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팩토리 -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보이지 않는 노동
모리츠 알텐리트 지음, 권오성.오민규 옮김 / 숨쉬는책공장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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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팩토리(모리츠 알텐리트 저자/권오성, 오민규 옮김) 이 책은 숨쉬는책공장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늘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역자 분들로 인해 관심이 갔던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읽기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로, 제가 느끼기에 이 책의 핵심은 '폭로'입니다. 즉, 드러나지 않는 사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고 목적부합적으로 서술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그 폭로의 내용은 무엇인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세계 노동이 갖는 현 상황은 자동화를 단순히 좀 더 스마트한 소프트웨어와 정교한 로봇에 의한 일자리의 소멸로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어떤 시점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변화된 형태로 다른 시점에 다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크라우드워크의 경우 알고리즘에 의해 수행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노동은 실제로 독일의 개인 주택, 베네수엘


라의 인터넷 카페, 케냐의 길거리 등에 숨어 있는 수많은 온디맨드 노동자들이 수행하거나 적어도 이들이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노동자들을 고려할 때, 일자리가 없는 미래에 대해 추측하는 것보다는 진정한 지구 차원의 디지털 노동시장의 출현, 새로운 형태의 원격근무자 조직 및 통제, 새로운 형태의 저항으로 특징지어지는 현재를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이 책은 알고리즘과 같이 각종 디지털 기술로 치장된 기업(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그 기업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와 상품이 사실은 숨겨진 노동자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음을 일관적으로 폭로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첨단 테크 기업으로 선전하고 홍보되는 기업들이 어떤 물적 인프라와 어떤 노동을 통해서 성장해왔는지, 또 어떻게 지탱되고 유지되고 있는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특히, 아마존의 급격한 성장과 발전을 분석함에 있어서 그 키워드를 '물류'로 두고 있습니다. 저는 김영준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데 그때 수많은 기업의 흥망성쇠와 브랜드의 발전에 의외로 '물류'와 '유통'이 큰 역할을 하고 있구나 배웠는데 이 책에서도 물류 그리고 물류와 유통을 수행하는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배웠습니다. 이 책은 물류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물류는 점점 더 생산과 유통의 전체 싸이클을 계획하고 분석하는 주역을 맡게 되었다. 물류는 점점 더 경제 기획에서 중심을 차지했다. 자본에게 상품의 물리적 순환이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 개념으로 성장했음을 의미했다. 물류는 이제 생산에 뒤따르는 필수요소로서의 운송 개념을 넘어 잉여가치 생산의 핵심요소로 올라서게 되었다. 생산, 유통, 그리고 점점 더 소비까지 통합시킨 것이야말로 물류혁명의 핵심 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책에서는 아마존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저는 한국의 쿠팡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쿠팡과 같은 e-커머스 기업의 성장은 이제 경제의 한 요소를 넘어서 커다란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쿠팡은 단순한 유통업체를 넘어서 거대 공룡 기업으로 수 십만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성장에 있어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이 어떻게 그 안에서, 또 외부에서 조직하고 대응하는지가 역시 중요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 앞으로 물류, 유통, 더 나아가 공급망에 대한 통제라는 주제까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세 번째로, 첨단과 기술로 치장되었으나 결국 기존의 노무관리 방식에 '디지털'이라는 외피를 입힌 것에 불과한 현대 노무관리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점이 좋았습니다. 책은 여러 장에 걸쳐 아마존, 쿠팡과 같은 기업이 빠르게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서 어떤 노동이 필요한지, 그러한 빠르고 압축적인 노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어떤 노무관리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 노무관리가 공장에서 노동자를 관리하기 위한 테일러주의와 얼마나 닮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성과주의는 객관적/중립적/정량적인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성과/할당량은 비현실적이고 노동을 가속화하는 도구로 활용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할당량, 목표 및 기타 핵심 성과지표(KPI) 시스템은 물류 모빌리티 거버넌스만이 아니라 집단적, 개별적 수준의 노동력 관리 모두에 매우 중요하다. 물류센터는 모든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세분화하여 감시하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KPI는 노동력을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는 객관적인 매개변수로 구성된다. KPI는 알고리즘 거버넌스와 표준화된 절차라는, 겉보기에는 중립적이고 추상화/정량화된 논리를 활용하며 풀필먼트센터의 세세한 경제 운영에 결정적 역할을 맡게 된다"
한 노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것이 표준화되어있고 유일하게 변하는 것은 성과 수치뿐"인 것입니다. "겉으로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방식이 실제로 힘을 얻는 원천은 역설적이게도 비객관성이라 할 수 있다. 아마존에서는 개별 직원, 팀 관리자, 전체 풀필먼트 센터가 성과 지표를 통해 서로 경쟁하는 상시적 경쟁 모드로 내몰린다. 모든 직원이 평균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야한다는 이 불가능한 요구는 객관성으로 포장된 정량화 수치를 통한 노무관리가 갖는 끊임없는 가속화 논리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로, 거대 첨단 기업의 노무관리가 노동운동에 미치는 영향과 노동운동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합니다. 자동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노동자와 운동을 괴롭히고, 자본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만, 여전히 노동이 상품 유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자본에게 더 중요해지면서 노동과 노동운동의 잠재적 힘도 급격하게 상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첨단 기업이 고용하는 형태가 크라우드 업체 등을 활용하여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한 수 천명의 작업자가 서로 고립된 채 작업하는 분산된 형태의 공장"을 지향하고, 정규직이 아닌 독립계약자/도급/용역/비정규직으로 고용함으로써 조직화를 방해한다는 점이 늘 걸림돌이기는 합니다. 다만, 노동자와 노동운동도 그 내부가 분열하는만큼 자본 또한 협력과 경쟁이라는 모순적 상황에 있으므로 우리도 이를 활용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해야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종합적으로,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의 중요한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그 안의 수 많은 노동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현대 노무관리의 실체가 무엇인지 폭로하는 역할도 충실히 잘 수행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일전에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이었던 박정훈 님이 '라이더들에게는 도로가 공장'이라고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도로는 사회적 자원이 투여된 사회의 공공재이면서 공적 공간인데, 플랫폼 기업들의 공장이라는 기능을 수행하고 그 지분이 커지면서 요새 인터넷에서 자주 살필 수 있는 '라이더와 시민의 갈등'이라는 구조로 외화된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거대 첨단 기업이 공간을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반을 공장화하면서 노동법적 규율을 회피한다면 그 비용과 책임이 일하는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도 생겼습니다. 여튼, 오랜만에 집중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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