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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주는 자정 이후에 죽는다
캉탱 쥐티옹 지음, 박재연 옮김 / 바람북스 / 2023년 9월
평점 :
텔레비전 너머로 영국의 다이애나 공주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어느 늦여름, 평화로워 보이는 한 가족의 하루. 그러나 그 하루 동안 루루, 카미유, 그리고 그들의 엄마는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은 일들을 겪게 되고 그들은 각자의 자정을 맞게 된다.
루루, 립스틱 조각을 주머니에 숨기고 다니는 소년. 옆 집 형 요요의, 아니 요요라는 총알에 가슴을 맞은 루루는 공주가 되고 싶고 요요를 자신의 왕자로 정한다. 루루는 마당의 작은 수영장에서 인어공주가 되었다가, 나무 위에서 첨탑에 갇힌 공주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에 자신을 구하는 것은 언제나 요요다. 그러나 진짜 결말은 따로 있다. 요요는 공주 놀이는 이만하면 됐느냐며 이 놀이도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요요에게 몰래 입맞춘 루루는 요요로부터 모진 말을 듣는다. 요요는 공주 인형들을 수영장에 와르르 쏟는다.
카미유, 온 몸에 입은 벌건 선탠 화상보다 더 큰 뜨거움으로 데이는 소녀. 카미유는 사랑에 빠져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러나 자정이 가까운 밤, 크나큰 추락의 순간을 마주한다. 자신을 배려하지 않고 제 욕구만 채우려는 남자친구의 태도는 화상보다 더한 아픔이었다. 카미유는 머리에 꽂고 있던 장미의 잎을 하나하나 틑어낸다.
그들의 엄마(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사랑 노래를 부르면서도 한 손엔 칼을 쥐고 있는 여성. 가정의 평화를 깨기 싫어 남편의 외도를 애써 눈 감아주고 있다. 남편은 그녀의 사랑 노래마저 듣기 싫다고 소리치며 집을 나가겠다 선언하고 그녀는 그런 남편을 막아선다. 나가는 건 상관 없지만 오늘 저녁만큼은 먹고 가라고. 단 한 번이라도 아빠 노릇은 하고 가라고. 그녀는 남편이 좋아하던 대파 그라탕에 쓰일 대파를 썰던 칼을 쥔 채다.
그렇게 그들은 자정을 맞는다. 공주를 감싸고 있던 마법이 풀린다. 세 명의 공주가 죽는다. 다이애나 공주의 죽음은 이 셋의 결말을 은유하는 절묘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짜 죽은 것은 아니므로, 싫든 좋든 내일의 해는 떠오르므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공주는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이 아닌, 그들만의 엔딩을 향해 간다. 그 엔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껴안음이다. 셋이서 꼭꼭 껴안는 일. 꼭 껴안은 채로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일. 그리고 이 세 명의 공주들 사이에는 이제 왕자가 들어갈 틈 따위는 없다. 공주와 왕자의 꽉 닫힌 해피엔딩이 아니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아니 어쩌면 아니어서 오히려 더 반짝이는, 활짝 열린 엔딩이 눈부시다. 그 열린 문으로, 이들에게 빗방울보다는 눈부신 햇살이 더 많이 들이찼으면 좋겠다.
*바람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