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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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유입니다.



오늘 가져온 책은 아르테에서 11월에 발간한 《미국이 만든 가난》입니다.



특별히 해제가 앞에 붙어 있어서, 사실 난도가 있는 책인가 두려워했지만 서술은 꽤나 평이하고 예시를 많이 들어주는 친절한 책이었습니다.



빈곤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읽으면 재밌으실 것 같은데, 



 《미국이 만든 가난》은 부유한 국가라는 미국에서조차 왜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난으로부터 이득을 얻고 있는 우리'를 제시하는 책입니다. 



두루뭉술한 사회 구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정부, 기업 등이 아닌 바로 '우리'입니다. 



이 지점에서 왜 갑자기 빈곤 문제가 '나' 때문이래?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면, 이제 이 책을 펼치면 되겠습니다. 




저자 데즈먼드는 가난에 대해서 다루지만 '가난한 자'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빈곤 문제를 정확히 바라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데즈먼드는 가난이란, "통증"(49), "인공항문 수술 뒤에 차는 배변 주머니와 휠체어", "사람을 불구로 만들어 놓은 뒤에도 교활한 고통을 안기는 심야의 테러와 총알(50)", "트라우마(51)", "불안정"(51),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질 거라는 끊임없는 두려움"(53)이자 "자유의 상실"(55)이며 "정부가 당신의 편이 아니라 당신의 적이라는 느낌"(56)이고 "당혹감과 수치심을"(58) 불러일으키며 "쪼그라든 삶과 인성"(59)들이 "겹겹이 누적된 형태"(62)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가난은 직선이 아니다. 사회적 병폐들이 단단하게 엉킨 매듭"(62)입니다.



데즈먼드의 비판적 어조가 여실히 드러나는 비유적 표현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러한 문체가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읽다 보면 헛웃음이 터질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뇌에 여유 공간이 있고 목소리가 큰 일부 대중은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당사자들이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117-118) 이 있습니다. 



잡설은 차치하고, 



가난이란 한 개인의 경제적 결핍 상태를 지칭한다기보다는, 개인의 삶 모든 영역에 침투하는 것으로 이 가난은 인종에 따라 다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가난은 절대 공평하지 않으며, "인종적 약점 때문에 심해지거나 인종적 특권 때문에 약화될 수도 있다"(60)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서 저자의 질문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면 인종과 계급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어느 것이 사회적 불평등의 근원이고 어느 것이 곁가지인가? 어느 기원이 당신에게, 당신의 심장이나 두뇌에 더 중요한가?"(60)



이 질문은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부연 설명이었는데도, 이 질문에 답을 정하느라 꽤나 고심했습니다. 인종과 계급. 어느 것이 근원이고 어느 것이 곁가지일까요? 미국만큼의 다인종성이 없는 한국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려야 할까요? 인종 대신 이 빈칸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이 될지, 한국의 빈곤 문제의 교차성의 지점은 어디일지, 잠시 고민이 됩니다. 




이 책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빈곤 문제', 혹은 '저소득 계층'같은 특정 계층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복지 제도, 노동조합 등등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고정관념을 무너뜨립니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라던가, "사회적 원인의 부산물"(89)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재난을 의도하지 않았고, 사실상 그 누구도 여기서 이익을 얻지 않는다"(90)라는 진리와도 같은 생각에 저자는 답합니다.


사람들은 가난에서 온갖 방식으로 이익을 얻는다.

《미국이 만든 가난》, 90쪽


이러한 주장을 원로 학자가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에 빠져들고 있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는 것도 뼈아픈 블랙 코미디이지만, 우리는 왜 이러한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는지는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가난의 이유를 나와 너와 우리라고 이야기하는 주장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노조가 경제 성장을 막는다', '실업급여는 사람들을 복지제도에 의존하게 만든다'와 같은 한국 정치권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여러 슬로건들을 여러 연구 자료들로 반박합니다. 



노조를 와해한다고 해서 기업의 성장하지 않았으며, 실업 수당 때문에 노동자들이 집에 지낸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근 "실업급여를 받은 여자들이 샤넬 선글라스를 사며 즐긴다"와 같은 서울지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 공무원의 모든 혐오의 온상과도 같은 발언과도 맥이 이어집니다. 실제로 실업급여의 부정수급자 3명 중 2명은 남성이며 여성보다 2배가 많고, 연령대는 50대(33.4%)가 가장 높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저자는 "많은 미국인이 여전히 흑인들은 노동윤리가 약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155)고 하며 인종에 따른 부정적 편견과 "정부의 빈민 구호책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낳는다"(155)는 의견을 이야기합니다. 정부의 빈민 구호책이 부정적이라는 근거는 사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개인적인 진술과 상식에만 의존"(155)해 있었으며, "증거가 필요 없는 주제"(156)라는 답변으로 갈음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릅니다. 저소득층 가정일수록 정부 보조금을 생필품 구입에 지출한 비중이 높았고, 오히려 알코올음료와 마약류에 고소득층이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연구에서도 실업수당 때문에 노동자들이 집에서 지내는 거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중략)


어째서 우리는 다른 이유들을 찾을 수 있는데도 높은 실업률을 정부 원조 탓으로 돌리는 서사를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였던걸까? 어째서 우리는 사람들이 아프다가 죽고 싶지 않아서 일터로 안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일자리가 처음부터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성추행과 학대에 신물이 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학교가(150) 문을 닫은 상황에서 자녀들을 믿고 맡길 데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많은 미국인이 일각에서 기대하는 것만큼 빠르게 일터로 복귀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을 때 어째서 우리의 대답은 그 사람들이 주당 300달러를 더 받으니까였을까?

《미국이 만든 가난》, 151쪽



이러한 복지 의존성은 실제 데이터와 다른 상상 속에서 생성된 영향입니다. 저자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복지 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제도 등이 복잡하여 수급하지 않는 복지 회피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데즈먼드의 주장은 아무리 부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해도, 부자가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도움이 가장 적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다. 이것은 우리 사회복지의 진정한 속성이며, 우리의 은행 잔고와 빈곤 수준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리 상태와 시민정신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만든 가난》, 166쪽



실제의 사실과 전혀 다른 거짓을 상식으로 믿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당 300달러를 더 받으니까"라는 대답이었을까요?



가끔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은 사실 믿고만 싶어 합니다.



저자가 빈민 종식을 위해 주장하는 바는 '담장 허물기'입니다.



중산층 백인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상징적인 담장(비싼 임대료, 높은 등록금의 사립학교 등)을 이용하여 저소득층 가정과 보이지 않는 담장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경제적 불평등이 덜한 환경에서 자라난 저소득층 아이들이 더 높은 사회 진출률을 보인다는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한곳에 몰려 있는 빈곤층을 분산시켜 다른 계층과 통합을"(265) 이뤄야 합니다. 



분리주의에 반대하는 이러한 빈부 통합은 확실히 빈곤한 가정을 '덜 가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저자는 "결핍 눈속임(scarcity divers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부자들에게 세금 감세를 주지 않고 세금을 모두 걷는 대신, 우리에게는 빈민을 모두 구제할 예산이 없으며 지금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빈민들은 착취하는 빈민가의 임대업에서 우리나라의 쪽방촌이 떠오릅니다. 결국은 빈민들은 평당 더 높은 월세를 지출하고, 신용등급이 낮고 인종적 문제, 불안정한 직장 등을 이유로 대출을 승인해주지 않아 주택 매매도 남들보다 더 어렵습니다. 최저 임금을 주는 일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간이 계급화되고 공공이 슬럼화되며, 가난은 그들에게 기회의 상품을 얻을 모든 수단을 박탈해나갑니다. 



 빈민과의 연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금융 활동과 구매 활동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더 많은 돈을 내게 된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비용들을 인정함으로써 우리가 공모자였음을 인정한다. 우리가 서로를 등쳐 먹고 강탈할 때 우리 자신의 일부 역시 빼앗긴다. 바른 일을 하는 것은 종종 대단히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심지어는 돈도 많이 드는 과정이다. 나는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한다. 하지만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 정도 대가는 치러도 되지 않을까?


 《미국이 만든 가난》, 260-261쪽



결핍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닙니다. 그리고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 안전망의 균형을 재조정" 하는 과정에서 분명 우리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이렇게 빈곤 종식의 해결책은 쉽고 따뜻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반복해서 집어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난으로 이득을 취해온 우리가 그 불편함에 불평할 수 있을까요? 그 정도의 염치를 갖추고 살아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저자가 이러한 개인적 감정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고 "사회 비용"에 대하여 논하긴 합니다. 



최근에 자신이 정의한 정상성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면서 정상성에 어긋하는 비정상성에 가해지는 제제가 정당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다. 그가 하는 주장은 이것입니다. "나는 정상이니까, 불편한 그들이 정상에 맞추어야 하지 않나? 왜 내가 그들을 배려해야 하나?"  이때 심장을 꽉 조이는 기분이, 데즈먼드의 "하지만 내가 그 논쟁에서 복장이 터지는 부분은 공정한 조세 집행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조세의 허점을 막아서 빈곤을 타파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얼마나 쉽게 마련할 수 있는지다."(215)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다시 떠오릅니다.



그는 이 책을 읽고도 왜 내가 가난의 문제라는 거야, 가난한 사람들이 조금 더 노력해서 빈곤을 벗어나야지,라고 생각할 것임을 떠올려 봅니다. 



"부정의는 창궐하게 내버려두면 경계를 따라 기어다니며 시험해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기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은 삶까지 위협한다."(290)



빈곤이 철폐된 삶에서 번영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요? 



단지 가난이 사라졌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존재할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Q. '빈곤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대로 빈곤이 철폐된 사회를 상상해 보려고 합니다. 노조 파업, 노동자 산재 등의 뉴스가 등장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볼까요? 그런 사회가 도래하게 됐을 때, 저녁 뉴스에서는 첫 번째 속보로 어떤 소식을 정하게 될까요?



A.

북서퍼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해 보았는데, 어렵네요. 부정의가 창궐하지 않고 모두 빈곤에 잡아먹히지 않는 삶이라면, 반지하가 존재하지 않고 5평도 안 되는 작은 서울의 원룸 월세가 70만 원이 아닌 세상이겠죠? 



빈곤 철폐가 만인의 풍요를 의미하지 않기에, 빈곤 철폐라고 하면 일단은 르 귄의 《빼앗긴 자들》 공산주의 공동체 행성 아나레스가 생각나기도 하고, 마지 피어시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로시엔테의 2137년 미래 공동체가 떠오릅니다. (이때 코니는 이 책에서 말하는 빈곤층 라틴계 여성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억압을 당하는 인물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코니 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 계속해서 유토피아 공동체가 생각나네요. 길먼의 《허랜드》, 러스 <우리 떠난 자들이 돌아올 때>와 같은,,,



솔직히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빈곤층이 "열심히 노력하는 노동자의 세금을 빼앗아 간다"라고 주장하는 야당의 주장이 허구한 날 속보를 장식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진보는 언제나 뒷걸음질 칠 수 있다는 것,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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