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목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부터 낯선 느낌을 주었다. 언제든 여닫을 수 있는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니... 어떤 시일지 궁금했는데 이 제목의 시는 없었다. 대신 상처, 어둠, 침묵, 고통, 절망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이 느껴지는 시가 실려 있었다. 모든 시를 소화할 수 없었지만 그 중 마음에 울린 시가 몇 편 있다. '마크 로스코와 나' 라는 시에서 로스코의 사망일과 작가의 생일 사이의 몇 달을 표현한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생과 사의 흐름을 이토록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나도 한 예술가의 사망일을 내 생일과 연관지어 떠올리곤 한다. 죽기 전 2년 동안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사망일이 연도는 다르지만 내 생일과 같다는 걸 알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었다. 그 때 느낀 미묘한 감정이 마크 로스코와 관련된 두 편의 시를 읽으며 조금 정리되었다. 가장 마음에 닿은 시는 끝쪽에 실린 '서시'였다. 운명을 의인화한 시를 읽으면서 한국어로 읽을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특히 얼룩진 뺨에 두 손을 올린다는 구절에서 울컥했다. 나의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괜시리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 한 켠에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의 '서시'에 한강의 '서시'도 나란히 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