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 - 제4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김윤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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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 작가의 『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는 이러한 ‘낙인이론’의 불편함을 정통으로 돌파하는 작품이다. 소설 속 주요 인물인 ‘나’는 현재 보호자가 없는 상태다. 연락되지 않는 아버지, 여섯 평 남짓한 방이지만 그마저도 물과 전기가 끊긴 보호처, 몰려온 채무자들로 인해 집은 벽지가 뜯겨 있고, 십 대 청소년인 ‘나’가 이러한 상황을 들키지 않고 보호 받을 수 있는 곳(shelter)은 오직 학교뿐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혹자는 청소년 쉼터나 여러 기관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왜 도움을 구하지 않는 거지? 혹은 주변에 어른들은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소설의 중심 소재인 ‘선’에 있다. 팬데믹 이후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이 사회에서 겨우 십 대 청소년인 나는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스스로 자신에게 규정된 ‘선’을 지키는데 애쓰게 된다. 피해 주고 싶지 않고, 피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 어차피 진부한 결론만 따라오겠지 같은 생각들. 그러니까 비정형성의 세계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때로는 더 나은 세계로의 활로를 차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선’과 ‘기준’을 지키는 암묵적인 롤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나’의 대화 주체이자 객체가 되는 쪽은 애석하게도 나뿐이다. 선생님도, 친구도 있지만 ‘나’는 유일한 진실을 컴퓨터와 노트북에만 털어놓는다. 나는 전교 22등에,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명백한 목표가 있다. 그러나 꿈을 이루는 데 있어 도움받을 사람은 없다. 모아 둔 전재산 108만 원으로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입시원서를 쓰는 10만 원 상당의 금액을 지출하는데 망설임을 갖게 만든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선생은 학생들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버리고, 학생은 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도움의 한계를 미리 구분 지어 버린다.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상담센터의 전단은 빛 좋은 개살구. 즉, 무용지물이다. 이 소설의 중심 소재인 ‘선’은 나의 심리적인 '선'이기도 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있던가.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도움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오히려 나의 장래에 허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의 한계를 스스로 가늠하게 만든다. 이 역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미성숙함, 즉 청소년에게 그어져 있던 보이지 않는 '선'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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