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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짝 없는 여자와 도시 ㅣ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2월
평점 :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삶의 순간순간을 선명하게 포착하는 관점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를 줍기 위함이다. 저자가 태어나서 한 번도 간 적 없는 땅의, 평생 만날 일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러하다. 삶의 의미에 천착하는 사유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어떻게든 맞닿아 공감하게끔 만드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비언 고닉의 언어는 내가 에세이를 펼쳐들 때 기대하는 바에 충실하게 부응해주었다.
“내가 확실히 할 줄 아는 건 몽상으로 세월 흘려보내기였다. 그저 ‘상황’이 달라져서 나도 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고만 있는 것.” 『짝 없는 여자와 도시』 중에서
『짝 없는 여자와 도시』에서 비비언 고닉은 조지 기싱에서 인용한 ‘짝 없는 여자’로 자처하며 자신의 삶이 거처하는 도시 뉴욕과, 그 뉴욕을 거니는 자신의 걸음을 따라 그려지는 선(線)을 이야기한다.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 뉴욕에서 고닉의 선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부지런히 교차한다. 고닉은 습관적 만남, 우연한 조우, 가벼운 스침, 깊숙한 대화 등 다양한 형태의 교차를 진솔하게 서술한다.
“좋은 대화란 공통된 이해관계나 계급의식이나 공유된 이상 따위보다는 기질에 달린 문제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 중에서
목차나 챕터 없이 죽 이어지는 책의 구성상, 화제가 왔다갔다하는 것이 두서없고 어지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고닉이 데려오는 이름들이 조금씩 익숙해지다가 확 낯익어지는 순간 그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낯선 땅에 뚝 떨어졌을 때 처음에는 모르는 언어로 된 이정표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눈치를 발휘하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한편 고백하자면, 나는 어려서부터 미디어를 통해 제1세계의 아이콘인 뉴욕을 접했고 그 결과 뉴욕에 대한 얼마간의 환상을 품고 자랐다. 이제는 고닉처럼 그곳에서 나고 자라 삶을 쌓아올린 사람에게 나의 환상이 우스꽝스러울 수 있음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흔적은 남아 뉴욕이라는 이름에 막연한 선망의 색채를 씌우고 있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그런 내게, 뉴요커의 눈으로 보고 뉴요커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뉴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음을 알려주었다고 해도 좋겠다. ‘이건 뉴요커의 이야기고, 지구 반대편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나와는 아무래도 다르려나’ 하는 순간 귀신같이 절묘하게 파고드는 문장들이 읽힌다.
“내가 지금까지 몸으로 살아낸 것은 온갖 갈등이지 환상이 아니었으며, 뉴욕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하나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 중에서
외로움과 관계에 대한 대화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펼쳐 고닉과 만남을 가져보기를 추천한다. 또, 아는 사람이 있는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여행을 대신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