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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5. 5. 북촌 책방무사)


  우리는 책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지요. 누군가를 알아가기 시작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열 가지 질문 중 세 번째 정도로 떠오르는 건 '이 사람은 무슨 책을 읽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고 최근에 어떤 책을 읽었는지 듣고 난 뒤에는 그 책을 읽고 나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데(곳)로 가게 된다는 말을 믿기 때문입니다.
  책 이야기를 할 때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명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시간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시간이나 책을 가지고 다닌 거리보다 짧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밑줄 그은 문장을 이은 것보다 짧을 수도 있지요.

  1일1책, 건강한 먹성이 아닌 '책성'

  일단 난다의 >읽어보다< 시리즈에 마음이 끌려 읽기로 했다면 타인의 내밀한 취향을 훔쳐보는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읽어보다 시리즈는 매일 한 권의 책을 '만지는' 사람들이 매일 한 권의 책을 '기록하는'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책의 구성은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의 책일기와 7월 1일부터 12월의 오늘까지 만져본 책의 목록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난다의 >읽어보다< 시리즈는 현재까지 6권 출간되었습니다.
  * 목록의 순서는 임의입니다. ① 뮤지션이자 책방무사 운영자 요조의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는 기분』 ② 의사이자 에세이스트 남궁인의『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③ 시인 장석주 박연준 부부의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④ 카페꼼마의 장으뜸 대표와 강윤정 편집자 부부의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⑤ 예스24 김유리 MD와 매일경제 문화부 김슬기 기자 부부의 『읽은 척하면 됩니다』 ⑥ 민음사 서효인 시인 박혜진 문학평론가(두 분은 한국문학팀에서 편집자 동료로 일하면서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를 기획하고 2016년 10월 조남주 소설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우리에게 소개하기도 했지요)

  "각자의 책은 마음속에서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농익고 있다"

  요조의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는 기분』은 제목부터 읽기의 다른 감각을 제안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밀고 나가는 독서법인 동시에 요조의 감각적인 표현들이 돋보이는 책 일기입니다. 가감없이 호쾌한 화법은 읽는 사람을 웃음 짓게 합니다.
  "책에 관해서는 '운명'을 믿는다"(는 문장을 발견하고 그 믿음에 공감했습니다. 어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어쩌면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보다 그 책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책의 신(神)이 있다면 나의 영혼과 비밀리에 거래를 한 것은 아니겠나, 어쩌면 책을 통해서 지금의 "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스스로 선택한 나일 수도 있다."(109쪽)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을지 고르는 일은 나의 다음을 '선택'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책장을 찬찬히 넘기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이 생기고 알고 싶은 사람이 많아져서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어떤 책에 대해 '애가 타도록 부러웠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문득 "무언가를 사랑해서 까맣게 타는 것이 좋다.˝(『소란』 난다, 2020)는 박연준 시인의 작가 소개 글이 생각났습니다.

  다만 스스로 과잉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그것을 그저 나로서 받아들일 줄 아는 그녀의 자세는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그것이 애가 타도록 부러웠다. (132쪽)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을 읽으면서 어떤 문장을 발견했을 때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타는 것처럼 '사랑해서 까맣게 타는' 마음. 애가 타서 끊어질 것 같은 슬픔. '애'는 창자 · 간 · 쓸개이고 '애끊다, 애끓다'는 말은 슬픔에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 안타까워서 속이 끓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왜 아름다운 글은 몸 속에 장기가 끊어지는 것처럼 안타까운 슬픔으로 읽게 될까요. 아마도 글에 마음이 담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쓰는 이가 마음을 담아서 쓰고 읽는 이가 마음을 담아서 읽을 때, 그렇게 책이 마음을 갖게 될 때 우리는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스스로 선택한 나일 수도 있다"

  요조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조금 더 특별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시 읽기와 곡 쓰기를 나란히 둘 때 뮤지선으로서 요조의 시선이었습니다. '이 곡은 어떻게 만들게 된 거예요?'라는 질문에 "나는 그냥 찾았을 뿐이었다."고 사색하는 글을 읽고 노래를 찾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증오하는 당신에게 손을 대었네 오랫동안 아플 것을 계약했죠 (-) 행복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너와 나 아침마다 모든 것을 전부 다시 따져보지만"(요조 '춤' 가사 중에서) 요조의 가사에는 노랫말이 된 시가 있습니다.
  "세과가 기뻐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익살을 떨었다. 나는 시집을 읽는 게 아니라 구경하는 기분으로 본다고 말했다. 동대문에서 옷 쇼핑하듯이, 단어 쇼핑하는 거라고 했다." 시집을 읽으며 단어를 쇼핑하는 뮤지션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허은실 시인의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문학동네, 2017)에 대한 책 일기를 읽을 때는 웃다가 울기도 했습니다. 책에 '캐주얼하다'는 가벼운 표현을 쓴 게 좋았고 책에 대해서 말 그대로 후다닥 요약하는 '후다닥 요약'이라는 표현도 재미있었습니다. 요조의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을 읽다 보면 읽다 만 책들의 행방이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책을 덮기까지가 "너무 금방이고 말았습니다."(책 일기 저자에게 다가온 마감처럼요)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 건강을 지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귀찮아도 운동을 해야 한다고, 먹는 음식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해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더 잘할 수 있고 더 오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칙적인 삶을 스스로에게 체화시켜야 한다. 언제까지나 영감을 기다리면서 느긋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연습하고 생산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성실이 전제된 최선을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내 음악, 아니 음악 뿐만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늙어가는 삶이 아니라, 자라나고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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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밑줄 긋기
출처 : 국민일보 | 네이버
http://naver.me/Grw82y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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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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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82년생 김지영』

한국문학-소설-여성 서사/ 192쪽/ 135*195mm/ 13,000원/ 민음사/ 2016-10-14

김지영 얘기를 하다가 구남친과 싸웠다. 아마도 여경 이야기와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불이 당겨졌고 나는 내 생각을 소명하는 대신 “김지영 읽어 봐”라고 말했다. 바로 ‘너 페미야?’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아직도 그 억양이 생생하다. 어쩌면 페미니즘은 경험을 통해 단련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 나의 대답은 반사적인 것이기도 하고 페미에 대해 무지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그래, 읽어볼게’ 하는 순순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일로 페미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면 대화를 끝낼 수 있었을까?

여성의 삶은 “정확히 어떤 지점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집어 지적할 수는 없지만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어쩔 수 없는 형식에 갇혀 있는 것 같다. 한동안 김지영을 읽고 있다는 건 여성들 사이의 연대였다. 읽기 시작했고 읽고 있고 읽었음은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며,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의 또 다른 표현 같았다. 페미니즘과 여성주의에 있어서 연대는 여성들 사이의 소중한 경험 아닐까, 서로를 위해 대신 말해주고 싶은 분노와 애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성들의 삶은 어쩌면 둑을 쌓는 과정 아닐까. 김지영 씨 언니 김은영 씨의 삶이 “김은영 씨의 대학 진학은 모든 가족에게 성공적인 일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때 슬픔을 느끼고 그 슬픔은 어디에 기인하는 걸까 생각했다. 그건 김은영 씨가 쌓아온 둑이 너무나 단단해서,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짊어짐을 그럴 수도 있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어쩌면 스스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그래도 되는, 그랬으면 하는, 그럴 수도 있는 존재로 생각되어 버리는 여성의 삶이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은영 씨는 말 그대로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했다.”

자발적인 합리화는 둑이 범람하지 않도록 막는 기제다. 여성은 자기 범람 이전에 타인 욕망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을 쌓아올린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듯 둑은 경험을 통해 굵어진다. 그리고 혹여나 넘쳐흐른 타인의 욕망을 두고 여성들은 자책하고 수치심을 느낀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합리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자기 합리화는 낡은 기제다. 여성은 합리화하지 않고 타인의 욕망을 지적하며 썅년이 아닌 서로를 돕는 썅년들이 돼야 한다. 나는 김지영 씨를 도와준 ‘퇴근길인 듯 피곤한 얼굴의 여자’가 “택시가 더 무서워요.”라고 말할 때 총체적 난국이라고 생각했다. 김지영 씨를 따라온 남학생이 피곤한 얼굴의 여자와 김지영 씨를 묶어 “썅년들”이라고 말할 때 왜 분노가 아닌 안도감을 느꼈을까.

이해를 한다고 해도 여성의 경험은 남성을 포함한 타인의 경험이나 공감이 될 수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물결이 흐름이 되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렸다. 마음이 출렁거렸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통해 여성문제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본격 가시화되기 시작할 때 나는 그것을 본다는 느낌보다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밀려나가는 흐름, 리듬감으로 여성 서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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