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기
최형준 지음 / 부크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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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te Wander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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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트를 열었다. 큰 의미를 두고 읽는 게 아니니까 힘을 빼고 시작한다. 내 자세 때문일까. 지면 위를 채운 글자는 각이 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소곤거림. 낮은 톤으로 천천히. 혼잣말을 이어간다. 인과 관계로 이어진 글은 아니지만 매 꼭지마다 상통하는 분위기. 어둡. 유쾌한 시작이라도 결국 톤 다운된 색이다. 최형준 신간에세이 [방랑기] 난 이런 글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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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같이 집으로 갈까?”라고 묻는 말에

“뭘 해줄 수 있죠?”라거나 “얼마나 걸리죠?”라고

되묻기 일쑤인 꽃들 사이에서

“부탁해요.”라고 대답하는 특별한 꽃을 찾는 중이었고,

그러므로 길게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방랑기(放浪記)

- 정한 곳 없이 떠돌아다니며 겪은 경험이나 생활을 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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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용사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방랑하는, 헤매는; 종잡을 수 없는

2. 형용사 <강·길 등이> 꾸불꾸불한

3. 명사 [종종 pl.] 산책, 방랑, 만유(漫遊);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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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랑기>에서 내용을 짐작컨대 혹자는 세 번째 마지막 의미(헛소리)가 왠지 와닿을 수도 있겠다. 개인 취향이니 나무랄수는 없는 일이지. 예컨대 혹자(하나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똘똘 뭉친 상식적인 글을 좋아라 하는 이) 역시 큰 감흥을 얻는 데 실패할 수도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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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구절처럼 별스럽지 않은 소재로 시작했지만 한 꼭지의 마무리는 읽는이가 그저 쉽게 읽고 끝낼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결국 잘 썼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없는 말솜씨로 표현하려니 장황해진다. 부끄럽..








가끔 등장하는 흑백 사진은 무드 있는 분위기도 좋지만 색을 입지 못한 방랑기, 그의 정처없이 걸음을 옮겨나가는 기록과 꽤나 잘 어울리니 이 비요일에 무턱대고 방랑하고 싶은 충동질마저 일으킨다.




얼마 전 읽었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 마냥, 상황에 대한 묘사 속에서 자유로운 사고의 문장들의 출연이 매력적이다. 두 작가의 문장 탐닉에 대한 범주는 확연히 다르지만 <방랑기>의 저자를 작은 리스팩토르라 여겨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실레가 안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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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지만 한기가 느껴지는 말투는 그에게 아직 안식년이 오지 않은 결핍에서 온 그만의 특색이라 여기며, 저자가 더 무르익은 방랑기를 맞거나 혹은 방랑기를 마치게 되면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삶은 방랑이 베이스니까.) 다시 세상에 내보일 글은 작은 독자의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거라며 슬쩍 기대를 걸어 본다.



어느 날 무심히 켠 라디오에서 제목이 언급될 때까지 집중해 듣던 연주곡이 있다. 마치 날 위해 선곡한 것인 듯 행복한 오해를 덧붙이며. 일면식도 없는 저자가 가장 빛나고 있을 오늘의 방랑에 열심을 내라고 (나와 당신에게) 전하고 있다. 물론 이건 더 큰 오해다. 끄적이는 문장이 게을러진 여자에게 반짝이는 즐거움을 준 방랑의 기록. 그의 이전 글들이 욕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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