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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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새. 제목과 표지가 정말 예뻐서 골라 온 소설. 내가 처음 읽은 바나나의 소설이다. 이것을 읽고 바나나 소설을 닥치는대로 사 모았다.

일단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잔잔하게 부는 허무한 늦여름이나 초가을 바람 같은 느낌이랄까? 미약한 목소리로 숨쉬듯 내뱉는 말투로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것이 특징. 서양 소설들은 복선 구조도 뚜렷하고, 갈등이나 전개도 활발하다. 그런데 일본 소설은 언뜻 보면 밋밋하지만, 여운이 남는 깔끔한 구조라서 그냥 편한 사람에게 일상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드는 적이 많았다. 좋게 말하면 간결하고 담백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밋밋하고 썩 와 닿는 느낌이 없어서 일본 소설은 밍밍한 맛이 나 읽을 생각이 안 든다고 한다.

처음 부분은 ‘츠구미’ 라는 주인공의 사촌 여자아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정말이지 밉살스럽다는 말로 시작한다. 하지만, 몇 줄을 더 읽어나가다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츠구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가 없는 여자 아이라는 것을. 못돼먹은 짓을 저질러도, 엉뚱한 행동을 하고 짜증을 부려도, 독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도 귀여운 맛이 있다. 게다가 검은 생머리에 큰 눈엔 촘촘한 속눈썹이 나 있고 피부도 희고 몸집도 작고 앙증맞아-일본인들은 역시 작은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면이 있는 걸지도, 예쁜 여자아이를 묘사할 때는 자그마하고 리본이 어울리고, 따위의 말이 있다.- 잘 빚어놓은 인형 같다는 묘사 부분에서는 정말 어쩔 수 없이 미워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나, 즉 마리아가 관찰하는 츠구미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츠구미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대부분이 평화롭고 한가로운 사람들이다. 마리아는 여관을 하는 츠구미 집에 얹혀 살면서도, 상당히 여유가 있고 느긋하다. 자기 말로는 츠구미 덕분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츠구미라는 의 성격이 더욱 더 제멋대로라고 비추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츠구미는 매우 평범하고 인간미가 있는 인물이다. 온화한 사람들 속에서 성격이 더 개성적으로 두드러진다.

츠구미는 몸이 지독하게 약하다. 어릴 때부터 과잉보호를 받아와서, 살살 걸을 정도가 될 땐 이미 영악하고 되바라져 있었다. 언제나 약간 들떠있고 연기력도 있는 듯하고 상당한 오기로 무장해서 살아가는 츠구미는 사실은 어느 순간에 그 역동찬 생명력이 푹 꺼질지 모르는 아련한 존재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츠구미가 심술을 부려도 어딘가 불안하다. 특히 죽음에 가까워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츠구미는 다른 사람들이 더 걱정을 하게 만든다.

사촌 언니인 요코 언니와 츠구미의 남자 친구인 쿄이치. 그리고 마리아의 바닷가 마을에서의 여름방학 이야기. 바닷가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일까? 아니면, 막 어린아이에서 벗어난 그들의 아직은 어른이라기에 뭣한 나이의 설정 때문일까? 한 폭의 수채화처럼, 잔잔한 물결처럼, 그렇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뚜렷한 사건을 이야기한다고 하기보단, 추억을 이야기하는 느낌의 문체. 덮고 나서도 여운이 느껴졌다.

츠구미. 우리 말로는 티티새, 백 개의 입을 가졌다고 밤낮 가리지 않고 우는 새라고 한다. 참새 종류이고, 겨울새라고 알고 있다. 쓰면서 보니 츠구미의 이미지가 겨울과 비슷하기도 한 것 같다. 새에 관한 지식은 이게 전부라서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바다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산지나 평지에 사는 새 이름을 가진 츠구미는 그 존재 자체로도 조용한 바다의 배경에서 상당히 부각되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나기 위함인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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