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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생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한 남자와 희망없는 미래에 대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의 배에 몰래 숨어든 밀항자 소녀....
한때 부와 명예를 맘껏 누렸던 유명한 영화감독 쥐앙 모게는 그 모든 것들과의 인연을 스스로 끊고 아자르호라는 배에 자신만의 왕국을 구축하고 안드리아메나라는 과묵한 선원 한명만을 대동한채 대양을 떠돌아 다닌다.
어느날 상처투성이의 어린영혼 나시마는 아자르호에 숨어들게 되고 세사람의 항해는 시작된다.
처절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이내 서로를 알아보고 호감을 느끼지만 온통 독가시로 무장한 호저처럼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는 못한다.
소설은 주로 모게와 나시마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요트항해와 카리브해의 자연을 묘사하는데 치중되어 있다. 나이차이가 많이나는 모게와 나시마의 아찔한 사랑같은걸 상상해 볼수도 있겠으나 둘 사이의 감정은 딸을 잃은 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은 딸의 관계로 부녀의 정 같은게 느껴진다.
초기작 '조서'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은 많이 수그러들었고 르 클레지오의 문장 특유의 무미건조한 냉소적인 관조자로의 시선은 오히려 많이 따뜻해졌다.
마지막 모게와 아자르 호의 몰락이 그리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불타오르는 아자르호의 그림자 뒤로 다시 희망을 찾은 나시마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 표지가 너무 우중충한 디지인이라 어울리지 않는것 같다.
내용이 그렇게 암울하지만 않으니 강렬한 햇빛이 내리 쬐는 바다의 모습으로 바꿔도 상관없을 듯...
이 책에 같이 실린 중편[앙골리 말라]도 좋았다.
보관함에 담아놓은 르 클레지오의 소설들을 많이 구매할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