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이 태종에게 올린 글 두 편


주상전主上殿에 글을 올렸는데, 다음과 같다.
“왕세자 신 이제는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제 살 곳을 잃으면 반드시 하늘에 호소하고 자식이 제 살 곳을 잃으면 반드시 어버이
께 호소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지극한 본성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시비와 득실을 헤아린 뒤에야 그렇게 하겠습니까? 

신 이제는 비길 데 없이 어리석고 완고하지만 부왕 전하께서는 신이 적장자라는 이유로 그 우매함을 잊으시고 세자에 책봉하셔서 이제 벌써 14년이 됐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극한 정성으로 가르치고 깨우치시어 크게는 충효의 도리부터 작게는 일상의 자잘한 행동부터 제시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사부師傅와 빈객賓客을 두어 날마다 경서를 읽게 하시고 대간에게 더욱 엄격 히 살피게 하시니 자애로운 생각과 교육하는 방법이 더할 바가 없었습니다. 경서와 사리에 통달해 세자의 임무를 다하고 종사의 중책을 잇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신 이제는 전하의 자애로움을 믿을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전하가 종사를 생각해 구상한 큰 계획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악하

고 어리석은 무리를 가까이하고 욕망만을 따라 법도와 예절을 무너뜨린 것이 이미 여러 번입니다. 작년 가을에는 전하께서 특히 견책하시어 신은 그때 조금 깨닫고 반성해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아이 때의 습성이 그래도 남아있어 소인의 꾐에 빠져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유혹에 빠져 마침내 하늘과 아버지와 임금을 속이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반성하지 않았으니 신의 죄를 생각하면 용납될 곳이 없습니다. ‘스스로 지은 죄는 벗어날 길이 없다’는 옛 사람의 말은 신을 두고 한 말입니다. 몸을 때리며 반성하고 버려져도 만족해야지 감히 한 마디 말이라도 해서 스스로 새로워질 도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더라도 신 이제는 포대기에 싸인 아기 때부터 지금 24세가 되기까지 잠시라도 어버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는데 하루 아침에 지척咫尺의 거리에서 호·월胡越4처럼 멀리 떨어져 수라를 챙겨드리거나 문안할 방법도 없고 건강이 어떠신지 살필 길도 없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신은 먹는 것도 잊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며, 말없이 있을 수 없게 됐습니다. 예전에 가까이 모시며 직접 말씀을 듣고 동생들과 안뜰에서 즐겁게 놀던 것을 돌이켜보면 꿈속 일처럼 아득합니다. 복잡한 마음이 어찌 사라지겠습니까? 


신 이제의 복잡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전하는 자애로운 마음을 아직 끊지 못해 신의 불초함을 잊으시고 생각을 놓

지 못하실까 걱정됩니다. 여기까지 말하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눈물이 흐릅니다. 신 이제는 타고난 바탕이 우둔하고 마음 씀이 광망狂妄해 지금 비록 죄를 뉘우쳤지만 앞서의 잘못을 다 시 밟지 않을 것을 저 자신이 보장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 경계하는 8가지 조항으로 종묘와 하늘에 계신 영령께 맹세해 다시는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또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새로워지겠다는 뜻을 서술해 전하께 올립니다. 


‘화복禍福은 모두 자신이 초래하는 것’이라고 옛사람이 말했으 니 선행도 악행도 참으로 내게 달려있는 것이지 남에게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예부터 소인이 세자를 꾀어 미혹시킨 일은 역사책을 찾아보면 흔히 나오니 소인은 제거하기 어려우나 가까이하기는 쉽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앞서 기이한 재주와 음란한 꼬임으로 신을 불의한 데 빠뜨린 자들을 법대로 처단해 앞으로 간사한 소인들이 아첨하는 길을 막고, 신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바른 선비를 가까이하고 날마다 좋은 말을 들어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하신다면 참으로 다행일 것입니다. 가엽게 여겨주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이 글은 모두 빈객 변계량이 지었다. 





세자가 내관 박지생朴枝生을 보내 직접 지은 글을 올렸다.


“전하의 시녀는 모두 궁 안으로 들어오는데, 어찌 모두 깊이 생 각해 받아들이는 것이겠습니까? 가이加伊(어리)를 내보내려고 했지만 그녀가 살아가기 어려울 것을 불쌍히 여기고 또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밀통하면 추문이 날까 봐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신의 여러 첩을 내보내시니 곳곳에서 곡소리가 나고 나라 안에 원망이 가득합니다. 어찌 자신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지 않으십니까? 옳은 일을 권장하면 떠나가고, 떠나가면 지극히 상서롭지 못합니다. 신은 이처럼 악기의 줄을 일부러 끊어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 풍류와 여색을 마음껏 풀어버리려는 계획을 중단하지 않았으며 오직 뜻에 따르고 감정에 맡겼기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한漢 고조高祖는 산동山東에서 살 때 재물을 탐내고 여색을 좋 아했지만 마침내 천하를 평정했고, 진왕晉王 광廣(중국 수隋 양제煬帝 〔569~618, 재위 604~618〕)은 현명하다고 일컬어졌지만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은 위태롭게 되고 나라는 망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신이 끝내 크게 효도할지 어떻게 아십니까? 이 첩 한 사람을 금지하면 잃는 것은 많고 얻는 것은 적습니다. 잃는 것이 많다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아득한 후세까지 수많은 자손의 첩을 금지할 수 없으므로 잃는 것이 많다고 하는 것이며, 첩 하나를 내보내는 것은 얻는 것이 적다고 하는 것입니다. 


국왕은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는데 신효창申孝昌은 태조를 불의不 義에 빠뜨렸으니 죄가 무거운데도 용서했습니다. 김한로는 신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했을 뿐인데 오랜 친교를 잊고 갑자기 내치시니 공신이 이 일을 계기로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숙빈(김한로의 딸인 세자빈)이 아이를 가졌는데 죽조차 들지 않으니 하루아침에 변고라도 생기면 큰일입니다. 지금부터 새사람이 돼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4회로 출간 전 연재를 마칩니다. 
발간되는 책을 통해서 사료와 함께 읽는 평전의 재미를 더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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