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귀신고래야! - 동해에서 사라진 귀신고래를 찾아서 우리 땅 우리 생명 5
신정민 지음, 정지윤 그림, 허영란 도움글 / 파란자전거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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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고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리 아이 때문이었다. 생물에 관심이 많은 우리 아이는 바다생물을 좋아하고, 그 중 특히 고래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각종 고래 피규어들이 많다. 아이가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하나 씩 사주다 보니 많아 졌다. 그러면서 그냥 통칭으로 고래로 알고 있던 것을 향유고래, 긴흰수염고래, 혹등고래, 밍크고래, 범고래 같은 세부 이름들도 기억하게 되었다. <돌아와, 귀신고래야!>를 선택하게 된 것도 순전히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고래가 주인공이라서다.


귀신고래의 이름에 '귀신'이 붙어 무섭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귀신 같이 수면 위로 올라 왔다가 귀신 같이 사라진다'해서 '귀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돌아와, 귀신고래야!>의 배경은 울산 장생포다. 울산하면 떠오르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고래를 목격할 수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울산에서 고래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돌아와, 귀신고래야!>의 배경인 일제시대 정도로 거슬러 올라만 가도 한해 200마리의 고래를 포획할 정도로 고래가 많았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암각화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 고래가 특히 눈에 띄는 것이 고래가 큰 동물이다 보니 크게 그려진 이유도 있겠지만 그 옛날 고래의 종류에 따라 세밀하게 구분하여 그려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암각화의 추정연대가 기원전 7000년 정도 된다고 하니 지금으로 부터 약 1만년 전에 울산지역에 살았던 신석기 인류때부터 이곳 한반도에서 인간과 고래의 오랜 인연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인간과 고래의 인연이라는 것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19세기 말 석유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까지 고래의 기름은 인류에게 대체불가한 필요 자원이었다. 우리에게는 <백경>으로 더 잘 알려진 1851년에 나온 소설 <모비딕>에서도 고래를 사냥하는 것이 큰 비지니스이며 많은 돈이 투자되고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달려있고 경제계 뿐아니라 정치권도 주목하고 있는 그 시절 핵심 산업이라는 것이 나온다. 서구권에서 먼저 고래잡이가 유행하고 그에 따라 고래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자 외국의 고래잡이 배들은 동양으로 그리고 우리나라까지도 오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고래 잡이가 성행하는 시기는 일제시대로 일본인들이 동해에 고래가 많이 출몰하는 것을 알고 장생포를 고래잡이의 본거지로 자리 잡는데서 시작한다. 그 당시 해마다 200마리의 큰 고래를 잡았다고 알려진다. 고래를 사냥하는 방식은 참 잔인하다. <돌아와, 귀신고래야!>에서도 고래를 잡는 그림이 나오는데 일단 고래를 잡으면 그 출혈된 피가 온 바다를 덮어 섬뜩해 보인다. 고래를 잡을 때 작살포라는 작살이 달린 총을 쏘아 잡는데 15~16미터에 45톤 정도에 다다르는 큰 고래를 작살만으로 죽이기 쉽지 않다보니 끝에 폭약을 설치해 쏘게 된다. 따라서 고래의 몸을 꿰뚫고 들어간 작살 끝의 폭약은 고래의 몸속에서 터져 고래의 피와 살이 온사방으로 튀어나가게 된다. 작살에 맞은 것도 괴로운데 몸 속에서 폭탄이 터져버린 고래를 상상해보라. 얼마나 잔인한가.


크기가 작아 기름도 적게 나오고 맛도 떨어진다는 밍크고래보다 사냥꾼들은 크기가 커서 기름도 많이 나오고 고기 맛도 뛰어나다는 귀신고래와 참고래를 선호한다. 사실 가장 사냥꾼들이 잡고 싶어 하는 고래는 향고래라고도 불리는 향유고래다. 고래는 바다에 살지만 아가미로 호흡하는 물고기와는 다르게 허파로 숨을 쉬는 포유류다. 따라서 일정시간 물 속에 있다가 숨을 쉬러 물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향고래는 1시간 넘게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어 사냥하기 어렵다. 그래서 큰 고래 중에서는 귀신고래와 참고래가 고래사냥꾼들에게는 주 목표물이 된다.


<돌아와, 귀신고래야!>에서 나오는 귀신고래라는 이름이 귀신같이 나왔다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향유고래는 고래기름의 향이 은은하고 좋아서 '향'자가 들어가고, 특히나 향유고래의 똥은 '용현향''이라 하여 바다의 보물로 금보다 비싸다고 한다. 귀신고래와 더불어 사냥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참고래의 이름이 붙여진 경위도 씁쓸하다. 고래는 덩치가 커서 보통 죽으면 가라 앉는다. 하지만 참고래의 경우 죽으면 사체가 바다에 뜨기에 '참' 잡기 좋다는 의미에서 '참'고래가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참'은 참고래의 영문 이름이 'Right Whale'에서 딱(Right)잡기 좋다는 'Right'에서 왔다. 이렇게 고래는 이름 조차도 고래의 동물학적 특징보다는 포획 용이성과 용도에 따라 붙여졌다는 것이 불쌍하게 여겨진다.



<돌아와, 귀신고래야!>는 고래 사냥꾼 '장군이'와 귀신고래 '삐딱이'와의 종을 뛰어넘는 우정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고래와 인간이 친구가 될수 있을까. 고래라는 동물은 신비의 대상이었고 영험함의 상징이자 신령스러운 동물이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고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와 전설이 전해지는 것을 알수 있다. 그 중 신라시대의 연오와 세오 이야기도 <돌아와, 귀신고래야!>에 실려있다. 연오가 고래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고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하지만 인간과 고래가 오래전 부터 교감을 나눠왔다고는 할수 있지 않을까. 지능이 높은 동물로 돌고래를 떠올리듯 고래라는 종은 지능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소설 <모비딕>에서도 인간과 고래가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래와 인간의 교감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아기 고래 '삐딱이'는 엄마 '꽃님'이와 추운 겨울이 되어 따뜻한 동해바다로 오게 되었는데 사냥꾼에 의해 엄마 고래는 죽게된다. 엄마 잃은 어린 '삐딱이'는 무서워 길을 잃고 해안가 주변을 서성이는데 고래 사냥꾼의 아들 '장군이'를 만나게 되고 장군이는 다른 사람들 몰래 '삐딱이'가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그렇게 둘은 한번의 만남이지만 뜨거운 눈빛을 교감하며 친구가 되고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장군이'이는 고래 사냥꾼의 아버지 피를 그래도 이어받아 고래 사냥에 탁월함을 드러내게 되고 나중에는 고래잡이배에서는 선장보다 높은 서열이라는 포수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후에 안타깝게도 '삐딱이'는 아내 '별님'이 마저 인간들의 손에 잃게 되어 좌절하지만 새끼고래 '달님'이를 봐서라도 억척같이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다시는 고향바다 동해로 가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늙은 고래가 된 '삐딱이'는 수구초심 때문이었을까 이젠 엄마 고래가 된 딸 '달님'과 손자 고래와 함께 생의 마지막 여정으로 동해에 간다. 평생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장군이'를 생각하고 '장군이' 또한 늘 '삐딱이'를 생각한다. '장군이'는 늘 고래 사냥을 괴로워했다. 잡혀온 고래가 해부장에게 해체되는 장면을 보면서 동정과 죄책감도 느꼈다. 하지만 배운 게 고래잡이였고 먹여 살려야할 식구들이 있다보니 생계의 문제로 뜻하지 않게 고래잡이를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늘 마음 한구석에서 내적인 갈등이 있었다. 일본인 포수가 결정적으로 고래를 잡으려는 순간 고래를 살려주기 위해 방해하다가 얻어맞는 장면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죽기전 고향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딸과 손주를 데리고 고향바다 동해에 온 '삐딱이'는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장군이'가 포수로 있는 고래잡이배를 맞딱드리게 된다. '장군이'이도 이젠 머리가 희끗한 늙은 포수가 되어 있다. 딸과 손주가 안전한 거리까지 도망간 것을 확인한 '삐딱이'는 추격해 오는 고래잡이배 앞에 떡하니 버텨 선다. 어서 작살을 쏘라는 주변 선원들의 재촉에도 '장군이'이는 아량곳 하지않고 고래만 바라볼 뿐 가만히 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장이 자신이라도 작살을 쏘겠다며 작살을 던지려 하지만 '장군이'는 완력으로 선장을 제압한다. 그리고 '장군이'와 '빠딱이'이는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서 서로를 알아보며 눈을 마주한 채 한참을 말없이 교감한다. 그리고 잠시후 '장군이'는 결국 작살을 던진다. 둘 사이에 우정이 있다면 왜 죽이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책에 그 이유가 있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읽어보길 권한다.


아이들 동화이지만 어른인 내가 봐도 인간과 동물이 서로 교감하는 장면에서는 짠한 마음의 감동이 느껴진다. 흰 종위에 널부러진 검정 기호들이 사람의 감정을 웃게도 울게도 만드는 것이 문학의 힘이고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한다. <돌아와, 귀신고래야!>에는 중간마다 고래에 대한 정보가 소개되어 있어 고래에 관해 궁금할 법한 내용들이나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투박하지만 따뜻하게 그려진 삽화는 글에는 다 담기지 못한 부분을 시각적으로 보완되도록 하여 동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1977년 이후로 공식으로 우리 동해바다에서는 더 이상 귀신고래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다. 고래가 멸종위기동물로 지정되면서 세계적으로 고래를 보호하는 운동들이 일어났고 고래잡이를 금지하는 법도 제정되었다. 그러한 노력으로 캘리포니아에 주로 나타나던 캘리포니아계 북동 태평양 귀신고래는 개체수가 2만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많이 볼수 있었던 한국계 북서 태평양 귀신고래도 다시 울산 앞바다에서 볼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고래가 멸종하는 데에는 무분별한 포획과 바다환경의 악화가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모두가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환경실천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하루 빨리 우리나라에서도 고래를 볼수 있게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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