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의 결투
마누엘 마르솔 지음, 박선영 옮김 / 로그프레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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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트색 하늘에 주황 황야가 펼쳐지는 겉표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까만 면지를 넘기면 민트색 하늘, 이글거리는 태양이 나온다. 다시 한 장을 넘기면 이번에는 주황빛 땅, 같은 구도의 마른 풀 덤불이 나온다. 그리고 죽은 버팔로의 뼈와 뱀이 나오고, 그 다음 장에는 인디언과 카우보이가 차례차례 등장한다. 예의 화살과 권총을 들고 서로를 겨누면서. 마치 서부 영화가 시작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띠리리~ 하는 휘파람 소리의 서부 영화의 주제곡이라도 흘러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킹 비더 감독의 <백주의 결투>를 모티브로 한 그림책이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겨눈 화살과 권총, 그리고 비장한 표정에 대단한 결투장면이라도 나올까 궁금해져 다급하게 페이지를 넘긴다.
오리 한 마리.
그리고 이어지는 첫 대사는
“잠깐! 이건 불공평 해.”이다.
화살을 들고 있는 인디언이 해도 이상할 이 대사는 카우보이가 한 말이다. 카우보이 권총 위에 오리가 앉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러닉함이라니.
오리는 날아가며 카우보이 모자 위에 똥을 싸고,
뜬금없이 하늘의 구름을 보며 포크 같다, 선인장 같다며 실랑이도 벌인다.
급기야는 기차 소리에 집중이 안된다며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두 사람.
이들의 벌건 대낮의 결투는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서부 영화에서 나올 법한 결투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황야라는 거대하고 삭막한 자연 속에서 주변의 상황으로 결투는 번복되고, 결국 거대한 버팔로의 등장으로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이른다.
이쯤에서 독자도, 주인공인 그들도 왜 결투를 벌여야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아. 하늘을 날던 선인장 말야.” 밤이 지나고 이들은 내일 다시 결투를 하자는 다짐과 함께 엔딩 크레딧과 함께 그림책이 막을 내린다.
인디언과 카우보이의 목숨을 건 한판 승부에서 '대결'이 '우정'으로 변해가는 한 편의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원주민과 개척자, 진보와 보수,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남자와 여자, 약자와 강자...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립도 이 한 권의 이야기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대립은 작은 견해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이 그림책을 정치판에 보내고 싶다.
한편 이 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다친 동물은 없다는 마지막 문구를 보며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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