부부는 위기다. 결국 하먼은 같은 마을 사람 데이지에게 그 사랑의 마음을 옮기고 불륜관계가 된다. 아내가 이 불륜을 알아차리기를 바라면서.

<다른 길>은 화장실 인질사건이다. 병원에 간 올리브와 헨리는 공교롭게도 병원 화장실에서 총을 든 한 소년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었다. 위험에서 서로를 보호하려다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각각 상대로부터 듣게 된다. 올리브는 헨리의 어머니(시어머니)를 경건에 매몰된 위선자라고 생각했고, 헨리는 아들 크리스토퍼(크리스)가 그들을 떠난 것은 올리브의 지나친 통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속마음을 예기치 않게 알게 된 그들은 마치 '다른 길'을 걸어가는 부부처럼, 마음의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 서로 다른 사람을 품었을 때보다 더 위기의 시기를 맞게 된 헨리와 올리브.

<겨울 음악회> 제인은 음악회에 참석해서 남편, 밥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된다. 남편의 (과거의) 그녀가 죽을 병을 얻었다는 것, 그녀의 부탁을 외면하지 못해 그녀를 만나고 왔다는 것,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제인은 맘이 상하지만, 남편을 믿고 싶다.
"서로를 빼면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기에. 그마저도 없다면 그들은 어쩐단 말인가?"(251)
이 문장이 노년을 향해 걸어가는 부부의 정직한 마음이다.

<튤립>에서는 라킨 부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로저 라킨과 루이즈 라킨은 부부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이들 부부는 비극적 사실이 있다. 아들의 범죄. 살인인가보다.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는 수잔과 결혼하여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버렸다. 올리브는 외로움의 병이 든다. 그래서 감옥 같은 루이즈의 집에 갔다. 자기 보다 더 괴로울 루이즈 집에 가면 루이즈의 불행이 자신을 위로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언감생심 위로 따윈 느낄 수 없었다. 올리브의 남편 헨리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고 그예 일어나지 못하고 실명까지 하게 된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하지만 그 여자(루이즈)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루이즈 라킨을 찾아간 것은 잘못이었다.......이 이상하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그녀는 자신이 대체 누구라고 생각했던 걸까?"(293)

이 문장 안에서 올리브의 불안과 외로움이 출렁거린다. 다만 그녀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튤립을 언제 심어야 하는 지, 그 시기다. 모호함이 가득하여 불안하기만 한 세상에 던져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듈립을 언제 심을 지 결정하는 일. 그녀가 정원을 가꾸는 일에 열심인 이유다.

<여행 바구니> 에드와 말린은 부부다. 에드는 투병을 하다 결국 죽게 된다. 마을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던 이들 부부는 고등학교때부터 연인이었고, 종내는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 에드의 죽음, 장례식을 치루면서 아내 말린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에드에게 내연녀가 있었다는 사실. 마을의 케리와 내연의 관계였다는 사실을 장례식에 참석한 케리 본인에게서 듣는다. 추호도 남편을 의심하지 않았던 말린에게 이 사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미 죽은 남편에게 어떠한 복수도 할 수 없는 상황. 병이 회복되면 여행을 가자고 계획하며 '여행 바구니'를 싸두었건만, 그 추억마저 분노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말린은 침통하다. 자신만 몰랐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며 케리에 대한 살의를 올리브에게 고백한다. 올리브는 말린의 그 살의를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다. 자신이 그랬지 않은가.

<병속의 배> 애니타와 짐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딸, 줄리와 위니. 줄리가 브루스와 결혼을 하는 날이다. 그러나 브루스는 줄리를 떠나고 만다. 아마도 줄리의 엄마 애니타 때문일 것이다. 애니타는 진정제를 먹지 않으면 감정의 격동을 이기지 못한다. 어느 날 바다에서 죽음으로 돌아온 아버지, 그녀는 아버지와 지냈던 집을 떠나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을 그곳에 가두고 산다. 그 집은 살기에 형편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브루스는 지하실을 가득 채운 배를 만든다. 과연 그 배를 타고 이들 가족이 떠날 수 있는 날이 올까.

<불안>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가 재혼한다. 재혼한 아내, 앤에게는 이미 전 남편과 사이에 아이 둘이 있다. 이것부터 올리브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크리스와의 사이에서도 아이가 태어났다. 크리스가 엄마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자신이 있는 도시, 뉴욕으로 올리브를 초청한다.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 자못 설레는 마음으로 아들네 집에 가지만, 결국 3일의 평화를 뛰어넘지 못하고 아들과 심하게 다툰다. 아들을 그리도 사랑했건만, 아들은 힘들었다. 널뛰는 엄마의 감정과 그녀의 통제가.

"(크리스토퍼가) 이젠 엄마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을 거에요"
엄마에 대한 두려움? 누가 올리브를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두려운 것은 바로 그녀였는데!(414)"

올리브는 심하게 다친 마음으로 아들집을 떠난다.

<범죄자> 레베카는 목사 집안의 후손이다. 외할아버지도 목사, 아버지도 목사.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초반부처 이상하다. 대화의 경계를 모른다. 상황과 맥락에 맞게 주고 받아야 할 대화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불필요한 정보들을 수다스럽게 말한다. 이상하다. 아버지 브라운 목사와 결혼한 엄마 샬롯은 레베카를 낳자 배우가 되겠다고 집을 떠난다. 레베카는 엄마에게 버림 받는다. 아빠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맞지 않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대화가 없이 지냈다. 정서적 교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종교적 윤리가 강화된 분위기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묘하게도 아버지 브라운 목사와의 관계가 석연치 않다. 그저 아버지와 딸의 관계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바라서 레베카는 아버지의 밥상에 늘 버터가 듬뿍 넣은 요리를 한다. 아버지는 결국 심장병으로 죽는다.

<강> 올리브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긴다. 잭 케니슨과의 만남. 남편 헨리는 아직 요양 병원에 입원 중이다. 뇌손상으로 실명까지 한 헨리, 남편이 다시 일어설 가망은 없다. 올리브는 헨리에게 매일 병문안을 갔지만 헨리는 요양병원에서 죽고 만다. 잭의 딸은 레즈비언, 그는 딸을 받아들일 수 없다. 외롭게 살아가는 그가 산책을 하다 쓰러지고 그 현장을 올리브가 발견한다. 올리브가 도움을 구하러 자리를 떠나려 하자 잭이 붙잡는다.

"그러지 말아요. 날 혼자 두지 말아요"(454)
"죽어도 상관하지 않는다구요. 그냥 날 여기 버려두지만 말아요"(455)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외로움이었다.

올리브는 새로운 사랑을 향한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이 남자의 곁에 누우며, 그의 손을, 팔을 어깨에 느끼며 올리브는 생각했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사랑이 눈 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483)

2. 예사롭지 않은 찌질한 이야기들,,

열 세편의 장편을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키로 꿰어서 한 편의 소설을 만들었다. 언급한대로 이 소설에서는 하나같이 제대로 된 인물들이 없다. 불륜, 비행, 폭력, 다툼과 학대, 이상행동 등. 작가는 실제로 뉴욕에서 20년 이상을 살았지만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인 메인주가 자기 작품의 근원이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읽자하면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메인주의 크로스비라는 마을이 어떤 곳이기에 이리도 하나같이 찌질하고 성한 사람이 없는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상과 다소 판이하다. 나는 섭식장애로 음식 거부를 하는 청소년, 그러다 결국에는 심장 쇼크로 죽음을 맞이한 청소년, 총을 들고 강도질을 하는 청소년, 딸의 장래는 고사하고 딸의 애인을 빼앗으려는 몸을 파는 엄마, 살인죄를 저지른 아들을 둔 엄마,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이나 아내, 정확하지는 않지만 목사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음직한 사연 등, 이런 기막힌 일들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 전체는 이런 이야기로 즐비하다.

그러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이런 일들을 마치 일상의 문체처럼 기술한다. 그녀의 기술에는 인물들을 향한 어떠한 윤리적 판단도 내포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이 그럴 법한 개연성을 곳곳에 배치하고, 독자가 최대한 소설의 인물들에게 골몰하게 한다. 그들이 당한 일, 겪었던 일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찾아온 공허, 외로움, 좌절, 낭패,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추측하다 보면 어느새 독자마저도 그들에 대한 윤리적 판단보다도 연민으로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를 겪게 된다. 특히 <범죄자>에서 인물을 향한 작가의 배려가 절정에 달했다고 느꼈다. 레베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가 그녀를 버리고 가출했다는 것, 엄마가 가출하자 마자, 목사 아버지의 마누라 같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등이 레베카의 이상 행동의 배경으로 묘사되면서 레베카를 매우 세밀하게 따라간다. 작가가 레베카와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경험하지 않는 세계를 그 인물의 입장에서 그려간다는 것은 애정이 없이 가능하지 않다. 작가가 그려준 시선 때문에 나 또한 외연이 보여주는 편견을 거두고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윤리적 판단에서 물러서게 된다. 매우 평면적인 시선에서 떨어져 입체적인 시선, 작가에게서 이런 시선을 배우는 되는 것이다.

3. 올리브

<올리브 키터리지>를 한 번 읽었을 때는, 올리브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매우 평면적인 읽기 때문이었다. 며느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꼬지 하는 거며, 나의 불행의 위안을 삼고자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는 행동, 매사 거칠고 배려가 없는 말의 본새 등이 맘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맘에 들지 않았다. 세상은 휘황찬란한 불꽃놀이가 아니기에 친절이 필요하다. 화가 르느와르가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 밝은 것에 집착하며 그것들을 그려냈던 것처럼 말이다. 어두움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삶을 축제로 보느냐, 싸움으로 보느냐, 이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축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고통스럽지만 축제.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그런 시선으로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올리브의 눈에는 온통 싸워야 할 것들이다. 올리브에게 세상은 너무나 모호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휴화산 같았다. 이것은 불현듯 총으로 자살을 한 아버지를 둔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한 것일 게다. 그녀는 매사에 불안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두려움. 그리고 진실이란 것에 대한 의심.

"울음은 올리브의 감정과 거리가 멀었다.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그녀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그리고 신부(수잔)가 크리스토퍼를 바라보며 정말 그를 안다는 듯이 방긋 웃을 때도 두려움을 느꼈다"(122)

아들의 결혼식에서 며느리 수잔의 거침없는 태도에서 올리브는 일종의 두려움을 느낀다. '네가 내 아들을 정말로 알고 있느냐? 무엇으로 안다는 것이냐? 이렇게 알지 못하고서도는 너는 어떤 이유로 이 결혼이 행복할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냐', 두려움은 바로 이 속내를 대변하는 감정일 것이다. 현재의 진심을 믿지 않는 올리브. 앎이 전제되지 않는 진심에는 의심의 구름이 가득한 올리브. 그래서 그녀는 친절하지 않다. 세상이 자신을 향하여 친절하지 않은데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게 친절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친절한 사람이 싫다. 남편 헨리와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불안은 올리브에게 숙명과도 같다. 불안은 통제를 발달시킨다. 긍정과 친절함은 불안이라는 갑옷에 가둬진다. 이것이 아들 크리스와도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갑옷 속에 감춘 올리브의 진심을 간간히 꺼내준다. <밀물>에서 케빈과 자살에 관한 부모 이야기를 하면서, 케빈과 함께 물에 빠지려는 패티를 구하면서 올리브의 내면의 마음이 흘러 나온다. <여행 바구니>에서 절망과 수치심에 허덕이는 말린의 절규를 깊은 동조를 한다.

올리브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역할 때문이다. 만약 내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올리브를 만났더라면 나는 올리브와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만난 올리브는 가슴으로부터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갖게 했다. 남편보다 짐 오케이시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짐에게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가 가닿지 못한 올리브의 마음, 그걸 읽는다. 아들이 이해하지 못한 올리브의 마음에 이르러 본다. 시기와 질투에 매몰된 데 스며있는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읽는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노년의 슬픔과 고독을 올리브와 함께 경험한다. 늙고 쳐진 피부에도 따뜻한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을 올리브를 통해서 인식한다.

4. 그래도 살아감에 관하여,,

소설 전체에서 구원의 이야기는 없다. 모두 고통스런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들에게 알맞은 정답이나 해결은 없다. 희망이랄 것, 쓸 데라는 것이 묘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은 불필요한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필요와 불필요를 나눌 것인가.

살아감이 중요하다. 생의 파도가 밀려올 때 그 파도를 타기도, 고꾸라지기도, 엎어지기도, 빠지기도 하면서, 생을 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말이다.

"그녀(올리브)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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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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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세편의 단편 묶음

<올리브 키터리지>는 미국 잉글랜드 메인주의 바닷가 마을, 크로스비에서 살아가는 올리브 키터리지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총 13편의 단편소설을 구슬 삼아 올리브라는 실에 꿰어놓은 작품이다.

소설은 <약국>이라는 제목의 단편에서 시작한다. 중년의 올리브와 그녀의 남편 헨리 키터리지의 이야기이다. 그다지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부부의 이야기가 여상스럽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헨리와 친절을 경시(?)하는 올리브는 얼핏 보면 피차 상극이다. 매사 부딪힌다. 게다가 올리브와 헨리는 마음 속에 각각의 다른 사랑 하나씩을 비밀스럽게 품고 살아간다. 헨리는 약국의 일을 도와주었던 데니즈, 올리브는 나무에 차를 박아 교통사고로 죽은 짐 오케이시를 품고 살아갔다.

<밀물>은 케빈 코울슨과 올리브의 사연이다. 케빈은 올리브의 제자였다. 케빈의 어머니는 자살을 했다. 올리브의 아버지 또한 유서 쪽지 한 장 없이 불시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에, 둘은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다가 깊은 우울감이 사람을 죽게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러다 물어 빠져 죽으려하는 패티라는 여인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피아노 연주자>는 앤젤라의 이야기. 앤젤라는 마을의 한 음식점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살아가는 여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몸을 파는 여자였고 심지어는 앤젤라와 애인과 삼각관계를 이루기까지 한다. 깊은 슬픔과 우울로 살아가는 앤젤라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결혼하지 못한 채, 마을의 행정의원 맬컴 무디와 불륜 관계다.

<작은 기쁨>은 헨리와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토퍼의 결혼식 에피소드다. 도시 여자 수잔과 만난 지 6주만에 결혼하는 아들을 올리브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바라본다. 아무래도 올리브는 며느리가 될 수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연하게 수잔을 통해 아들 크리스토퍼가 엄마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게 된다.

"그이는 힘든 시간을 겪였어"

이 말을 들은 올리브는 기분이 몹시 상해, 몰래 며느리의 스웨터를 망가뜨리고 신발 한 짝을 훔쳐서 버려버린다. 아주 소심한 화풀이를 실행에 옮긴다.

<굶주림>은 하먼과 보니의 부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먼은 철물점을 운영하는, 가정이 제일인 남자이고, 보니는 다소 건조한 사람이다. 이 둘의 화두는 오직 도넛, 이 둘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개체가 도넛이다. 중년을 훌쩍 넘긴 부부에게 문제가 생긴다. 빈둥지 증후군. 보니는 더이상 남편과 부부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하먼은 준비되지 않았다. 자식들로 출가하고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부부는 위기다. 결국 하먼은 같은 마을 사람 데이지에게 그 사랑의 마음을 옮기고 불륜관계가 된다. 아내가 이 불륜을 알아차리기를 바라면서.

<다른 길>은 화장실 인질사건이다. 병원에 간 올리브와 헨리는 공교롭게도 병원 화장실에서 총을 든 한 소년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었다. 위험에서 서로를 보호하려다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각각 상대로부터 듣게 된다. 올리브는 헨리의 어머니(시어머니)를 경건에 매몰된 위선자라고 생각했고, 헨리는 아들 크리스토퍼(크리스)가 그들을 떠난 것은 올리브의 지나친 통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속마음을 예기치 않게 알게 된 그들은 마치 '다른 길'을 걸어가는 부부처럼, 마음의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 서로 다른 사람을 품었을 때보다 더 위기의 시기를 맞게 된 헨리와 올리브.

<겨울 음악회> 제인은 음악회에 참석해서 남편, 밥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된다. 남편의 (과거의) 그녀가 죽을 병을 얻었다는 것, 그녀의 부탁을 외면하지 못해 그녀를 만나고 왔다는 것,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제인은 맘이 상하지만, 남편을 믿고 싶다.
"서로를 빼면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기에. 그마저도 없다면 그들은 어쩐단 말인가?"(251)
이 문장이 노년을 향해 걸어가는 부부의 정직한 마음이다.

<튤립>에서는 라킨 부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로저 라킨과 루이즈 라킨은 부부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이들 부부는 비극적 사실이 있다. 아들의 범죄. 살인인가보다.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는 수잔과 결혼하여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버렸다. 올리브는 외로움의 병이 든다. 그래서 감옥 같은 루이즈의 집에 갔다. 자기 보다 더 괴로울 루이즈 집에 가면 루이즈의 불행이 자신을 위로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언감생심 위로 따윈 느낄 수 없었다. 올리브의 남편 헨리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고 그예 일어나지 못하고 실명까지 하게 된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하지만 그 여자(루이즈)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루이즈 라킨을 찾아간 것은 잘못이었다.......이 이상하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그녀는 자신이 대체 누구라고 생각했던 걸까?"(293)

이 문장 안에서 올리브의 불안과 외로움이 출렁거린다. 다만 그녀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튤립을 언제 심어야 하는 지, 그 시기다. 모호함이 가득하여 불안하기만 한 세상에 던져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듈립을 언제 심을 지 결정하는 일. 그녀가 정원을 가꾸는 일에 열심인 이유다.

<여행 바구니> 에드와 말린은 부부다. 에드는 투병을 하다 결국 죽게 된다. 마을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던 이들 부부는 고등학교때부터 연인이었고, 종내는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 에드의 죽음, 장례식을 치루면서 아내 말린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에드에게 내연녀가 있었다는 사실. 마을의 케리와 내연의 관계였다는 사실을 장례식에 참석한 케리 본인에게서 듣는다. 추호도 남편을 의심하지 않았던 말린에게 이 사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미 죽은 남편에게 어떠한 복수도 할 수 없는 상황. 병이 회복되면 여행을 가자고 계획하며 '여행 바구니'를 싸두었건만, 그 추억마저 분노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말린은 침통하다. 자신만 몰랐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며 케리에 대한 살의를 올리브에게 고백한다. 올리브는 말린의 그 살의를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다. 자신이 그랬지 않은가.

<병속의 배> 애니타와 짐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딸, 줄리와 위니. 줄리가 브루스와 결혼을 하는 날이다. 그러나 브루스는 줄리를 떠나고 만다. 아마도 줄리의 엄마 애니타 때문일 것이다. 애니타는 진정제를 먹지 않으면 감정의 격동을 이기지 못한다. 어느 날 바다에서 죽음으로 돌아온 아버지, 그녀는 아버지와 지냈던 집을 떠나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을 그곳에 가두고 산다. 그 집은 살기에 형편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브루스는 지하실을 가득 채운 배를 만든다. 과연 그 배를 타고 이들 가족이 떠날 수 있는 날이 올까.

<불안>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가 재혼한다. 재혼한 아내, 앤에게는 이미 전 남편과 사이에 아이 둘이 있다. 이것부터 올리브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크리스와의 사이에서도 아이가 태어났다. 크리스가 엄마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자신이 있는 도시, 뉴욕으로 올리브를 초청한다.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 자못 설레는 마음으로 아들네 집에 가지만, 결국 3일의 평화를 뛰어넘지 못하고 아들과 심하게 다툰다. 아들을 그리도 사랑했건만, 아들은 힘들었다. 널뛰는 엄마의 감정과 그녀의 통제가.

"(크리스토퍼가) 이젠 엄마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을 거에요"
엄마에 대한 두려움? 누가 올리브를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두려운 것은 바로 그녀였는데!(414)"

올리브는 심하게 다친 마음으로 아들집을 떠난다.

<범죄자> 레베카는 목사 집안의 후손이다. 외할아버지도 목사, 아버지도 목사.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초반부처 이상하다. 대화의 경계를 모른다. 상황과 맥락에 맞게 주고 받아야 할 대화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불필요한 정보들을 수다스럽게 말한다. 이상하다. 아버지 브라운 목사와 결혼한 엄마 샬롯은 레베카를 낳자 배우가 되겠다고 집을 떠난다. 레베카는 엄마에게 버림 받는다. 아빠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맞지 않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대화가 없이 지냈다. 정서적 교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종교적 윤리가 강화된 분위기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묘하게도 아버지 브라운 목사와의 관계가 석연치 않다. 그저 아버지와 딸의 관계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바라서 레베카는 아버지의 밥상에 늘 버터가 듬뿍 넣은 요리를 한다. 아버지는 결국 심장병으로 죽는다.

<강> 올리브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긴다. 잭 케니슨과의 만남. 남편 헨리는 아직 요양 병원에 입원 중이다. 뇌손상으로 실명까지 한 헨리, 남편이 다시 일어설 가망은 없다. 올리브는 헨리에게 매일 병문안을 갔지만 헨리는 요양병원에서 죽고 만다. 잭의 딸은 레즈비언, 그는 딸을 받아들일 수 없다. 외롭게 살아가는 그가 산책을 하다 쓰러지고 그 현장을 올리브가 발견한다. 올리브가 도움을 구하러 자리를 떠나려 하자 잭이 붙잡는다.

"그러지 말아요. 날 혼자 두지 말아요"(454)
"죽어도 상관하지 않는다구요. 그냥 날 여기 버려두지만 말아요"(455)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외로움이었다.

올리브는 새로운 사랑을 향한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이 남자의 곁에 누우며, 그의 손을, 팔을 어깨에 느끼며 올리브는 생각했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사랑이 눈 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483)

2. 예사롭지 않은 찌질한 이야기들,,

열 세편의 장편을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키로 꿰어서 한 편의 소설을 만들었다. 언급한대로 이 소설에서는 하나같이 제대로 된 인물들이 없다. 불륜, 비행, 폭력, 다툼과 학대, 이상행동 등. 작가는 실제로 뉴욕에서 20년 이상을 살았지만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인 메인주가 자기 작품의 근원이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읽자하면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메인주의 크로스비라는 마을이 어떤 곳이기에 이리도 하나같이 찌질하고 성한 사람이 없는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상과 다소 판이하다. 나는 섭식장애로 음식 거부를 하는 청소년, 그러다 결국에는 심장 쇼크로 죽음을 맞이한 청소년, 총을 들고 강도질을 하는 청소년, 딸의 장래는 고사하고 딸의 애인을 빼앗으려는 몸을 파는 엄마, 살인죄를 저지른 아들을 둔 엄마,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이나 아내, 정확하지는 않지만 목사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음직한 사연 등, 이런 기막힌 일들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 전체는 이런 이야기로 즐비하다.

그러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이런 일들을 마치 일상의 문체처럼 기술한다. 그녀의 기술에는 인물들을 향한 어떠한 윤리적 판단도 내포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이 그럴 법한 개연성을 곳곳에 배치하고, 독자가 최대한 소설의 인물들에게 골몰하게 한다. 그들이 당한 일, 겪었던 일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찾아온 공허, 외로움, 좌절, 낭패,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추측하다 보면 어느새 독자마저도 그들에 대한 윤리적 판단보다도 연민으로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를 겪게 된다. 특히 <범죄자>에서 인물을 향한 작가의 배려가 절정에 달했다고 느꼈다. 레베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가 그녀를 버리고 가출했다는 것, 엄마가 가출하자 마자, 목사 아버지의 마누라 같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등이 레베카의 이상 행동의 배경으로 묘사되면서 레베카를 매우 세밀하게 따라간다. 작가가 레베카와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경험하지 않는 세계를 그 인물의 입장에서 그려간다는 것은 애정이 없이 가능하지 않다. 작가가 그려준 시선 때문에 나 또한 외연이 보여주는 편견을 거두고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윤리적 판단에서 물러서게 된다. 매우 평면적인 시선에서 떨어져 입체적인 시선, 작가에게서 이런 시선을 배우는 되는 것이다.

3. 올리브

<올리브 키터리지>를 한 번 읽었을 때는, 올리브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매우 평면적인 읽기 때문이었다. 며느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꼬지 하는 거며, 나의 불행의 위안을 삼고자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는 행동, 매사 거칠고 배려가 없는 말의 본새 등이 맘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맘에 들지 않았다. 세상은 휘황찬란한 불꽃놀이가 아니기에 친절이 필요하다. 화가 르느와르가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 밝은 것에 집착하며 그것들을 그려냈던 것처럼 말이다. 어두움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삶을 축제로 보느냐, 싸움으로 보느냐, 이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축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고통스럽지만 축제.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그런 시선으로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올리브의 눈에는 온통 싸워야 할 것들이다. 올리브에게 세상은 너무나 모호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휴화산 같았다. 이것은 불현듯 총으로 자살을 한 아버지를 둔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한 것일 게다. 그녀는 매사에 불안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두려움. 그리고 진실이란 것에 대한 의심.

"울음은 올리브의 감정과 거리가 멀었다.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그녀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그리고 신부(수잔)가 크리스토퍼를 바라보며 정말 그를 안다는 듯이 방긋 웃을 때도 두려움을 느꼈다"(122)

아들의 결혼식에서 며느리 수잔의 거침없는 태도에서 올리브는 일종의 두려움을 느낀다. '네가 내 아들을 정말로 알고 있느냐? 무엇으로 안다는 것이냐? 이렇게 알지 못하고서도는 너는 어떤 이유로 이 결혼이 행복할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냐', 두려움은 바로 이 속내를 대변하는 감정일 것이다. 현재의 진심을 믿지 않는 올리브. 앎이 전제되지 않는 진심에는 의심의 구름이 가득한 올리브. 그래서 그녀는 친절하지 않다. 세상이 자신을 향하여 친절하지 않은데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게 친절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친절한 사람이 싫다. 남편 헨리와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불안은 올리브에게 숙명과도 같다. 불안은 통제를 발달시킨다. 긍정과 친절함은 불안이라는 갑옷에 가둬진다. 이것이 아들 크리스와도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갑옷 속에 감춘 올리브의 진심을 간간히 꺼내준다. <밀물>에서 케빈과 자살에 관한 부모 이야기를 하면서, 케빈과 함께 물에 빠지려는 패티를 구하면서 올리브의 내면의 마음이 흘러 나온다. <여행 바구니>에서 절망과 수치심에 허덕이는 말린의 절규를 깊은 동조를 한다.

올리브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역할 때문이다. 만약 내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올리브를 만났더라면 나는 올리브와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만난 올리브는 가슴으로부터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갖게 했다. 남편보다 짐 오케이시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짐에게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가 가닿지 못한 올리브의 마음, 그걸 읽는다. 아들이 이해하지 못한 올리브의 마음에 이르러 본다. 시기와 질투에 매몰된 데 스며있는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읽는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노년의 슬픔과 고독을 올리브와 함께 경험한다. 늙고 쳐진 피부에도 따뜻한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을 올리브를 통해서 인식한다.

4. 그래도 살아감에 관하여,,

소설 전체에서 구원의 이야기는 없다. 모두 고통스런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들에게 알맞은 정답이나 해결은 없다. 희망이랄 것, 쓸 데라는 것이 묘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은 불필요한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필요와 불필요를 나눌 것인가.

살아감이 중요하다. 생의 파도가 밀려올 때 그 파도를 타기도, 고꾸라지기도, 엎어지기도, 빠지기도 하면서, 생을 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말이다.

"그녀(올리브)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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