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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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82년생 김지영』

한국문학-소설-여성 서사/ 192쪽/ 135*195mm/ 13,000원/ 민음사/ 2016-10-14

김지영 얘기를 하다가 구남친과 싸웠다. 아마도 여경 이야기와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불이 당겨졌고 나는 내 생각을 소명하는 대신 “김지영 읽어 봐”라고 말했다. 바로 ‘너 페미야?’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아직도 그 억양이 생생하다. 어쩌면 페미니즘은 경험을 통해 단련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 나의 대답은 반사적인 것이기도 하고 페미에 대해 무지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그래, 읽어볼게’ 하는 순순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일로 페미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면 대화를 끝낼 수 있었을까?

여성의 삶은 “정확히 어떤 지점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집어 지적할 수는 없지만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어쩔 수 없는 형식에 갇혀 있는 것 같다. 한동안 김지영을 읽고 있다는 건 여성들 사이의 연대였다. 읽기 시작했고 읽고 있고 읽었음은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며,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의 또 다른 표현 같았다. 페미니즘과 여성주의에 있어서 연대는 여성들 사이의 소중한 경험 아닐까, 서로를 위해 대신 말해주고 싶은 분노와 애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성들의 삶은 어쩌면 둑을 쌓는 과정 아닐까. 김지영 씨 언니 김은영 씨의 삶이 “김은영 씨의 대학 진학은 모든 가족에게 성공적인 일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때 슬픔을 느끼고 그 슬픔은 어디에 기인하는 걸까 생각했다. 그건 김은영 씨가 쌓아온 둑이 너무나 단단해서,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짊어짐을 그럴 수도 있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어쩌면 스스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그래도 되는, 그랬으면 하는, 그럴 수도 있는 존재로 생각되어 버리는 여성의 삶이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은영 씨는 말 그대로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했다.”

자발적인 합리화는 둑이 범람하지 않도록 막는 기제다. 여성은 자기 범람 이전에 타인 욕망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을 쌓아올린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듯 둑은 경험을 통해 굵어진다. 그리고 혹여나 넘쳐흐른 타인의 욕망을 두고 여성들은 자책하고 수치심을 느낀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합리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자기 합리화는 낡은 기제다. 여성은 합리화하지 않고 타인의 욕망을 지적하며 썅년이 아닌 서로를 돕는 썅년들이 돼야 한다. 나는 김지영 씨를 도와준 ‘퇴근길인 듯 피곤한 얼굴의 여자’가 “택시가 더 무서워요.”라고 말할 때 총체적 난국이라고 생각했다. 김지영 씨를 따라온 남학생이 피곤한 얼굴의 여자와 김지영 씨를 묶어 “썅년들”이라고 말할 때 왜 분노가 아닌 안도감을 느꼈을까.

이해를 한다고 해도 여성의 경험은 남성을 포함한 타인의 경험이나 공감이 될 수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물결이 흐름이 되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렸다. 마음이 출렁거렸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통해 여성문제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본격 가시화되기 시작할 때 나는 그것을 본다는 느낌보다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밀려나가는 흐름, 리듬감으로 여성 서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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