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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 자본을 향한 두렵고, 매혹적인 칼날

                                   

                           -고병권 지음. <<다시 자본을 읽자>>를 읽고.

 

 

 

    태어나 보니 이 사회는 이미 자본주의 물결이었고, 공산주의는 우리의 삶에 가장 잔인하고 위험한 이름이었다.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곧 공산주의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님을 어디선가 얻어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 고병권이 마르크스의 자본을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쉽게 재해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총 열 두 권의 책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첫 번째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기 위한 전초전이다. 전반적인 개념정리와 마르크스 특유의 입장이나 관점에 관해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그 설명과 관점이 그야말로 쉽고도 명확하다. 마르크스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그의 심중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의 의도를 사려 깊게 공감하게 된다.

 

    우선, ‘자본이라는 개념이 마르크스에 의해 근대적으로 재정의되었다는 것에서부터 독자는자본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마르크스는 자본증식하는 가치라고 규정한다. 이는 고전주의 시기 경제학이 부의 과학이었다면 근대의 경제학은 가치론이라는 시대의 변화를 읽었기에 가능한 정의다.

 

    이어서 저자는 마르크스가 중요하게 다루는 정치경제학이 어떤 역사적 장() 안에서 형성되었는가를 설명한다. 본래 경제는 사실상 먹고 사는 일’, 생계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새로운 사태’-역사적 차원에서의 변화-로 인해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범위가 확장되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의 접근이 필요했고 그리하여 경제는 국가적 차원의 일로 변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은 정확하게 사적 경제학으로 전락한다.

 

    마르크스의 질문은 명확하다. “가치를 생산하는 자가 왜 더 가난한가?” ‘정치경제학비판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맬서스는 빈곤을 과잉인구 탓으로 돌림으로써 빈민의 문제로 돌려버렸고, 조지프 타운센드는 빈곤은 빈민의 개체수를 조절해줄 뿐만 아니라 빈민을 더 근면하게 만든다는 빈곤의 사회적 효용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아렌트나 칼 폴라니의 사회의 탄생에 관한 주장에 근거하여 빈곤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이 탁월한 관점을 지닌 지점은 바로 빈곤을 노동자의 착취에서 찾는다는 점이며 이 착취(에티엔 발리바르에 따르면) “경제적 메커니즘(이를테면 불평등한 분배)의 결과로 정의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형태, 자체를 착취의 계기와 효과로 정의한다는 데 있다. 요컨대, ‘착취가 자본주의 경제 메커니즘의 전제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빈곤의 원인인 착취의 문제는 단순히 가치를 재분배함으로써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체제 자체의 역사적 이행을 요구하는 문제가 된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비판이 역사성과 당파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를 굳건히 하는 정치경제학이 여러 역사적 사건에서 빚어진 현상임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그것이 특별한 시선, 즉 관점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함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역사적 필연성이나 미래로의 영속성을 제거하고 오직 역사적 이행속에서만 그것을 보고자 함이며 어떤 과학적인 책도 입장과는 무관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함이다(이는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을 취했기에 그것이 편파적이라거나 과학적이라는 양쪽의 대립의견을 넘어서서 모든 과학적 비판은 모두 특정한 렌즈, 혹은 색조,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나아가 우리가 자본을 읽을 때에도 이런 역사성과 당파성을 적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는 자본을 역사적 생산양식으로서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으로 간주해야 하며, 어떤 입장속에서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한다. 이 때 입장은 우리 자신의 렌즈, 우리 자신의 조명으로써의 입장이다.

 

    마르크스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보지 못한 자본의 미세한 균열다른 눈으로 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국가가 가난해진 이유는 국가 내에 돈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역설을 발견한 사람이다. 이는 헤겔의 모순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는 현존 체제가 발전시켜왔고 발전시킬 수밖에 없는 힘을 긍정하는 것이 현존 체제를 타도하고 극복하는 일이 된다는 말과 같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의 부정이야말로 대단한 긍정일 수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같은 체제를 부정하는 혁명가야말로 긍정의 정신의 소유자일 수 있으며, ‘다른 미래의 흔적을 빨리 읽어내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첫 번째 책은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독자는 마르크스 자본을 본격적으로 읽게 될 두 번째 책을 열망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이토록 쉽고, 친근하고, 위대해 보인 적이 없다. 모두 저자의 탁월한 지성과 지금, 여기에서의 입장을 견지하며 비판적으로 자본을 재해석한 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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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무기 -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극한 무기의 생물학
더글러스 엠린 지음, 승영조 옮김, 최재천 감수 / 북트리거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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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흥미롭고, 놀랍고, 깊은 통찰력까지 갖춘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동물의 무기라는 제목에 이끌렸지만, 처음 읽는 생물학 분야의 책이고 분량도 만만치 않아 다소 긴장을 하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좋아하는 최재천 교수의 감수의 말중에 이 책을 너무 무겁게 읽을 필요는 절대 없다. 야외 생물학자의 삶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아프리카에서 쇠똥구리를 연구할 때 하늘에서 쇠똥구리가 마치 비, 아니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는 얘기는 압권이다.” 라는 대목에서 긴장이 확 풀어졌다. 그리고 1장을 읽기 시작했는데 11월의 달밤에 올빼미가 어떻게 쥐도 새도 모르게 4~5마리의 쥐들을 먹어치우는지 펼쳐내는 저자의 글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196911월의 밤. 달빛이 나뭇가지에 은빛을 뿌리고, 맨땅에 가느다란 그림자를 드리운다. 작은 철문이 열리고 쥐 두 마리가 튀어나온다. (중략)올빼미가 고개를 돌리고, 아무런 기척도 없이 우아하게 활강하며 발톱을 세운다. 다음 순간, 둘 중 하나가 사라진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증언할 핏자국만 남긴 채.”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스릴과 서스펜스가 가득하다. 그러나 단지 이것뿐이 아니다. 이런 흥미로운 긴장감이 가득한 가운데 저자는 동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나아가 번식이라는 일생의 궁극의 목표를 위해 어떤 무기를 갖게 되는가를 진화적 차원에서 차근차근 쉽고도 재미있게 서술해 나간다.

 

   저자는 무기의 진화를 아주 작은 동물의 몸 색깔, , 바늘이나 가시, 이빨과 발톱, 턱 등에서부터 차례로 설명하면서 동물의 무기를 이용한 인간의 무기 혹은 도구들을 그때그때 비교한다. 지렛대나 창의 촉, 분업이라는 일의 방식, 심지어 계급구조마저 유사하다. 그런데 더 기막히게 들어맞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태환경에서보다 경쟁상황일 때 오히려 극한 무기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동물의 세계에서 진정한 거대 무기의 대부분은 과잉 경쟁의 산물이라고 말하며 무기는 계속 진화하는데 이는 결국 누가 생존하여 번식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설명한다. , 이긴 자의 무기가 후대에까지 유전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승자의 대립유전자는 살아남고, 다른 대립유전자는 점차 사라진다.” 이렇게 진화는 변이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쇠똥구리 전문가로서 같은 쇠똥구리 수컷이라도 경쟁상황에 따라 다른 무기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로써 극한 무기를 갖게 되는 상황과 그런 무기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상황이 같은 동물 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그 상황에 따라 다른 무기를 갖게 된다는 것을 관찰과 실험으로 증명해낸다.

 

   그 와중에 저자는 재치 넘치는 글솜씨로 다양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자가 동물 중 가장 거대무기를 소유한 농게를 관찰하면서 해변을 묘사하는 장면은 책을 덮고도 잊을 수 없는 장관이다.

 

   “해변마다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너무나 많은 수의 게들이 끊임없이 떠돌이와 방어자 역을 바꿔 하는 바람에, 해변에는 놀랄 만큼 많은 대결이 벌어진다. 방어자 수컷은 날마다 수백 마리의 도전을 받아 쫓겨나거나 쫓아내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중략) 떠돌이 게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모래 위 고작 2~3센티미터에 위치한 눈으로 바라본 해변 풍경을 상상해 보라. 바라보는 모든 곳에서 집게발이 수평선을 찢을 듯이 홱홱 올라갔다 다시 내려온다. 수없이 거듭 올라갔다 내려오는, 끊임없는 대공사격 같은 동작에 포위된 상태다.”

 

   농게의 눈으로 수십만 마리 농게의 집게발이 수평선을 찢을 듯 움직이는 드넓은 해변의 광경이라니! 그런 해변을 본 적이 있더라도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농게의 눈으로 수평선을 찢는 농게의 집게발을 이렇게 실제처럼 상상할 수는 없었을 터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광경인가! 나아가 저자는 얼마나 신비롭고, 상상력 넘치며, 아름다운 직업을 가졌는가! 생물학과 생물학자에 관한 새로운 시선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동물의 무기는 오로지 생존과 번식에 기여하며 진화한다. 저자는 동물의 무기와 인간의 무기가 역사적 과정, 무기가 기능하는 환경, 무기 선택의 강조,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 방식 등이 모두 유사함을 밝히는 데 책을 쓴 목적이 있다고 밝힌다. 그런데 이 대응이 어느 시점까지만 유효하다. 오늘날 인간 사회의 대량살상무기는 생물학적 전투의 이해관계와 논리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아주 작은 동물의 무기에서 시작한 이 책은 마침내 현대사회의 과열된 경쟁을 기반으로 개발된 치명적인 인간의 무기에까지 이르렀다. 시작은 생물학이었으나 그 끝은 현대사회를 향한 깊은 통찰이 된 셈이다.

   동물의 무기가 잔인하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 목적이 오로지 생존과 번식이라는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이유일 터다. 그렇다면 인간의 무기가 자연환경에서의 전투논리를 벗어나 이익을 위한 대량살상을 가능하게 하는 쪽으로 발전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책은 재치 있고, 흥미롭고 아름다운 동물세계의 묘사와 서술 곳곳에 인간 세계를 향한 진지한 질문을 놓지 않는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동물의 족속을 넘어서고자 하며, 그런 논리로 동물과 다른 방향의 이익을 추구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번식과 생존이라는 획득해야 할 이익은 인간의 세계에서는 자각, 구원, 권력, 자본으로 시대마다 이름을 바꾸며 등장한다. 그리하여 종국엔 인간 스스로를 멸종시킬만한 위협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무기의 사용에 관한 인간적인 결단이다.

   살아가면서 여행만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길이 아님을 이 책은 여실히 증명한다.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새롭고, 경이로우며 반드시 사유해봐야 할 세계를 만나보고 싶다면, 누구든 우선, 이 책을 펼쳐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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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춘기 수업 - 사춘기 아이의 정서를 이해하고 학습력을 높여주는
이민서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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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름방학이 코앞이다. 아이는 신났지만 엄마는 속이 탄다. 중1은 처음 자리잡는 시작이라서 중2는 본격적인 내신돌입이라서 중3은 고입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고1은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고2는 진짜 관리가 필요한 시기라서 고3은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서...

 

  아이는 중2인데 중2니까 이번 방학이 중요하다!!!! 하려다가 <<엄마의 사춘기 수업>>을 읽고나니, 그래, 아이가 몇 학년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구나... 왜냐하면 따지고 들면 모든 학년이 결정적 시기라고 엄마들은 생각할테니 말이다. 위에 쓴 것처럼 다 저마다의 학년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중2 아들의 여름방학 계획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중2 아들의 여름방학 학원스케줄을 짜다가 펜을 놔버렸다. '내 앞가림이나 하자.'하는 생각이 든 것도 역시 <<엄마의 사춘기 수업>>을 읽어서다.


  나의 중2 여름방학은 어땠었나... 오래 전 기억을 더듬다가 그것마저 그만둔 것은 나 역시 그 시절엔 공부에 큰 뜻이 없었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 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주어진 일과와 내 충동적 감정과 막연한 이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서다. 지금은 더 일찍, 더 많이 공부를 해두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은 사회적 요구에 맞춰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니 엄마들이 속을 태울 것이 아니라 아이의 온전한 성장과 사유를 돕는 길을 찾는 게 빠르다.


  무조건 공부를 잘하게 해야겠다는 엄마의 욕심을 잠시 넣어두고, 아이의 속사정이 어떤가를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엄마의 사춘기 수업>>은 그런 현명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혹은 너그러운 엄마의 자리를 찾도록 돕는 책이다. 저자가 펼쳐놓는 이야기마다 우리집 아이와 나의 모습이 깃들어 있어 더욱 저자의 가만가만한 이야기가 마음에 폭 들어온다.


  눈 앞에 놓인 현상, 결과만을 보고 달려가다보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속을 들여다 보는 게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오히려 빠른 길이다. 아이의 마음, 아이의 생각, 아이의 불안, 아이의 고민을 나누고 듣다보면, 그 마음과 생각과 불안과 고민이 고스란히 엄마에게서 전염된 것임을 깨닫는다. 나의 사춘기 시절이 그러했으니 아이의 사춘기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 불안과 고민이 묻어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아이까지 불안하게 만들 필요가 있으랴. 아이가 나아갈 방향이 어딘가를 아이와 함께 나누되 그것이 강요나 불안을 동반한 것이지 않기를.


  <<엄마의 사춘기 수업>>을 읽고 다시 한 번 부모와 아이의 분리가 필요함을 느꼈고, 그 분리가 따뜻한 보호와 믿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알았다.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 이제 사춘기를 맞이할 아이를 둔 부모 모두에게 필독을 권한다.

 

  지금의 교육현실에서 아이들이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론까지 차근차근 설명해 놓았으니,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기회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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