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덕이자 국뽕 만렙이다. 집에 있는 책장의 한 줄 전체가 김훈 작가님, 김진명 작가님, 조정래 작가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 소설, 사극은 말할 것 없이 좋아하고, 작품에 나온 사건 혹은 인물은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 검색하며 타고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이번에 다산북스 서평단으로 접하게 된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은 책의 커버를 보고 신청했다. 호랑이 무늬가 크게 프린트 된 책의 커버가 눈을 사로잡았다. 역덕에게 "호랑이"는 아픈 손가락이자 역사적 분노의 표상이니까. 이미 커버에 반해 신청을 하고 나서야 책의 설명을 보게 되었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가 집필한 소설. 1918년부터 1964년까지 긴 시간을 가르는 소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가 집필한 소설이라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몇 년 전, 미국 드라마 <스타트렉> 작가인 조 메노스키가 <킹 세종 더 그레이트>라는 제목의 세종대왕 소설을 집필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에도 "미국인" 작가가 우리나라 역사를 모티브로 소설을 출판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소설의 내용도 개인 취향으로 나쁘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작가님은 한국계라는 것에 차이가 있지만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그녀가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작품을 집필한 것은 역시나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큰 기대를 안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옥희>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기생 은실에게 의탁한다. 옥희의 어머니는 옥희를 은실의 집에 하인으로 보내려 하였으나, 기생 견습생으로 그녀의 집에서 살게 된다. 추후 은실의 사촌이자 기생인 단이가 경성으로 데려가 그녀를 최고의 기생으로 키워낸다. 춤에 재능이 있어, 배우로 발탁이 되어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재산은 점차 없어진다.
<정호>
한 사냥꾼의 아들로 태어나 돈을 벌기 위해 경성으로 온다. 노숙 소년 무리와 맞닥뜨렸지만, 그 무리의 대장이 된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기생 옥희에게 첫 눈에 반해 그녀를 위해서는 어떤 것이든 하려 한다. 당대 최고의 배우가 된 옥희에 맞는 사람이 되고자 명보의 제자가 되었다. 점차, 명보의 인성과 비전에 동화된다.
<명보>
좋은 집안에 태어나 동경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이지만, 집안의 반대에도 삶을 독립 운동에 헌신한다.
<한철>
안동 김씨 집안이었지만, 아버지 대에 집안과 연이 끊겼다. 어려운 형편에 인력거를 끌고 있지만, 명문 양반가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옥희와 연인이 되어 그녀의 뒷바라지로 대학까지 졸업하고 취직을 한다. 탄탄대로인 앞길이 보이자, 그렇게 사랑했던 옥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600 페이지가 없는 두꺼운 책이기에,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최대한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은 간략한 인물 소개.
교양 교율을 잘 받은 현대인으로서, 그에겐 자신만의 도덕률이 있었고, 별 어려움 없이 이를 준수하는 스스로에게 매우 만족했다. 말하자면, 그는 한국의 독립 자체에는 찬성했지만,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행동주의 운동이라면 그 어떤 형태이든 반대했다. (사회적 변화는 위에서부터 시작해 아래로 내려올 뿐이며,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미합중국을 향해 한국을 해방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밖에 없다고 그는 믿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그는 일본의 압제에 대해 적절한 비판을 토로하며 그 자신의 유려한 웅변과 입 속에 맴도는 일제 담배의 부드러운 맛을 동시에 즐겼다.
P. 119-120 <작은 땅의 야수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혐오하는 인물이다. "김성수"
그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그는 자신의 지식과 말솜씨를 자랑하는 것을 좋아한다. "도덕적"으로 보이기 위해 한국의 독립은 찬성하지만, 자신의 위험은 감수하고 싶다.
나는 일본에서 함께 수학한 동문 이명보와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그의 "찌질함"이 혐오스러웠다. 명보는 한국 독립에 헌신하는 인물이다. 그는 경성에서 여러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독립 운동을 위한 자금을 부탁한다. 부잣집 도련님인 성수 역시 그 친구 중 하나였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성수는 적절한 말로 자신의 무심함을 감추고 자기 자신을 옹호하는 데 온 신경을 기울인다.
'하지만, 도대체 뭘 위해서냐? 다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짓을 한들 아무런 성과도 나오지 않아. 그뿐만 아니라, 암살은 살인 범죄잖아.'
이러한 일련의 생각이 성수의 불안과 초조함을 조금씩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중략)
이렇게 자신의 논리를 정리하자 만족스러움이 느껴졌다.
명보가 떠나고 나서도 그는 자신이 당한 "지적"에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하고자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만족할만큼의 논리가 세워지자 생각을 멈춘다.
이 소설 속에서 그는 끝까지 찌질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단이와의 만남에서도, 그녀의 죽음에서도, 단이의 눈치에 허세를 부리고자 명보를 도와 자신의 출판사에서 "대한민국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할 때에도, 독립 후 이 일로 인해 친일파가 아니었다는 면죄부를 얻을 때에도.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내가 혐오한 그 찌질함은 나 자신에게 적용이 됐다. 과연 나는? 암흑에 가까웠던 이 시기에 내가 있었다면 과연 나는 성수의 찌질함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카페 주인이 테이블 아래로 너한테 건네준 게 이거였어?" 다시 걸음을 떼며 옥희가 속삭여 묻자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밤 어떤 일본군 장교가 만취한 상태로 가게에 두고 간 거래. 나라 안에서 무기를 조달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거든. 총 한 자루가 소중한 상황이야." (중략)
"그 카페 주인은 그냥 멋이나 부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한참 후에야 옥희가 말했다. "부드러운 손에다, 머리도 예쁘게 꾸미고 다녀서 말이야."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한 거지."
이 소설 속 메인 캐릭터로 나오지는 않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꼽자면 바로 이 카페 주인이다. 그는 친일 지주의 아들이자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 젊은 부르주아 시인이었다. '바닷고동 카페'를 운영하며 그만의 매력으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카페로 끌어들인다.
그가 소설에 등장한 초반 그의 모습은 "한량" 정도로 묘사된다. 예술가적인 패션에 상냥하지만 어딘가에 벽이 있고, 누구에게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은 태도. 그를 실제로 만난 것은 아니지만, 옥희와 연희의 카페 방문 속에서 보여진 그의 모습은 나에게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다시 등장한 것은 바로 이 장면. 독립 운동에 헌신하는 명보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정호에게 카페 주인은 일본군 장교가 놓고 간 권총을 건넨다.겉으로 보기에는 매사에 멋을 부리며 한량스러운 모습인 그이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투쟁한다.
사실 이 소설이 "정말 좋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60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이틀만에 소설을 다 읽을 정도로 술술 읽혔다. 작가가 소설을 정말 잘 써 내려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적 매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움은 남았다. "호랑이"가 단순한 맥거핀 정도로 사용된 점, 내용의 흐름이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점, "이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따름이야."라는 카피에 걸맞는 일제 강점기 속 독립 운동가에 깊게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 등.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일제강점기의 문제들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더더욱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특히나, 이 소설의 저자인 김주혜 작가님이 한국계 미국인인 것 역시 중요하다. 영어로 이 소설을 집필하였고, 해외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깊숙히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이 소설에는 잔인했던 일본 군인의 모습, 팔이 잘려 나가면서도 끝까지 태극기를 손에 쥐고자 했던 3.1운동 속 우리 조상들의 결기, 이미 패배할 전투임을 알았음에도 자국민 그리고 한국인(조선인)을 사지로 내 몰은 일본의 악랄함, 먼 만주 지역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독립 후 너무나 어이 없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혹은 죽임을 당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까지, 우리에게는 너무나 멀리 있는 두꺼운 국사책 속의 한 순간 정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독립이 된 것은 1945년으로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았고, 6.25 전쟁이 휴전된 1953년 역시 그렇다. 요즘, 우리는 100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이 역사들을 한 인간이라 생각한다면, 아직 건강하게 삶을 즐기고 계신 우리 할아버지보다도 나이가 어리다. 100세 시대의 한 인간의 삶이 끝나지도 않은 기간인데, 이제는 덮어 두라는 이렇게 100년도 되지 않은 역사를 "이제는 덮어 두고 미래로 나아 가야 한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추천한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작임에도 술술 읽히는 소설적 매력으로도,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우리 역사의 일부로도. 앞으로 어떤 미디어가 될 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역사를 그리고 우리에게 아직까지 남겨져 있는 문제들을 낱낱이 펼쳐 보일 수 있는 작품들이 계속해서 생산되길 바래본다.
*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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