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문고본)
과달루페 네텔 지음, 최이슬기 옮김 / 바람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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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의 대하여>의 원제인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을 따라,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를 “We Need To Talk About Inés!” 라고 (멋대로) 부연하고 싶습니다. 2003년에도, 2011년에도,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충분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나봐요.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 충분하지 않은 정도를 크게 밑도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2024년 현재, 이 책은 ‘우리는 이네스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어요.

‘모성과 돌봄’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든, 심지어 이 주제 자체에 관심이 없다 해도,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소설에 몰입하게 될 거예요. 모성과 돌봄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고,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은 경험이 있을테니까요. 그러니 세상에 ‘모성과 돌봄’에 완벽히 관련 없는 사람은 없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 역시 말할 것도 없겠죠. 그러므로 우리는 ‘모성과 돌봄’에 대해 다각도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하고, 그러한 이야기의 좋은 예가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중심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신성과 같이 여겨지는 모성, 여성에게 의무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겨지는 모성의 현실을 똑똑히 보여주는 것. (홍보 자료에 쓰인 익명의 사전 리뷰 문장,, 제가 쓴 거예요 ㅎㅎ)
-‘모성과 돌봄’에 대한 각자의 관점-혹은 신념-이 조금씩 변해가는 주인공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진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실이 ‘모성과 돌봄’이라는 주제와 교차될 때 비로소 건설적인 논의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이 소설은 그 교차 과정을 아름답게 뜨고 짜 놓았어요. 그래서 톤이 밝은 이야기는 아닌데도 다 읽으면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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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주는 자정 이후에 죽는다
캉탱 쥐티옹 지음, 박재연 옮김 / 바람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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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너머로 영국의 다이애나 공주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어느 늦여름, 평화로워 보이는 한 가족의 하루. 그러나 그 하루 동안 루루, 카미유, 그리고 그들의 엄마는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은 일들을 겪게 되고 그들은 각자의 자정을 맞게 된다.

루루, 립스틱 조각을 주머니에 숨기고 다니는 소년. 옆 집 형 요요의, 아니 요요라는 총알에 가슴을 맞은 루루는 공주가 되고 싶고 요요를 자신의 왕자로 정한다. 루루는 마당의 작은 수영장에서 인어공주가 되었다가, 나무 위에서 첨탑에 갇힌 공주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에 자신을 구하는 것은 언제나 요요다. 그러나 진짜 결말은 따로 있다. 요요는 공주 놀이는 이만하면 됐느냐며 이 놀이도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요요에게 몰래 입맞춘 루루는 요요로부터 모진 말을 듣는다. 요요는 공주 인형들을 수영장에 와르르 쏟는다.

카미유, 온 몸에 입은 벌건 선탠 화상보다 더 큰 뜨거움으로 데이는 소녀. 카미유는 사랑에 빠져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러나 자정이 가까운 밤, 크나큰 추락의 순간을 마주한다. 자신을 배려하지 않고 제 욕구만 채우려는 남자친구의 태도는 화상보다 더한 아픔이었다. 카미유는 머리에 꽂고 있던 장미의 잎을 하나하나 틑어낸다.

그들의 엄마(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사랑 노래를 부르면서도 한 손엔 칼을 쥐고 있는 여성. 가정의 평화를 깨기 싫어 남편의 외도를 애써 눈 감아주고 있다. 남편은 그녀의 사랑 노래마저 듣기 싫다고 소리치며 집을 나가겠다 선언하고 그녀는 그런 남편을 막아선다. 나가는 건 상관 없지만 오늘 저녁만큼은 먹고 가라고. 단 한 번이라도 아빠 노릇은 하고 가라고. 그녀는 남편이 좋아하던 대파 그라탕에 쓰일 대파를 썰던 칼을 쥔 채다.

그렇게 그들은 자정을 맞는다. 공주를 감싸고 있던 마법이 풀린다. 세 명의 공주가 죽는다. 다이애나 공주의 죽음은 이 셋의 결말을 은유하는 절묘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짜 죽은 것은 아니므로, 싫든 좋든 내일의 해는 떠오르므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공주는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이 아닌, 그들만의 엔딩을 향해 간다. 그 엔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껴안음이다. 셋이서 꼭꼭 껴안는 일. 꼭 껴안은 채로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일. 그리고 이 세 명의 공주들 사이에는 이제 왕자가 들어갈 틈 따위는 없다. 공주와 왕자의 꽉 닫힌 해피엔딩이 아니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아니 어쩌면 아니어서 오히려 더 반짝이는, 활짝 열린 엔딩이 눈부시다. 그 열린 문으로, 이들에게 빗방울보다는 눈부신 햇살이 더 많이 들이찼으면 좋겠다.

*바람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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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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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가고 있다.”
이 책은 목적지 없이 그저 앞으로 흐른다.
“내가 여기서 당신에게 쓰는 것은 하나의 회로도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 그저 지금인 것.”
그리고 ‘흐름’은 언제나 현재성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직 “지금-순간”만이 있다. 그리하여 ‘아구아 비바’라는 제목은 탁월하다. 제목을 직역하면 ‘살아 있는 물’이다. 구체적인 형태도, 목적도 없이 그저 순간순간을 콸콸 흐르는 물. 이 책은 살아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는 경험이자 살아 흐르는 물 그 자체다.

책 속 화자는 내내 “지금-순간”을, “있음”을 붙잡고 싶어 한다. 그러나 순간은 순간일 뿐이다. 매 순간은 바로 그다음 순간으로 흘러가버리니까. 그러므로 이 책 속 문장들은 모두 ”기차 창문으로 내다본 선로처럼 달아나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빠르게 달아나는 순간들을 붙잡으려 애쓴 흔적들, 혹은 그러한 순간들로부터 느낀 설명 불가한 감정들을 ’당신‘에게 전하려 애쓴 흔적들이다. 그래서 어떠한 스토리도, 구조도 없는 이 글 가운데 그러나 선명하게 읽히는 것들이 분명 있다.

먼저, 나를 울린 문장이 있다. ”나, 단 한 번도 탐탁지 못했던 인간.“ 살면서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향해 고개 끄덕여주지 않았음을 말하는 이 문장이 너무 아팠다. 아니나 다를까, 화자는 자신이 먼 고통에서부터 왔다고 말한다. 인간의 조건에 신물이 났으며 자신의 조건을 의식하지 못하는 동물들이 부럽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어둠 속을 걸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과정 역시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산고“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될 수 있는 한 넓게 늘어나는 거니까.“ 그리고 그 고통으로부터 ”그것“이 태어나니까.

신기하게도 스토리 없는 이 스토리에도 분명한 클라이맥스가 있다고 느꼈는데 책의 극 후반부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고통 끝에 얻을 수 있었던 ”그것“의 정체가 밝혀지는 곳. “그것”은 그가 “은총의 행복”, 혹은 “지복”이라고 일컫는 상태다. 그 상태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생각하고 있는 줄 모르는 상태다. 생각이 생각이라는 행위에서 자유로운 상태. 비어있으면서도 충만한 상태. 그 상태는 선잠에 들어 ‘생각’과 ‘꿈-상상’의 중간 단계에 머무르는 때와 비슷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화자는 모든 것들의 ’너머‘에 머무를 수 있는 그 초현실적 상태에서 가장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도 순간일 뿐이어서 또 지나가버릴 것이다. 순간은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화자는 말한다. 대신 순간순간에 투항하자고. 순간들에 온몸을 맡긴 채 살아가자고. 그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떻게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오직 걸어야만 걷는 법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살아가다 보면 이룰 수 있다고. 그러면 우리가 ”지금-여기“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있다”는 사실, 나는 여기에 나로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또한 우리가 살아있는 한 “지금-순간”은 흐르는 물처럼 거듭나며 계속되므로, 우리는 매 순간 거듭 태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떠나가는 순간을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은 ‘당신’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것이며 그래서 불친절하다고 거듭 말하지만 적어도 내겐 이 책이 참 친절하게 다가왔다. 엘렌 식수의 말마따나 어쨌든 이 책은 “화자가 ’당신‘을 향해 글을 쓰고 있다”라고 요약할 수 있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즉 독자인 우리를 향해. 그리고 결국은 우리 모두 순간에 기뻐하자고 소리치니까. (책의 후반에 이르자 ‘Viva’의 다른 뜻—‘만세’가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책이 계속해서 ‘지금’을, ‘있음’을 강조해 주는 덕에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 존재가 과거에 잡아먹히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잠식당하려 할 때, 이 책을 집을 것 같다. 과거나 미래에 잡아먹히지 않는 ’현재‘의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북돋워 주는 이 책은 나에겐 더없이 따뜻한 책이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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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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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을 쓴다면 신형철 작가님처럼 글을 쓰고 싶다고 항상 생각해요! 작가님 글만의 섬세함에 늘 감동해왔는데 이번 책은 또 저를 얼마나 감동시킬지 벌써 기대하게 됩니다. 얼른 글로 만나뵙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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