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만 생각하는 날 - 슬픔은 아무 데나 풀어놓고
전서윤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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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춘기 시절을 회상해 본다. 나는 사춘기 시절을 어떻게 보냈었나. 돌이켜보면 딱히 사춘기라는 말을 붙일 만한 이벤트 하나 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그 시기 주고받았던 주먹다짐들을 사춘기라 하기에도 멋쩍다. 어른이 주먹질하고 싸우는 것을 사춘기라고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삽십대인 지금 내 감정이나 중학교 때의 나의 감정이 크게 다른 것이 없게 느껴진다. 이래서 남자는 단순한 동물이라는 책망을 듣는건가.


<오늘은 나만 생각하는 날>은 여중생이 쓴 시들을 엮은 시집이다. '여중생'하니 왠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꽃을 좋아하고 항상 가슴 한 켠에 시집을 안고 다니고 길에 지는 해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런 연약하고 가냘프면서도 순수한 이미지. 시를 읽으며 어떤 시에서는 시인이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에 부합되는 듯 하다가도 어떤 시에서는 자신감에 찬 당당한 여장부 같은 느낌도 받고 또 어떤 시에서는 차갑고 냉정한 느낌도 받았다.


서두에는 보통 작가의 말이 실리는데 어머니가 시인에게 쓴 편지가 실려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순서상 시를 읽기 전에 어머니가 시인에게 쓴 편지부터 읽게 되는데 좋은 시인으로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는 좋은 어머니의 공이 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의 어머니는 글을 쓰는 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인생을 좀 길게 살아보니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되더라. 쫄지말고 당당하게 밀고 나가라'는 충고도 해줄 수 있는 멋진 어머니다. 어머니의 편지가 예사롭지 않아 혹시 글 쓰시는 분이 아닐까 네이버에 검색까지 해봤을 정도로 편지가 좋았다.



시의 대상은 학교, 학원, 급식, 빵, 첫사랑과 같은 여중생과 연관되는 주제를 포함해서 세월호, 환경, 인생, 관계와 같은 폭넓은 주제까지 담겨있다. 시인이 시를 쓰계 된 계기는 사진을 찍었는데 감정이 사진으로는 담아내기 부족해서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시집을 내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니라 만나게 되는 사물들과 솟구치는 감정들을 핸드폰 노트에 그때그때 기록한 것이 우연한 기회에 세상 밖에 나오게 된 것이라 한다. 시인은 시를 쓰며 시와 함께 성장했다고 언급한다. 그 시기 감수성 높은 여학생들이 겪는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들, 특히 부정적인 감정들을 시로 잘 해소해 내면서 스스로를 다져가는 원동력으로 삼은 것 같아 멋지게 느껴졌다.


'조종할 수 있는 눈물'이라는 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눈물이 나는 상황은 여러가지가 될 것이다. 눈물을 흘려도 좋은 상황이 있는가 하면 흘리기 싫거나 흘려서는 안되는 상황도 있다. 그래서 시인은 눈물을 조종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래도 눈물은 조종할 수 없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시인이 그렇게 생각을 바꾼 이유가 시 안에 담겨있는데 나는 나대로 답을 생각해보게 된다. 때로는 긴 말보다 한 방울의 눈물이 더 강하다. 그것은 내 뜻대로 말할 수 있는 가벼운 말보다 조종할 수 없는 눈물의 무게가 더 무겁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인이 생각을 바꾼 이유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인은 '때론 내 맘대로 안 되는 것도 있어야 인생답더라'하는 초연함이 묻어나는 문장을 덧붙인다.


시집의 뒷부분에는 시인이 쓴 짧은 산문이 실려있다. 일기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그 중 시를 쓰는 본인의 방법을 써놓았는데 생각할 거리가 되었다. '시는 새로운 곳에서 영감 받고 쓰는 게 아니다. 매일매일 봐온 것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감정들이 의식이 되는 때에 쓰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래서 많이 써보려고 한다. 하지만 쓴다는 것도 내어 놓을 것이 있어야 되는 일이다. 하지만 막상 꺼내 놓을 만한 것이 없어 당황스럽고 무엇을 소재 삼아야 하나 막막하니 고민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데 시인의 말에서 크게 느껴지는 바가 있다. 내가 소재를 찾지 못한 것은 내가 특별한 소재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시인은 특별할리 없는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주의를 기울여 사물들을 관찰하고 교감하다가 어느 충분한 때가 되면 그것을 시로 쏟아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네잎크로버와 세잎크로버 이야기가 떠오른다. 귀한 네잎크로버(행운)를 찾기 위해 우리는 발 밑에 있는 흔한 세잎크로버(행복)를 무시하지 않던가. 시인은 그런 세잎크로버를 오래도록 관찰하고 지켜볼 줄 알아야 된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시인은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보는 사람이라 했다. 전서윤 시인도 그 사실을 깨닫고는 말해주고자 한 것 아닐까.



한때 우울증도 겪었고 자신을 싫어서 극단적인 생각도 했던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찾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도 배우며 앞으로 살아갈 힘도 얻었다. 그리고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며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오늘은 나만 생각하는 날>를 읽으며 나의 학생시절을 떠올려 보고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그때의 감수성도 다시 느껴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시절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세월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도 상기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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