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작은 털뭉치가 살아 움직이다니. 우린 이 작은 하얀 털뭉치(몰티즈)를 ‘몽이’라 부르기로 했다. 언니와 나의 작은 자취방에 추가된 생명체 하나로 공간의 소중함은 더해갔고 타지에서 머무는 시간엔 웃음이 넘쳤다. 즐거움만큼이나 자매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몽이의 배변 훈련. 언제쯤 성공할까. 혼을 내기엔 너무 사랑스럽고 타이르기엔 소통이 어렵다. 무엇보다 이 조그만 녀석을 혼자 두고 학교에 가는 건 맘이 꽤 불편한 일이었지만 다녀온 후에 닥칠 현실은 더 감당하기 싫었다. 다행인 건 시간이 흐를수록 터득하는 공존의 법칙이 털뭉치와 우리에게 적용이 되었다는 거. 잘살아 보자.몽이가 청소년기쯤 되었을 때 할머니 댁에 데리고 가보기로 했다. 할머니 댁엔 몽이와 비슷한 또래의 검정 시고르자브종 바둑이가 목줄을 하고 마당 한 켠에 살고 있었다. 강아지(할아버지께서는 개OO라고 부르셨지만 순화해 표현하기로 한다. 물론 나쁜 의도를 담은 호칭은 아니란 걸 아니까)는 마당에서 키워야지! 힘주어 말씀하시는 조부모님의 뜻에 따라 우리집 막내 몽이는 첫 맨땅 체험을 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몽이는 개 친구를 사귄 적도 없네! (20년 전엔 애견 카페란 건 먼 나라 이야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댕댕이들은 친해질 수 있을까. 지지배들. 언니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잘 논다. 특히 몽이는 생각보다 맨땅 적응 속도가 빨랐다. 마당을 출발해 텃밭을 가로지르고 할머니께서 정성스럽게 관리 하신 화단에 핀 꽃도 뜯어내며 신이 났다. 일주일만 두고 갈까. 바둑이도 심심치 않게. 실수였다. 이런 생각을 한 건..하얀 털뭉치가 없으니 이상타. 그새 그리움이 쌓이는 사이가 되었구나. 주말이 되길 기다렸다. 서둘러 언니와 할머니 댁에 내려갔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몽이를 불렀다. 각 집을 지키는 개들이 목청을 높인다. 그 사이에서 몽이 소리를 찾았다. 나만 안 들리는 건가. 이 녀석들 노느라고 내 소리를 못 듣는 건가. 몽이야! 대문 앞에 도착했는데 개기척(?)이 없다. 할머니!밭일을 마치고 왔는데 몽이와 바둑이가 집에 없었다고. 두 분이 함께 동네를 돌아보셨다고. 작은 시골 마을이니 앞집, 옆집, 뒷집에 건넛집까지 다 아는 처지라 남의 개를 데리고 갈 리는 만무했다. 손녀들 강아지가 함께 사라졌으니 그 속은 또 얼마나 심란하셨을까. 속상한 마음에 미리 연락도 못 하셨다고. 그 길로 나와 동네를 뛰어다녔다.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골목골목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다니셨을 길을 다시 뛰었다. 없다. 아무 데도 몽이는 없었다. 그 흔한 외모 바둑이도 없었다. 집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녀석들이니 둘이 모험을 떠날 일은 없다. 문단속이라 하면 그저 대문을 닫기만 하면 되는 시골의 일상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순둥순둥한 두 녀석을 누군가 데리고 간 거다. 어떻게 이런 일이.어두운 방 안이다. 한 걸음 내딛기가 무섭다. 걸을 때마다 물 먹은 듯 움직이는 나무 바닥을 보니 얼룩진 곳이 많다. 잿가루가 조금 남은 벽난로엔 때 지난 온기도 찾을 수가 없다. 촛대 위에 안쓰럽게 흔들리는 불은 무슨 말이라도 전하려는 것처럼 위태롭게 빛을 뿜어내고 있다. 삐~~이익. 손을 뻗어 열려고 했던 문이 먼저 움직인다. 뭐지. 이 두려움은.기분 나쁜 꿈이다. 이리 맑은 날 낮잠은 아닌 건데. 저기 피아노 위에 버리지 못한 사진. 하얀 털뭉치가 웃고 있다. 빈자리는 컸다. 잊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구나. 잠시 덮을 순 있어도 추억을 대신할 건 없지. 찌뿌드드한 몸과 맘을 챙겨 산책이라도 해야겠다. 거실에서 언니가 전화를 받는다. 왜 그래? 왜 그렇게 놀라는데? 할머니께서 전화를 하신 거다. 바둑이가 돌아왔다고. 논에 가시려고 문을 열었는데 대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숨은 쉬는데 목에 어마어마한 큰 상처가 있다고. 몽이는 없었다고.:: 세상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가슴에 개켜둔 당신만의 ‘별’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나게 할 거예요. 저 역시 하얀 털뭉치 몽이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실은 더 깊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거든요. 쉽게 꺼내지 못할 이야기지만 어느 날 문득, 여전히 반짝이고 있는 별을 의식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여지없이 눈물이지만 혼자가 된 후 내가 만난 기이한 인연에 대해 생각하며 웃어보려고 해요. 네잎클로버를 찾았을 때 고양이를 떠올린 작가님처럼요."모르고 누린 시간과 알고서 통과하는 시간이 있다. 둘 다 사랑에 꿰어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_ p.28슬픔이 더는 슬픔이 되지 않는 건 눈물을 닦으면 보이는 흩어진 사랑 때문이 아닐까요. 자, 빠짐없이 모아 봐요.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작은 별에 채워 두고 마음 안에 잘 걸어요. 됐어요! 이제 나만 아는 거예요. 내 마음엔 여전히 세상 아름다운 것들이 살아가고 사랑하고 있는 거에요. 고마워요, 래연작가님.::<바람 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의 저자 래연 작가.그녀의 책은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했고 글을 읽는 동안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꽤 인상적이었다. 몽환적이면서 분명 아름다운.. 아름답지만 어딘지 슬픈.. 슬프지만 흐리진 않은..래연 작가의 신작 에세이 소식을 들었다.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작가님의 사인과 메시지를 받아 데리고 온 책,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 역시 그녀만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고양이 집사로 살고 있는 독자라면 그녀의 글에 극공감을 하겠지 싶다. 털알러지가 심해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함께 하지 못하는 나조차 이미 그녀의 아가들에게 맘을 뺏겼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 아름다운 것들’을 대하는 래연 작가의 진심과 사랑, 거기에 문학적 감수성과 뛰어난 필력은 이 책이 가진 또하나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래연,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 당신 마음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을 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