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부터 방에 틀어박혀 책 읽고, 글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가 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읽으며 여러 번 지우고 고치고 새로 썼다. 솔직히 이 책으로 벌떡 일어서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습관적으로 멋져 보이는 문장을 늘어놓고 나니 글 구석구석에서 이런 열망이 느껴졌다. 나 좀 좋게 봐 주세요. 대단하다고 말해 주세요. 아직 나를 내려놓지 못하겠어요.
그걸 불쑥 깨닫고는 마음이 어려워져 작업을 멈추고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그를 향해 "저 이거 못 쓰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하며 엉엉 울었다. 그때 그가 뭐라고 했더라. 별 이야기 안 했던 것 같다. 그냥 듣고 있었던 것 같다. 내용은 기억 안 나는 통화지만 아직도 그 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전화기 너머의 온기와 침묵이 축 처진 내 어깨를 쓸어내려 주는 것 같았다.
글 쓰는 일 따위 그만두고 싶었던 사람은 사실 글 쓰는 일 따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짝사랑이라도 계속하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들어 준 보이지 않는 힘들이 생각날 때마다 고맙다고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길을 걸으면서, 밥을 먹으면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도 문득 떠오르면 속으로 짧은 기도를 한다. ‘고맙습니다.’라고. 그동안의 시간은 결코 나 혼자 쌓아 온 게 아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더는 그만두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