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전력 OL 살인사건 걸작 논픽션 14
사노 신이치 지음, 류순미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퇴마록 같은 책. 올해 읽은 또다른 논픽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쌍벽을 이루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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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을 가진 일본 전력 업계의 최대 임무중 하나가 최대출력 21만5000킬로와트라는 당시로선 엄청난 에너지를 창출하는 미보로댐 건설이었다. 그녀의 부친은 미보로댐 건설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보로와 같은 대규모 댐 건설이 일본의 전력업계를 경제의 선두주자로 이끎과 동시에 가전제품 제조사를 비롯한 전기업계에 전에 없던 호황을 안겨준 원동력이 된 것은 틀림없다.
이러한 아버지를 둔 딸이 미보로댐과 땅속줄기로 연결된 마루야마초의 러브호텔 골목에 밤마다 나타났고 그러던 어느 날 밤, 흉악한 힘에 의해 목 졸려 살해당했다.
그녀가 마루야마초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귀갓길에 있는 동네라서가 아니라 그녀를 끌어당기는 강한 자력과 같은 것이 이곳에 있었던게 아닐까. 그리고 그녀는 호수 바닥에 가라앉은 오쿠히다 마을처럼 이 거리의 밑바닥으로 잠기고 말았다.

도쿄전력 여직원이란느 가면을 벗어 던지고 불나방이 된 야스코는 사카구치 안고가 <타락론>에서 ‘인간은 제대로 떨어지고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구원할 수 있다’고 서술한 대목을 상기시켜주었고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야스코의 기이한 행동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 아니다. 타락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도 한결같아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괴물 같은 순수함에 턱없이 가슴이 떨려온 것이다.

네팔에서 일본으로 돈을 벌러 온 노동자와 도쿄전력에서 종합직으로 입사한 게이오대 경제학부 출신의 엘리트 여직원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서로 절대 만날 가능성이 없는 상대였다. 그 두 사람이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마루야마초에 떨어졌고 마루야마초의 강력한 자력이 두 사람을 충돌시켰다. 두 사람의 충돌은 스스로를 축생도에 침윤시킨 야스코의 고고하기까지 한 ‘대범한 타락’과 고빈다의 천박하고 비루한 ‘소심한 타락’의 대조를 수정에 비친 그림처럼 또렷하게 드러냈다. 이 재판을 빠짐없이 방청해온 내게는 그렇게 그려졌다.

인간은 살아내고, 인간은 타락한다. 그 외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편한 지름길은 없다. (사카구치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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