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Life 6
스에노부 게이코 지음 / 세주문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라이프.
표지에는 상당히 예쁜 여자아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누구나 충격을 받을 것이다. 잔인함과 추함과 인간의 모든 악한 면을 드러내는 만화. 사실 1권만 보고 또 나오면 봐야 할지 안 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었다. 그러나 한 권씩 나올수록 어쨌든 손에 쥐게 된다.

주인공인 아유무는 친한 친구인 시노즈카와 같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정말 필사적으로 공부한다. 원래 공부를 잘 못하던 그녀였으나 친구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공부를 시작한다. 이런 일, 흔한 일이다. 친구를 따라 학교를 결정하는 일.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여중생들이 한번씩 저지르는 일. 친구 따라 가기. 아무튼 아유무는 무리해서 공부에 매달린 만큼 상상한 것 이상으로 높은 점수가 나온다. 그러나 시노즈카가 점수가 별로 좋지 않아 고민한다. 우등생이었던 시노즈카가 아유무보다 낮은 점수가 나온 것. 아유무는 잠시 주저하다가 자기 점수를 시노즈카보다 낮춰서 말한다. 이런 일도 흔하디 흔하다. 여기까진 일본이 아닌 한국이 무대라도 일어날 수 있는 여중생의 일이었으며, 그 심리를 그대로 대변한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 아유무만 고교에 당당히 붙고 시노즈카는 떨어진 것이다. 그것 때문에 우정이 산산조각이 난다.

여기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유무는 친구를 잃은 채 방황하다가 손목을 칼로 긋는 등 자학하는 버릇이 생겨버리고 기껏 공부해서 들어간 고등학교에서는 적응을 못한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높은 학교에 지망하면 가서 힘들다고 한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그 당시엔, 성적을 못 따라간다거나 하는 문제 따위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오직 친구 시노즈카와 고등학교에서도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만을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동기가 오로지 시노즈카였던 그녀는 시노즈카가 절교선언을 해 우정이 깨진 이후 고교생활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 마나미라는 귀엽고 애교 많아 보이는 외모를 가진 여자아이가 접근해서 일단 친구가 된다. 하지만, 마나미는 어딘가 이중성이 보이는 여자아이. 그리고 그룹을 만들어서 이지메를 시키는 일도 일삼는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유무가 자신의 남자친구 카츠미를 빼앗았다고 오해를 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더 어마어마한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범적으로 보였던 카츠미는 사실 사디즘 성향을 가진 엄청난 인간이었으며, 앞에선 아닌 척하면서 뒤에선 아유무를 학대한다. 그리고 그 사진을 카메라 폰으로 찍어서 협박까지 한다. 그 인간의 실체는 아무도 모르고 마나미는 무지막지하게 오해를 해 버린다. 결국 아유무는 학교를 뛰쳐나오기도 하고 또다시 자학을 한다.

 라이프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하토리라는 클래스메이트. 차가운 미녀 타입이지만, 뒷소문이 안 좋다. 그러나 그 소문의 진상은 집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뛰어야 했기 때문. 그래서 학교도 얼마 나오지 못하지만, 성적은 그럭저럭 좋은 편이다. 자그마한 계기로 인해 하토리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아유무. 그런데 마나미는 잔인하게도 하토리의 이지메에 아유무를 끌어들인다. 하토리의 실내화를 아유무의 책상서랍에다가 넣은 것. 아유무는 그것을 보고 어쩔 줄 모른다. 그 때에 하토리가 맨발로 교실에 들어온다. 아주 단호한 걸음걸이로. 그것을 보고 힘이 난 듯, 아유무는 실내화를 그녀에게 가져다 준다. 하토리는 싱긋 웃는다. 아유무가 이런 작은 용기를 낸 이후 지독한 이지메는 아유무를 더욱더 공격한다.

 손목을 그은 아유무에게 손목보호대를 건네주는 하토리. 아유무를 위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조리 함께 노는 것으로 투자하는 하토리. 그녀를 보고 아유무는 힘을 낸다. 네 자리는 없다면서 책상을 밖으로 던져 버리며 협박하는 마나미를 보아도 이젠 굴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서 책상을 다시 주워 오고 이젠 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자신의 가방을 뒤지고 핸드폰 메모리에 아무도 없다며 친구가 없는 것 아니냐고 깔깔대는 마나미 패거리에게 가서, 아유무는 당당하게 외친다. 너희 같은 애들이 친구라면 그 따위 것 필요없다고. 없는 것이 훨 낫다고 말이다. 마나미가 핸드폰을 아유무의 머리를 향해 던지고 밟으려는 순간 아유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먹을 쥔다. 그 때에 우연히 담임선생님이 나타나고 아이들은 아유무가 마나미를 일방적으로 때리려고 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교무실. 여기서의 담임선생님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럭저럭 시간만 때우고 적당히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학생들의 말엔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자격 미달의 교사. 처음엔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된다고, 혼내려고 부른 게 아니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부른 거라고 온화하게 활짝 웃으면서 말할 때, 나는 속으로 잠시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달콤한 착각. 자신을 비웃고 조소와 야유를 보내는 급우들의 얼굴을 떠올리던 아유무는 마나미에게 오해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선생님은 잔잔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런데 마나미가 자신의 책상을 창문 밖으로 던졌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선생님의 표정은 굳고 잠시 한숨을 쉬더니 훗 웃으면서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한다. 여기서 여교사의 표정 변화가 정말 두드러졌다. 방관하는 교사들의 표본. 아유무는 기대한 자신을 비웃으며 박차고 나간다.

 아유무는 하토리에게 친구가 되고 싶지만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지금 상황을 스스로 극복할 것이라고 말하고, 하토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웃으면서 아유무를 껴안는다. 다음날 하토리와 보통의 친구 사이처럼 즐겁게 웃고 떠들다가 하토리가 잠시 빵을 사러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마나미 패거리의 이지메는 또 시작된다. 그 때에 한 남학생의 등장. 눈에 가득 힘을 주고, 이제 그만하지 그래? 라고 외친다. 그리고 마나미의 머리로 먹다 남은 우유팩이 날아든다. 언제까지 그 짓을 할 거냐고 말하는 남학생들. 처음에 나섰던 남학생이 말한다. 도와주려던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그런 걸 보는 것도 방관하는 자신도 싫었기에 편해지고 싶었을 따름이라고. 그러나 아유무에게는 그 순간 최대의 아군이다. 학교에서 하토리 외에도 아군을 만난 것이다.

 이지메를 나서서 하는 가해자, 피해자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방관자. 매일 끝없는 불안과 공포감으로 살아가는 피해자. 이 구조가 정말 명확하게 그려진 만화, Life. 아유무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1권부터 6권까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해간다. 6권이라는 권수지만, 사실 작품 안에서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았다. 이제 스스로 일어나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숨을 그대로 삼키고 책장을 재빨리 넘기게 된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호흡을 길게 유지할 틈이 없다. 정말 숨막히는 극단적인 전개. 그러나 이것이 현실의 추악하고 어두운 뒷면을 그대로 그린 것일지도 모른다.

 제목이 어째서 라이프일까? 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이것이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저런 사람들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고 자신이 극복해야 하는 것이 삶. 지금 어느 순간에는 저것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는 만화다. 실제로 이 세상엔 얼마나 악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지메가 많은 일본이라 그런지 이지메에 관한 만화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난 단연코 이 만화를 추천하고 싶다. 다른 만화처럼 남자에게 기대는 나약한 모습이 아닌, 스스로 강해지려고 점차적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는 아유무의 모습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방관자들-대부분이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은 한번쯤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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