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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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강력 추천합니다.

샘솟는 질문을 만드는, 그 질문 속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소설,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을 읽고,,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에 대한 명성은 얼핏 들었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소설사랑북클럽"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의 작품은 영원히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단편집 <대성당>에 실린 12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도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느낌은 적확했다. 레이몬드 카버는 실로 무슨 말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걸, 두번째 다시 읽으면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란 무엇인가>에 수록된 그의 인뷰를 찾아보았다.

장편이 아닌 단편 소설을 쓴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아무도 저에게 작가가 되라고 요구한 적은 없어요. 그러나 살아남고, 공과금을 내고, 식구들을 먹이고, 동시에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그래서 2-3년씩 걸리는 장편소설을 쓸 수 없었다는 것)..................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몇 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남은 거라고는 낡은 차 한 대와 월셋집,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새로운 빚쟁이들뿐이었습니다. 참 우울한 상황이었죠. 제가 정신적으로 흔적 없이 말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술이 문제가 되었죠. 저는 대충 포기했고, 권투 경기에서 하듯이 수건을 내던지고 나서 하루 종일 심각하게 술을 마셔댔어요"(작가란 무엇인가, 323쪽)

인터뷰 질문, 당신의 등장인물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려고 애를 쓰나요?
"등장인물들이 애를 쓴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쓰는 것하고 성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요. 어떤 삶에서는 사람들이 성공을 합니다......그러나 다른 삶에서는 사람들이 하려고 애쓰는 일, 가장 하고자 원하는 일, 삶을 지탱하는 크고 작은 일에 성공하지 못하지요. 저의 직간접적인 경험은 대부분 후자에 가깝답니다. 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행동이 뭔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점에 도달해 있지요........삶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삶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태를 바로잡고 싶어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어요"(작가란 무엇인가, 331쪽)

인터뷰 질문, 당신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의 작품이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바뀌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곧 제 삶이 결국에는 전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예술이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어렵게 깨달았습니다..........아이작 디네센은 매일매일 희망도 절망도 없이 조금씩 쓴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마음에 듭니다..............특정한 삶을 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분야의 삶을 전보다 약간 더 이해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작가란 무엇인가, 347쪽)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그의 인터뷰가 실로 '그답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 그의 만들어낸 소설속의 인물들이 참으로 그답다,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소설에는 하나같이 실의와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답답하다. 깜깜하다. 처음 읽을 때는 '이건 뭐지?'라는 느낌만이 확연하다. 작가가 개입해서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에피소드가 일어났고, 인물들이 처한 공간과 상황만이 독자에게 말을 한다. 말을 한다는 것은 알려준다는 것이 아니라 보여준다는 뜻이다. 상황이 있지만 그 상황에 대한 기승전결의 논리적 절차, 이해를 위한 섬세한 배려 등은 전혀 없다. 그저 작가가 보여준 것들을 통해서 독자가 추측하고 알아차리고,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공감하게 된다. 이 과정 동안 독자는 무수한 질문을 하면서 그가 만들어놓은 인물들에게 몰입하게 된다.

"뭐지? 뭘 말하려는 거지? 왜 이런 기이한 상황이 제시되는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진짜로 이렇게 끝나버린다고? 희망이란 건 없다고? 이게 결론이야?"

레이몬드 카버의 글쓰기 방식은 참으로 특이하였다.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인터뷰에서 카버는 존경하는 작가 중 일착으로 '헤밍웨이'를 꼽았다. 그러고보니 헤밍웨이의 문체가 있는 것도 같다.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 주위를 보여줌으로써 추측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쓰기 방식, AI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답을 준다. 카버의 소설을 칭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설명이다.

"단순한 문장과 묘사, 플롯의 최소화-극적인 사건이나 복잡한 플롯 전개는 거의 없으며, 일상의 단편적이거나 사소한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고 해석하도록 유도, 인물의 행동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그 이면에 담긴 고독, 소외, 불안과 같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좀 알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수없는 질문들이 생겼던 것은 독자인 내게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칸막이의 객실>은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 열차의 칸막이 객실에서 일어난 일의 에피소드다. 아버지 마이어스는 팔 년 동안 한번도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 아들이 편지를 보낸다. 8년만에 보낸 아들의 편지는 '사랑해요'라는 말로 끝맺는다. 이걸 마이어스는 불가사의하게 느낀다. 얼마간 숙고한 뒤 그 또한 '사랑하는 아빠가'라는 끝맺음으로 아들에게 답장을 하고 스트라스부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사랑해요'와 '사랑하는 아빠가'의 워딩이 어찌나 어색스러운지, 설명이 없지만, 그 느낌이 전달된다. 8년 전, 아들과 아빠는 서로를 죽일 뻔했다. 그 때 엄마는 부엌 살림을 온통 깨부수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다만 마이어스가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은 추측할 수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부는 이혼을 했고, 아들과도 헤어졌다. 그 기억이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마이어스가 '사랑해요'라는 맺음말이 있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아들을 만나러 휴가를 내 밀라노를 거쳐 프랑스로 가는 길, 열차의 객실이 이 단편의 공간적 배경이다. 마이어스는 미국인일테고 그는 유럽에 와 있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단절, 불통, 불편의 공간이다. 작가가 구태여 이 공간 설정을 한 것은 아마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서 사용한 도구 같다. 마이어스는 열차의 객실에서 여행 안내서를 읽는다.

"그 책들이 설명하는 곳에 가기 전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 겉았다. 자신이 보지 못하거나 하지 못하고 지나친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처음이자,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마지막 방문이 될 게 틀림없는 이탈리아를 떠나는 그 시점에서 그 나라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발견하게 돼 그로서는 후회가 됐다"(<대성당, 칸막이 객실> 75쪽, 문학동네)

마치 먼저 인생 안내서라는 것을 좀 읽었더라면, 이 지경까지 파국은 겪지 않았을텐데,라는 마이어스의 후회가 담긴 듯한 문장이다. 이탈리아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단 한 번 뿐인 기회였는데 말이다. 같은 객실 안에 있는 승객은 잠을 잘도 자지만 자신을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긴장과 불안 탓이겠지.

외투를 두고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아들에게 줄 상당한 값의 시계가 사라졌다. 심증으로 같은 객실의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지만, 언어의 다름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들이 모두 아버지 마이어스와 아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장치처럼 읽어졌다. 언어가 달라서 불통의 상태. 다만 언어의 다름만이 불통의 이유가 되겠는가. 얼마전 <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드라마를 잠깐 시청했다. 세상에 언어가 몇 개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70억 세계 인구수만큼의 언어가 있을 것이라는 답변.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인류의 불통은 기정사실이다. 마이어스와 아들은 극심하게 불통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고독과 외로움이 소설 곳곳에 묻어난다. 단체관광을 신청하지 않고 혼자서 여행을 온 것, 아내와 늘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이혼전이겠지)는 베니스에 왔으면서도 즐겁기는커녕 실망스럽기만 한 것, 이렇게 작가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 마이어스가 느끼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나타내주고 있는 듯하다.

아이를 위한 선물로 고급시계를 준비했건만, 시계를 잃어버린다. 어색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그런 만남이었지만 시계는 아들을 만날 구실이 되어주기도 했는데,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나마 시계가 만남의 어색함을 완화시켜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마이어스는 아이와 만나기로 한 스트라스부르역에서 하차하지 않는다.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곧장 그 열차를 타고 파리로 가고자 했으나 마이어스가 잠깐 2등칸으로 가 있는 동안 중간에 마이어스가 탔던 1등칸 객차가 다른 열차와 교체가 된다. 결국 마이어스는 파리로 향하는 열차를 놓치고 2등칸에서 미아가 되어버리고 만다. 자신의 여행가방도 1등칸에 있었으니 지갑과 가방마저 잃어버렸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이 상황은 정확하게 마이어스의 인생 상황과 일치한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방향이라면, 조만간 그는 알게 되리라"(바뀐 2등칸의 목적지를 알 수 없으니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 또한 절망적인 상황이다. 문제가 발생했으나 해결할 수가 없다)(86쪽)

아이와 화해를 하든, 관계를 회복하든, 일단 먼저 만났어야 다음 단계가 있다. 그러나 마이어스는 시작이 될 만남부터 포기해버리고 만다. 만날 구실이 되어주었던 '시계'를 잃어버렸을 때, 이미 아이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었다. 결국 마이어스의 인생은 또 한번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객차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이 그 상징일 것이다.

"...결국 자신은 아이가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에게 들었다..................살아오면서 수많은 바보짓을 했지만, 이 여행은 그중에서도 가장 멍청한 일일지도 몰랐다..........너무나 분명하게 자신에게 달려들던 그 순간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쓰라림이 물결처럼 마이어스를 지나갔다.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 삼켜버렸고..........번갈아가며 병도 주고 약도 주었다........."(82쪽)

아이를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마이어스의 마음이다. 아직 그는 아이와 화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작가가 마이어스의 마음만 언급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의 마음은 독자의 상상의 영역이다. 과연 마이어스만 얻은 상처일까, 아이가 잘못했기 때문에 마이어스의 마음이 철벽처럼 닫힌 것일까. 아닐 것이다. 마이어스의 책임이 훨씬 크다.

<칸막이 객실>에서 느껴보았듯이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해피엔딩이란 것이 없다.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대부분의 독자는 아들을 만나기 싫어하는 마이어스의 심정을 일정 부분 이해하면서, 그가 아들을 만나 화해하기를 바라지만, 작가는 화해나 평화의 국면을 애써서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작가, 레이몬드 카버가 바라보는 세상일 것이다.
이미 언급했던 인터뷰의 내용처럼.

"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행동이 뭔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점에 도달해 있지요........삶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삶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태를 바로잡고 싶어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어요"

그의 글에는 판타지란 게 없다. 구차하고 어쩌지 못하는 삶의 현실에 직면하는 것, 그의 소설의 효능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예술의 효능같은 건 믿지 않았다. 다만 조금의 이해를 도와줄 뿐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만약 이런 인물을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만났더라면, 나는 그를 비난하는데 일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그를 만나고보니 깊은 연민의 물결이 일렁인다. 어쩌지 못하는 자기의 한계, 더이상 발을 대딛지 못하는 그 비열함(마이어스가 느꼈던),에 대한 깊은 연민과 슬픔.

인생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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