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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2년 6월
평점 :
타인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 않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인간이 다면적이라는 사실은 정말 골치 아프다. 딱 잘라 이 사람은 이렇다고 말할 수 있다면 편하고 좋으련만 인간이라는 생물은 하도 복잡하게 생겨먹어서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물론 그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모른 척하고 A 조건에 속하는 사람은 모두 a 하다고 단정 짓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방식이 아님은 자명하다. 혐오가 작동하기에 딱 좋은 바탕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단순(무식) 하고 손쉬운 혐오의 함정에 발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대를 모를수록 타자화하기 간편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이해까지 나아가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하여튼 누군가를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정한 속성을 공유한 집단이 아니라 개별적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보면서 말이다.
브래디 미카코의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는 바로 그러한 관찰의 기록이다.
관찰 대상은 저자가 직접 만나고 교류한 ‘아저씨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 “영국에서 특히 ‘문제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사람들”로, “시대에 뒤처졌고, 배외주의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될 만한 문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며 EU를 싫어하는 우익 애국자들”(7쪽)이라 요약되는 이들 말이다.
더불어 이 책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민자 여성의 시선으로 특정 세대-계급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브렉시트로 대표되는 영국 내부의 갈등과 사회 문제, 계급에 대해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각자의 인생을 가진 고유한 존재이다. 이 책은 투쟁적인 현대 사회에서 쉽게 잊히는 그 당연한 명제를 새삼스럽게 떠올리도록 만든다.
브래디 미카코가 만난 아저씨들은, 그들을 잘 모르는 제삼자의 시선에서는 비슷비슷해 보일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 다른 이름과 성격을 지니고 선명하게 구별되는 삶을 살고 있으며, 선뜻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놀랍게도 정감 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브래디 미카코의 애정의 필터가 그들을 실제보다 온순하고 순박하게 보이게 만들었으리라는 의심이 여전히 있지만.)
그들의 생각이 사실은 모두 옳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저럴 거면서 왜 엉뚱한 선택을 했나 싶기도 하고,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경험은 무척 각별했다. 옳고 그르고를 논하기 전에 그들은 사람이었다. 사람 냄새가 듬뿍 나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