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작다고 사랑이 작진 않아 - 차별 없는 은혜, 오름 직한 동산, 은혜의동산교회 이야기 동네 교회 이야기 시리즈 8
김종원 지음 / 세움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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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지 않게 사랑하는 일에 선수, 김종원
<교회가 작다고 사랑이 작진 않아> 간증집을 읽고...
은혜동산교회의 첫 방문일이 생각난다. 예배를 위한 발걸음은 아니었고, 교회가 운영하는 <어,울림 도서관>에서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을"이란 슬로건을 내건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막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책을 완독했고, 그 책의 여운이 가시지 않을 때쯤, 도스토예프스키 전작을 읽는 모임이라고 하니 눈이 동그래져서 꼭 가보고 싶었다. 작년 12월, 교회가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만난 김종원목사님은 목사님 치고는 외모가 출중하셨다. 그러나 출중한 외모와는 달리, 매우 일상적인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머리털 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대전을, 도스토옙스키 때문에 방문하게 된 셈인데, 그곳에서 김종원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성심당을 제외하면 볼 것 없기로 유명한 대전(대전시민님들 죄송), 내 평생 갈 일이 있을까 싶은 그곳을 갔으니, 아무래도 내가 대전에 첫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나는 김종원 목사님의 <교회가 작다고 사랑이 작진 않아>라는 동네교회시리즈 책을 읽을 운명(섭리)였나 보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목사님의 간증집이 출간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를 개척한 이야기, 그것도 코로나를 거친 이야기, 모두 아픈 사연과 상처를 갖고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관계를 맺어가는지,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지의 이야기가 그저 일상의 에피소드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힘을 뺀 이야기란 말이다. 다만 강조할래서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사람들 만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심한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하는 청소년(춘기, 가명이겠지?)에게 "나랑 1박2일 부산 여행 갈래?', 금요일마다 금요특별철야예배 가는 심정으로 당구장에서 춘기를 만난 이야기, 빚더미에 앉아 미래가 막막한 자매의 이야기를 수없이 듣다가, 제주도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는 일, 막막하니 생각나는 건 담배뿐인 이에게, 그의 담배 연기와 함께 만남을 가진 이야기, 호프집에서 술 잔에 술을 따르며 만난 이야기, 이렇게 만남을 이어가다가 마음의 허물이 벗겨지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 한 분씩 한 분씩 공동체의 식구가 되어가는 이야기, 결국엔 그분들 한 분 한 분이 공동체가 되어 아픔을 나누며 그 아픔이 삶을 갉아먹을만큼 중한 것이 아님을 알아가고, 'The Scar is a Star'가 되어가는 일들이 <교회가 작다고 사랑이 작진 않아>에 꽉 차게 담겨 있다.
그러나 짧게 기술된 이야기들 속에는 도리어 '기~인' 여정이 있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 번 듣고 두 번 들어서,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서 마음과 마음이 만날 수 있는 일이라면, 사람 사랑하는 일, 사람 세우는 일을 뉘라서 어렵다고 할 것인가. 좋은 말도 숱하게 들으며 듣기 싫어진다는데, 아프고 괴롭고 막막하고 캄캄한 이야기를 듣고, 아파하고, 기도하고 변화를 기대하는 일이 어찌 만만한 일이었을까. 게다가 공황장애를 경험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싶다. 그러나 그래서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나는 김종원목사님이 벽이 없이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가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교회와 나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였고, 한 몸이었다. 누구보다 교회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열정과 패기 넘치는 서른 살에 담임 목사가 되었으니 열심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열심이라는 것이 어릴 때부터 경험한 교회의 문화를 답습하는 열심이었다"(54p)
선교지에서의 이같은 깨달음은 저자에게 교회에 관하여 새로운 시야와 도전을 갖게 하는 시금석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정직한 자기 직면과 성찰이 지금의 저자를 있게 한 초석이 되었을 것이고, 공황장애라는 자기 한계와 아픔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에 도왔을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가 지금의 저자를 이루고 있는 매우 중요한 줄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 인생의 얼마간을 통해서 나와 너의 다름을 깨닫고 알아갔다. 특히 결혼생활 동안에 일심동체라고 불리는 관계에서 얼마나 서로 다른지를 체험적으로 알아갔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와 타인을 위한 이해의 발걸음이고 같이 살아가기 위한 행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토마스 머튼은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는 걸 '깊은 영성'으로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어느 지점에서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까. 나는 그 지점이 바로 연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깊어질 때, 나와 너는 다르지 않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연민은 동떨어져 거룩한 곳에서가 아니라 바로 나, 그리고 바로 내 옆의 인생들의 아픔을 그 일상의 현장에서 마주할 때, 터져나오는 것. 저자가 비록 잘생겼지만, 아픔을 아는 분이라서 앞으로 은동예배당은 사람 냄새와 은혜의 냄새로 가득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해본다.
생활밀착형 <은등교 목사 사용설명서>
1. 배고프거나 커피 땡길 때 언제든 전화합니다.
2. 애들 맡기고 부부가 데이트하고 싶을 때 전화합니다.
3. 이단이 접근해 이단 옆 차기 하고 싶을 때 전화합니다.
4. 이사할 때 전화합니다.
5. 부모님이나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전화합니다.
6. 당구장에서 짜장면 먹고 싶을 때 전화합니다.
7. 등산 가서 정상에서 컵라면 먹고 싶을 때 전화합니다.
8. 말씀이 땡기고 예배가 고플 때 전화합니다.
9. 복음을 전하려고 이웃을 만나러 가기 전에 전화합니다.
10.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워서 말동무가 필요할 때 전화합니다.
이 사용설명서을 읽으면서 혹시나 저자가 과로사로 큰 일이 나면 어쩌나, 싶었다. 이건 그야말로 24시간 심부름업체 대표가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사실 공동체는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곳, 이것은 어쩌면 <은동공동체 사용설명서>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른다. 은혜의 동산이여,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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