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 -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의 낭만적 은둔의 기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외 지음, 재커리 시거 엮음, 박산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11월
평점 :
남자는 오늘도 SNS에 올라온 소식들을 확인한다. 책, 카페, 여행지, 지인의 소식과 일면식 없는 타인의 일상까지. 좋게 본다면 친구와 갈만한 곳을 메모해 두겠다는 의중일 수 있겠고 여유 돋는 시간에 읽을만한 책을 메모해 두려는 움직임인지도 모를 일이다. 눈을 번뜩이게 할 소식을 아직 찾지 못했는지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한참을 뒤적인다. 시간을 소비하고 내쉬는 한숨은 무익한 소식들에 대한 아쉬움일까. 몸을 돌려 하던 일에 다시 집중해 본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는 다시 SNS를 뒤적이고 있다.
무리 속에 있어야 안도감을 느끼는 인물이 있다. 무리가 흩어지면 다른 무리를 찾아 헤매고, 찾아낸 무리가 흩어지면 또다른 무리를 찾아 밤을 새워 걷는다. 다시 아침이 되어 어제 머물렀던 무리 속에 다다르면 고독은 잠시 잊혀진다. 그리고 걷고 또 걷고.. 애드거 앨런 포의 <군중 속의 사람>은 (시간차가 꽤 나지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어둔 부분을 이야기로 잘 풀어낸 듯 하고, ‘고독’의 일면을 잘 묘사한 글이기에 반복적이고 단순한 구성임에도 빠져 들게 만든다. 밤새 다른 무리를 찾아 헤매는 인물은 군중 속에 있(었)지만 고독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모양이다. 앞서 언급한 SNS의 홍수 속에서 늘 파도타기 하는 남자 역시 <군중 속의 사람>에 등장하는 인물과 같은 맥락이지만 다르게 표현된 고독의 또다른 면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일방적인 소통. 혼자가 아니라고, 세상 속 내가 있다고 표식을 남기려 애쓰는 사람. 어쩌면 남자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친다. 고독은 정말 견뎌내기 어려운 것일까?
물론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고독만큼 같이 지내기에 좋은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p. 28) 소로의 말과 다음에 소개될 프리먼의 글처럼 현실에서도 고독을 즐기는 이들을 만나 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껏 지켜온 혼자만의 시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에서 그녀는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다. 물론 다른 인물들에 의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결정은 빠르고 깔끔하다. 그간 혼자만의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차를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을 따라가면 정돈된 살림살이와 늘 제자리에 두는 바느질 도구가 눈에 들어 온다. 누군가를 내 시공간에 들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다시 혼자가 되겠지만 남자에게 이별을 고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불편함과 우울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절제된 그녀의 모습에서 평온함이 느껴진다. 소로와 프리먼의 글을 읽다 보면 고독은 느끼지 않으면 아닌 것이 되버리는 모양인 듯 보인다. 결국 고독이란 내 의지와 비례 관계인 걸까?
지인과 얘기를 나누는 중에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난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책들을 이전만큼 손에 들지 않는다. 스스로의 변화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반복적인 패턴이 쓰여진 글만 읽는다는 건 모순된 자기 계발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지인분께 에머슨의 글을 체크해 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반짝였다. 보통의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수준 높은 자기계발 기술로 접목시킬 수 있을 듯 하다.
내리는 첫눈이 누군가에게는 로맨스를 꿈꾸게 하는 소재가 될 테고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아픈 기억이 될 수도 있다. 같은 대상을 본다 해도 개인의 경험과 사고의 기준이 분명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역시 유명 작가의 글이라 해도 모든 이에게 이해와 공감을 바랄 순 없는 일일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다행스럽게도 하나의 단어를 기점으로 여러 작가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니 참으로 만족스러운 책이다. 각 작가의 가치관에 따른 사고의 깊이와 넓이가 다양하게 서술되어 있으니 핵심어는 '고독'이나 그 이상과 그 이하의 생각거리를 만나게 해 준다. 이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라 말하고 싶다.
살다 보니 '고독'이란 단어는 다의어로 해석해야 옳은 일이지 싶다. 나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 이가 있다 하더라도 <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를 읽는다면 '고독'에 대한 좀더 깊은 의미를 부여해 보는 시간과 더불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즐거운 책읽기 시간이 될거란 생각이 든다. 흘려보내기보다 잠시 고여 있게 둘 책을 찾는 이라면 이 책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여자는 생각한다. 고요함은 감정과 상태의 경계, 즉 외로움과 고독 사이 누릴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이라고. 그 틈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그녀의 자리가 위태하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고 어쩌면 곧 위태함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말이라는 것도. 따뜻함과 어울림이 우선시 되는 연말연시. 혹여나 그대, 혼자라고 먹구름을 드리웠다면 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고 말해 주는 책이 있으니 생각에 빠진 여자와 함께 ‘나’만으로 충분해지는 법을 배우고 인정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