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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물 위를 걷다 -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세미지 ㅣ 땅끝에서 온 이야기 2
김토성 지음 / 세움북스 / 2024년 6월
평점 :
"희생을 감수하며 시작한 귀하고 좋은 일이라 믿었던 사역이 왜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난관에 닥쳐온 것인지 정말 알 수 없었다(24p)"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생각하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나선 길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 이 때가 정말로 미칠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기에 순적한 일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암암리에 하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던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지 못하는 믿음 없음을 한탄하면서 순종을 선택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원망할망정,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순종의 길에서 곤란을 주시면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병을 얻었다. 백혈병. 선교사로 남아공에 찾아갔지만 선교는 고사하고 병을 얻어 급하게 철수해야 했던 저자,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 가족들의 생계 등이 막막하다. 계속되는 병,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 부작용으로 백혈병 항암치료보다 더 죽을 고비를 넘겼다. 패혈증을 세 차례나 겪었다. 당장 내일 살아있을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수개 월 동안 입으로 음식섭취를 하지 못했다. 걷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한 세월이 한참이었다. 어느 것 하나 고통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난이 큰 만큼 저자를 돕는 하나님의 손길은 세심했다. 모두 사람을 통해서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금방망이 같은 기적이 아니라 그간 관계를 맺어왔던 사람들을 통해서 병원과 치료비와 집을 구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도움을 받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사람이 바로 기적임을 알려주시는 것만 같았다. 저자는 한 때 같은 교회 셀 식구였던 분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혈연으로 치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셀 식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도 위험할 수 있는 신장 기증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설사 본인은 결정했더라도 가족이 이 일을 용납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의 아내는 이를 허락했다. 그야말로 저자는 그 병자에게 기적이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기적이 되었던 것처럼 그 누군가도 그에게 기적이 되는 일들을 저자는 병이라는 고난을 통해서 체험했다.
형부가 수년 전에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가족이지만 내가 존경하는 목회자였다. 그 때 무너졌던 마음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이미 몸의 다른 기관에 전이가 된 상태였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생존율은 10%도 되지 않았다. 인적이 없는 시간에 날마다 예배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 살려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했다. 쉽지 않은 투병생활을 했다. 어느 날 온갖 링거를 매단 형부와 함께 병원을 거닐었다.
“처제, 어제도 혼자 걷고 있는데, 앞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걸어가는 자매가 보이더라고. 예전 같으면 저리 짧은 스커트를 입은 게 볼 성 사납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프고 보니 생기롭고 활기차게 걷는 모양새가 그저 보기 좋게만 생각되더라고”
형부 말인즉, 아프고 보니 모든 상황이 달리 보인다는 뜻이었고,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모두 감사할 것들임을 체험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별다른 기적이 있다. 특별한 기적은 분명 있다. 그러나 저자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말하고자 했다. 바로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했던 모든 일상이 사실은 기적임을. 우리는 너무 자주 기적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잊어버린다. 나는 간혹 하나님이 짓궂다 싶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내몰아서 벼랑 끝에 매달려 있을 때, ‘짠’하고 나타나실까? 이왕에 도와주실 거, 애타기 전에, 지쳐서 나자빠지기 전에 손을 펴주시면 안되나?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시스템을 이해하고 진정한 삶의 목적과 가치를 발견하며 그분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에 기대에 그분이 제안하는 길로 순응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에 대한 최고의 해결책이자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222p)"
세상은 인과관계가 분명하게 해석되는 곳이 아니다. 나는 신앙이 단계별로 업그레이드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상황을 펼치시고 그 안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가 하나님 맘에 드는 것을 선택하면 보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거나, 성장시키신다는 것은 나에게 그리 설득적이지 못하다. 어떤 패턴을 만들어버릴 때 신앙은 도리어 종교적인 의식이 되어버릴 때가 많은 것 같다. 하나님은 패턴 속에 갇히실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은 패턴으로 정형화 되거나 규칙화 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저자가 말한 아름다움, ‘즉 원래의 목적과 가치를 가진 것들이 질서 속에서 어우러진 모습의 아름다움(253p)'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손을 잡고 계신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손의 감촉을 저자는 행복이라 하지 않았는지....’행복은 고난의 깊이만큼 느낀다‘라고 한 것처럼(258p). 혹한의 겨울에 잡아보는 손의 온기가 우리를 얼마나 환기시키는가 말이다. 비로소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따뜻함, 이것이 바로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