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에는 코코아를 마블 카페 이야기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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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배경은 지구 반대편의 도쿄와 시드니를 넘나들지만 거대한 스케일로 다가오기보다는 개인적이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 까닭은 세계의 형상화가 작가가 가진 경험에 기반하고 있는 덕분일 것이다. 배율 높은 축척을 써 대륙을 조망할 수 있게 만든 지도에서 도쿄와 시드니를 찾아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땅에 발 딛고 공기를 마시며 걸어 다닌 적 있는 사람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소설 속 세계를 만든 것이다.

볕이 밝고 바람이 부드러운, 그래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는 선하고 따뜻한 세계 말이다.


2.

B6 사이즈에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작고 가벼운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작지도 가볍지도 않다. 일단 열두 편의 연작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야기마다 주인공을 달리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모두 저마다의 삶과 고민을 가지고 답을 찾아나간다.

카페의 손님을 짝사랑하는 점원의 이야기에서 시작하기에 달달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일하는 엄마의 고민이나 세대가 다른 일하는 여성들의 오해 같은 문제도 다룬다. 그런가 하면 결혼 50주년을 맞은 노부부가 함께 늙어가는 이야기처럼 포근한 이야기도 있어서 단짠이 적절하게 잘 배합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너무 달기만 하면 느끼해서 물려 버리기 쉬운데 쌉싸름한 맛 덕분에 끝까지 마실 수 있는 코코아처럼.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각각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피프티 피플』이 생각나는 기법인데, 그 작품이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면 이 소설은 일본의 핫 코코아로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하여간 사람은 혼자서만 사는 게 아니고, 여러 관계 속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치유받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목요일에는 코코아를』 속 사람들의 연결을 통해 읽을 수 있다.

한편 독특한 인물로 ‘마스터’가 있다. 코코아에 얹은 시나몬이나 허브 같은 인물이라고 할까? 첫 편(브라운)에서 마블 카페의 사장으로 등장한 이후 여기저기 불쑥 나타나는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예술가에게 손을 내밀어 아름다운 것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직접 뭔가를 창작하지는 않고 창작하는 사람들을 찾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하는, 불가사의한 존재. 한 가지의 색을 갖고 있기보다는 모든 색을 다 품고 있는 빛 같은 인물이다. 아마도 마스터는 작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또는 존재한다고 믿는) 어떤 기적을 인간 모습으로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다. 아, 일본 토속신앙에서 사람들을 좋아해서 돌봐 준다고 하는 가미 같기도 하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과 스쳐 지나는 여러 사람들, 그들 사이를 바람처럼 거니는 마스터가 엮어내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결로 수렴한다.


이 책의 제목을 아주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로 마음이 거칠어진 사람에게 내밀어지는 한 잔의 따뜻한 코코아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힐링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책을 쥐여 주고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힐링이 필요하겠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경치를 보며 좋아하는 것 얘기하기. - P185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소중한 바람을 갖는 데 좀 겁먹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했을 때 나아가지 않으면 줄곧 멈춘 채로, 그뿐만 아니라 그 바람은 이루지 못하는 사이 마음째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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