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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그렇게 바뀌었다
류쭝쿤 지음, 강초아 옮김 / 들녘 / 2025년 12월
평점 :
이 책은 들녁 @dulnyouk_pub 출판사에서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근래 봤던 책 중에서 단연 최고다. 정말이다. 일단, 매끄러운 번역이 너무 좋았다. 끊김없이 쑥쑥 이해가 잘 되는 번역서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이 책의 장점은 법률 서적이지만 소설같은 법률 서적이라는 점이다. 재밌고 쉬운데 배움이 많다. 이보다 더 좋을수 있을까?
미국의 노예제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흡입력이 좋았다. 노예제가 유지되고 폐지되는 흐름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정말 재밌었다. 법과 관련된 이야기가 지루할 때가 많은데 이런 이야기를 통한 서술이라면 너무나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아 정말 흥미진진한 스토리들의 연속이다. 법률가들의 치열한 다툼, 패배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당사자는 다르지만 결국 얻어낸 지난한 승리. 사회가 힘겹게도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그리는 것이 영화처럼 흘러간다. 근래 읽어본 법률 서적 중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진진했다. 미국 사회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관계, 인종문제, 남부와 북부의 갈등의 역사 등 한국 사회와는 구조적으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덕분에 깊어졌다.
가장 좋았던 문장은 이거다. "성문법이라는 뼈대 안에서 우리는 매일 성문화하지 않은 삶이라는 피와 살을 마주한다. 불문율은 성문법보다 바꾸기 어려우며 변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사회 속에 깊이 스며든 암묵적 규칙들이 사법과 정치 영역에서 불평등한 결과를 낳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다. 법과 정책은 이런 불평등 앞에서 무기력하지 않다." 법은 필연적으로 추상적이고, 현실은 필연적으로 구체적이다. 추상과 구체의 간극을 채워나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판단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을 이끌기 위한 당사자들과 대리인들이 있다. 그들의 힘겨운 노력이 구체적인 현실을 더 나은 곳으로 추동하고 또 그것을 반영하는 새로운 추상의 등장의 여정을 이 책이 잘 담고있다.
인종 분리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강화되고 있는 분리주의적인 흐름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린이를 배제하는 노키즈존이 대표적이다. 재산권에 근거한 연령 분리를 언제까지 지켜봐야할까? 재산권을 근거로 누군가의 접근을 원천 봉쇄한다는 것, 더군다나 누군가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연령이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시설 이용을 막는다는 것은 명백한 불평등이다. 책의 표현대로 '자신이 남보다 낮은 지위라는 감각은 나쁜 영향을 준다. 이러한 연령 분리는 아이의 교육 및 심리적 성장을 방해한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징표를 근거로 분리를 시도하는 사회적 흐름에 반드시 제동을 걸어야 한다.
"당신이 옳다고 하는 일을 하고 법률이 뒤따르게 하라"는 마셜의 격언도 참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런 적극적인 법률 관념이 뒤틀린 사상가에게 활용된다면 끔찍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극단이 장사가 되는 시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판사들의 적극적인 법형성에 기대할 때도 많지만, 때로는 그런 행위가 영 마뜩찮을 때도 많다. 그래서 결국 그 옳음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흔들리기 시작한 시대이니만큼 이 책이 참 적절하다.
세상을 바꾼 다양한 결정들이 어떤 인물들과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했는지 이보다 역동적으로, 재미있게 서술하기는 힘들 것이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료에 기반하여 치열한 설득과 토론 그리고 변화를 담은 내용이기에 주변에 강력하게 권한다.
*이런 표현들이 참 좋았다. 이를테면 "버지니아주는 인종 간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지만, 소년과 소녀는 그런 낡은 법은 알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텄고, 그들은 인간의 법이 아니라 자연의 법만 이해했다."
#들녁#출판사#법은 그렇게 바뀌었다#류쭝쿤#강초아 번역#법률가들과 사회운동가들에게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